성경 확대경 - 마태복음 제 II 부 왕의 선포 (4:17-16:20) 7. 왕이 물러남 (14:1-16:20)
 11장에서 13장에서 마태는 그의 책의 나머지 부분을 위한 기조(基調)를 설정했다. 즉 유대인들이 그들의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으로 끝날, 예수와 유대인의 지도자들 사이에 점증하는 긴장 말이다. (177.1)
 마태복음 14:1-16:20은 마지막의 시작—예수 자신의 곧 닥쳐올 죽음의 상징으로서 그의 전주자(침례자 요한)의 죽음—으로 출발한다. 그 구절은 예수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16:16)이시라는 베드로의 직설적인 선포와 그의 죽음에 대한 예수의 명백한 고지(告知)로 끝난다. (177.2)
 유대인들에 의한 배척이란 주제는 여전히 눈에 띄며, 이 주제와 결부된 것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예수의 활동의 증가이다. 마태복음 14:13-16:20까지 전체를 통하여 예수의 물러나심의 개념이 되풀이되고 있다. 첫 번째는 유대 지경의 오지들로요, 나중에는 이방인의 지경으로의 물러나심이다. 물러나심의 막간들이 끝날 즈음에, 예수께서는 이 세상 왕국들과 맞서고 계신 상황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리고 그의 궁극적 사명의 성취를 향하여 나아가시기로 굳게 결심하신다. (177.3)
 ■ 말씀에 들어감
 14:1-16:20까지 한번을 읽고 물러남의 주제에 대하여 그대가 발견할 수 있는 증거를 나열하라. 그대의 성경에서 예수께서 여행하고 계시는 장소들을 찾아보라. 이것은 그대가 그 주제를 추적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전체 구절을 조사한 후에 14:1-15:20까지 다시 두 번 읽으라. 그러고 나서 다음의 질문들로 향하라. (178.1)
 1. 14:13의 물러나심과 14:1-12의 요한의 경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178.2)
 2. 마태, 마가 그리고 요한에게 있어서, 오천 명을 먹이신 일에 뒤이어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대의 성경에서, 연구에 도움을 주는 책들을 사용하여 이들 평행 구절들을 찾아서 그것들을 세심하게 읽으라. 물위를 걷는 경험에 대한 세 복음서의 이야기를 모두 비교하고 대조해 보라. 그것들은 얼마나 비슷한가? 그것들은 얼마나 다른가? 특별히, 왜 예수께서 무리들을 해산시키시는 동안 제자들이 그이 없이 제자들이 출항하도록 “재촉”하셨는지에 대한 힌트를 이러한 비교․연구를 통해서 찾아보라. 5,000명을 먹이심과 예수께서 해산시키셔야만 했던 대중 운동과는 무슨 관계가 있었는가? (저 마지막 질문에 답변하려면 복음서 하나로는 충분치 못하다는 점을 주목하라.) (178.3)
 3. 15:1-20에서 예수께서는 명확히 구분되는 세 부류의 청중들에게 말씀하신다. 이 세 그룹들과, 그 각각의 그룹과 관계가 있는 구절들이 몇 절부터 몇 절까지인지 나열하라. 그러고 나서 세 문단으로 각각의 청중에게 주신 예수의 기별을 요약하라. 마지막으로, 세 가지 대화가 서로를 보강시켜 주는 방법들을 나열하라. (178.4)
 ■ 말씀을 탐구함
 전주자(前走者)의 죽음과 헤롯의 위협
 예수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 14:1에서 일어나는데, 이번에는 갈릴리 통치자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를 통해서이다. 헤롯은 침례자 요한의 봉사에 대해서는 상당히 잘 알고 있었지만, 예수의 봉사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모르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와 같이, 아마도 미신 그리고 과도하게 지친 양심 두 가지 모두의 결과로서 헤롯은 두 사람을 혼동하고 있으며, 필시 예수께서 부활한 요한일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한다(2절). (179.1)
 그의 이야기의 이 시점에서, 마태는 왜 헤롯의 양심이 요한에 관해서 크게 찔림을 받았는지 우리에게 알려 준다. 앞서 언젠가,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와의 불법적인 사통(私通) 문제로 회개의 선지자와 맞닥뜨린 바 되었었다. 그 결과로 헤롯은 요한을 체포하였고, 그를 선지자로 믿고 있는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더라면 요한을 사형에 처했을 것이다. (179.2)
 헤롯의 연약성은 백성들에 대한 그의 두려움에서 뿐 아니라 헤롯의 더 나은 판단을 꺾고 요한을 참수하도록 그를 조종하는, 그의 정부(情婦)와의 그의 관계에서도 엿보인다. 헤롯은 또한 그의 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의 견해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조종당하도록 내버려둔다. (179.3)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이 이야기는 헤롯 안티파스가 이 몇 구절들 안에서 한 번 이상 자신의 양심에 거슬러 행동하는 유약한 사람이라고 보여준다. 그가 예수의 강력한 봉사에 관하여 알게 될 때 그가 그의 상상력에 굴북한 것은 별로 놀랍지 않다. 헤롯은 거의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다. 요한의 제자들이 그의 죽음을 예수께 고하자 그가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신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13, 12절). (179.4)
 얼른 보기에, 요한의 체포와 죽음의 이야기는 예수에 대한 마태의 계속되는 이야기에 곁들여진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숙고해 보면 그런 결론이 성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반대로 요한의 종말에 대한 마태의 보고는 예수 자신의 곧 닥쳐올 죽음에 필수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마태는 예수의 죽음을 예시(豫示)하기 위해 요한의 죽음을 사용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요한이 봉사에 있어서 예수의 선구자였던 것과 마찬가지로(3:1-11), 그는 죽음에 있어서도 예수의 선구자가 될 것이다(14:1-12). 저 대구법은 13:57에서 예수께서 자신을 선지자로 부르신 것과 마찬가지로 요한도 14:5에서 선지자로 확인된다는 사실에서 처음 지적되었다. 그는 선지자일 뿐 아니라 헤롯 안티파스의 손에서 곧 선지자의 상급을 받을 것이다(10절). 첫째 복음서가 갈바리로 향하여 나아가면서 궁극적으로 예수 또한 그의 선구자를 뒤따르실 것이다. (179.5)
 W. D. 데이비스와 D. C. 앨리슨은 요한의 이야기가 외적으로는 그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비유라고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그들은 마태가 요한에 관한 이야기를 14:1-12에 배치한 것은 요한의 죽음에 관한 한 흥미 있는 사실 제공 그 이상이라는 증거를 제시한다.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예수를 위해 예비되어 있는 것을 예언하는, 세심하게 꾸며진 구절이다. 그들의 책에서 인용한 아래의 대조표는 다음과 같은 평행들을 제시한다. (180.1)
요한 예수
[1] 분봉왕 헤롯은 요한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총독 빌라도가 예수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2] 요한은 체포되었다(크라테오, 14:3). 예수께서는 체포되었다(크라테오, 21:46 등).
[3] 요한은 결박되었다(데오, 14:3). 예수께서는 결박되었다(데오, 27:2).
[4] 헤롯은 백성들이 요한을 선지자로 믿기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였다(1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믿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였다(21:46).
[5] 헤롯은 요한을 처형해 달라는 다른 사람의 요청을 받고 그렇게 하기를 괴로워하였다(14:6-11). 요청을 받고 그렇게 하기를 꺼렸다(27:11-26).
[6] 요한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장사지낸 바 되었다(14:12). 예수께서는 제자들에 의해 장사지낸 바 되었다(27:57-61).
(180.2)
 데이비스와 앨리슨은, 마태가 두 분이 죽은 후에 기록하면서 이 두 죽음을 취급하면서 유사성을 의식하였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처럼 요한의 투옥과 죽음은 흥미로운 곁다리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께서 그 자신의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시는 그의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Davies and Allison, 476). (180.3)
 그들의 이러한 제시를 뒷받침해 주는 것은 마태복음에 대한 앞의 연구에서 우리가 주지한대로 첫째 복음서는 실로 세심하게 구성된 문학적 작품이라는 일반적인 사실이다. 또한 그들의 제시에 유리한 사항은 요한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11-13장의 배척 이야기들과 16:21에서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수의 명백한 통보 사이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