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위험에 처해 있었다. 왕의 아들의 지지를 얻었고 격려를 받았지만, 왕에게 미움을 사고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사울은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가 몸소 그 일을 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을 시켜서라도 일을 저지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런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사울과 함께 하지 않으시고 다윗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것이 차이였고 이유였다. (161.1)
 그러나 여기에 역설이 있다.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신에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 거짓말로 자기의 목숨은 건졌으나 무죄한 많은 사람들의 피가 흘렀다.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될 인물이었는가? 이것이 18-23장에서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서 숙고해야 할 질문이다. (161.2)
 ■ 말씀에 들어감
 사무엘상 18-20장을 두 번 통독하여 전체의 내용을 파악한 후에 다음의 질문들에 대답하라: (161.3)
 1. 사울의 적의(敵意).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 직접․간접적인 모든 시도를 열거하라. 그리고 다윗이 어리석게 행동함으로 사울의 적개심을 조장했을 법한 장면을 담은 구절들이 있으면 포착해 두라. 18-20장에 나타난 두 사람에 관한 독자의 반응을 한두 문단으로 적어 보라. (162.1)
 2. 진실. 그대의 사무엘 연구 노트의 “진실”이란 난(欄)에 부가적인 사건들을 추가하라. 18-20장에 나타난 거짓말이나 반(半)진실 중에서 어느 것이 성경적 근거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왜 그렇고, 또 그렇지 않다면 왜 안 그런가? (162.2)
 3. 요나단. 18-20장에서 요나단이란 인물을 관심 있게 보라. 다윗과 비교하여 요나단의 특징을 한 문단으로 간단히 적어 보라. 그들은 얼마나 닮았고, 얼마나 서로 다른가? 그대는 그들의 긴밀한 우정이 무엇 위에 기초되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162.3)
 4. 헤세드(ḥesed). 성구 사전을 이용하여 사무엘상 20:8, 14, 15에서부터 시작하여 다른 구약 문맥들을 따라가며 헤세드(“친절,” “쇠하지 않는 친절,” “자애”)의 단어 연구를 하라. 성경 사전에서 그 단어의 뜻을 알아보라. 20장의 인간적 이야기가 하나님의 헤세드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주는가?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162.4)
 5. 예언. 성구 사전을 사용하여 “예언,” “예언하다”의 단어 연구를 하라. 성경 사전에서 이 주요 단어들의 뜻을 알아보라. 19:18-24에 나온 사울을 사로잡은 것 같은 “카리스마적” 경험에 대한 성경의 언급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간단히 요약하라. “예언하는 것”의 가치 판단을 할 때 성경의 어떤 증거가 우리를 도울 것인가? (162.5)
 ■ 말씀을 탐구함
 왕을 대적하는 요나단과 다윗(18:1-19:24)
 골리앗에 대한 승리를 뒤이어 18장19장은 사울을 다윗을 죽이기로 작정한 사람으로 그린다. 이 두 장은 사울의 악한 의도들과 다윗의 생명을 빼앗기 위한 여러 번의 시도를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음모는 실패한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두 사람을 모두 관장하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니라”(18:12, 14, 28). 한편 사울은 하나님의 악신에 의해 쫓기고 있었다(18:10; 19:9, 23). (163.1)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사울은 점점 더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지게 되었다. 다윗의 인기는 더욱 높아갔다. 다윗은 “폭풍에서도 용기를 내며 모든 사람들은 그를 위하여 넘어진다”(Hertzberg, 154). 사울조차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18:12). (163.2)
 다윗의 상승 기류는 이 장의 첫 부분에 이미 놓여졌다. 첫째로 우리는 요나단이 다윗과 함께 언약을 맺고 그의 무기를 그에게 준 것을 알게 된다(3, 4절). 그리고 저자는 다윗이 왕을 위하여 하는 모든 일이 너무 잘되어 사울이 군대의 높은 자리를 그에게 주었다고 우리에게 일러준다(5절). 그러나 여인들이 다윗을 칭송함으로 사울의 노가 댕겨지고, 끈질긴 질투가 불붙게 되었다는 사실을 저자가 우리에게 알리기 전에(6-9절), 그는 사울이 다윗을 승진시킨 것을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5절)고 말한다. 다윗은 승승장구(乘勝長驅)하였다-왕자, 백성, 그리고 사울의 장관들이 모두 그의 편이었다. (163.3)
 비록 사울이 여러 가지 간접적인 방법으로 다윗을 제거하고자 노력했지만, 그가 직접 창을 잡아들고 다윗과 대치했을 때는 늘 하나님(10절; 여호와, 19:9)의 부리신 악령 때문이었다. 요컨대, 저자는 사울이 정신이 나가 최악의 상태에 빠졌을 때에 여호와께서 장악하고 계셨다고 확신하였다. 어쩌면 저자는 여호와의 악신은 사울의 배반과 불순종의 원인이나 결과가 아닌가 하고 우리가 숙고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163.4)
 18:10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악령은 사울의 예언적 경험의 일부였다. 「새개정표준역」은 영이 “사울에게 몰려와서 그가 집 안에서 지껄였다”[“예언하였다,” 「새국제역」]고 진술한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예언”에 대한 저자의 부정적인 견해가 분명히 드러나 있는 경우이다. 기름부음을 받은 직후 사울의 예언에 대한 첫 기록(10:6, 10-13)에서 첫눈에는 예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10:11, 12)라는 질문은 그런 인상을 흐리게 하며, 다윗을 살해하려는 사울의 시도를 빗나가게 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예언”을 사용하신 것과 관련하여 19:20-24에서 같은 질문이 부정적으로 제시될 때에는 특별히 더 그렇다. 비록 「새국제역」은 “예언” 혹은 “예언하다”라는 말을 이 세 구절에서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새개정표준역」의 번역은 더 비이성적인 경험을 암시하고 있다. 첫 문단에서는 “예언적 광란”(10:6, 10, 13), 18:10에서 “지껄였다,” 그리고 마지막 문맥에서는 “예언적 광란”(19:20, 23) 혹은 단순히 “광란”(20, 21, 24절)이라 옮겼다. (164.1)
 19:20-24의 사건 후에 “예언”의 예는 사무엘상․하에 더 이상 기록되지 않았다. 그리고 열왕기상∙하의 단지 두 번의 예는 확신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갈멜 산 위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이 “광란적 예언을 하는” 것(왕상 18:29; 「새개정표준역」, “지껄였다”[“raved”]), 그리고 “거짓말하는” 아합의 400명의 선지자들의 “예언”하는 것인데, 그들은 결국 아합을 길르앗 라못에서 죽게 만들었다!(왕상 22:10, 23). 아합은 동일한 용어를 참 선지자 미가야와 관련하여 사용하면서 조소가 섞인 목소리로 말하였다: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22:8, 18). 다윗을 섬기는 갓과 나단을 포함하여 다른 참 선지자들이 역사서에 등장하나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예언하였다”고 기록되지 않았다. 그리고 왕정 역사 전체를 통털어 예언했다고 알려진 유일한 왕은 사울이다. 요컨대, 우리의 저자는 예언은 수상쩍은 것이며, 빈번히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분명히 왕이 예언자 중에 하나인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164.2)
 다윗은 사울이 “예언적 광란” 속에서 던진 창을 두 번이나 피하였다(18:11). 그 결과,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것은 본 장에 나오는 그의 두려움에 대한 세 번의 언급 중 첫 번째이다. 그는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12절) 두려워했다. 18:15에서 사울은 “다윗의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다. 18:28-29“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사울이 다윗을 더욱 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고 기록했다. (165.1)
 18장은 사울의 내적 갈등을 드러내는 언급으로 넘치고 있다. 그가 다윗을 두려워했다는 언급(12, 15, 19절) 외에도 저자는 여인들이 다윗의 전과(戰果)를 칭송할 때에 사울이 “불쾌”하고 “심히 노”했다고 말한다(8절). 그러나 저자가 사울의 내심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다윗을 해하려는 음모를 독백하게 하는 것이다. 그 독백은 이 장에서만 자그마치 5회나 나온다: 8, 11, 17, 21, 25절. 하지만 그와 같은 저자의 통찰들은 단지 사울의 속만을 드러내었을 뿐 다윗의 속은 한번도 드러내지 않았다. 다윗의 생각을 우리가 읽을 수 없게 되어 있다. 그의 음성은 이 장에서 겨우 두 번—두 경우 모두 왕의 딸과 결혼할 수 없는 자신의 무가치함에 대한 자기 비하의 말뿐이다—만 들을 수 있다(18, 23절). (1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