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9:9, 14의 평행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새국제역」이 그것을 번역하지 못했을지라도,
9:9, 14에서와 같이 양심을 뜻하는 동일한 단어—헬라어
쉬네이데시스—가
10:2에 나온다. 「새국제역」이
“그들의 죄책감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리니”로 번역한 곳에, 원어의 독법은 문자적으로
“죄에 대한 양심을 더 이상 갖지 않으리니”이다. 나의 판단으로는, 「새국제역」에 종사한 사람들이 여기서와
9:9에서 정확히 사도의 사상을 파악하였다. 이 곳에서 그들은
완전한(
perfect) 대신에
정결한(
clean)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동일한 헬라어(완전과 양심에 해당하는)를 다른 방식으로 번역하기로 한 그들의 결정은 사도의 술어(述語)를 이해하고 싶어하는 신중한 히브리서 학도들을 방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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