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대제사장(하늘 성소의 예수 그리스도) 제 12 장 하나님의 남은 교회
 오늘날 많은 교인들은 교회가 견지하고 있는 진리에 대하여,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계시된 뜻에 대하여 진실로 순종하며 살고 있는가?를 알아보거나 살펴보는 일 없이 그들의 특정 교회를 믿게 된다. 어떤 교회가 말씀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모든 점에서 오늘날 세상의 도덕적 문제에 관한 올바른 궤도로부터 이탈하는 것과 같이 심각한 것이다. (225.3)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그분의 말씀 안에 있는 진리의 충만한 빛에 헌신하는 것이 참된 신자가 되는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의 진리와의 대면을 피할 수 없으며, 그 말씀이 자기 스스로의 이기적 뜻을 단절시키거나 또는 그가 속해 있는 교회와 반대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듣고 보는 일을 거절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은 대중성의 시험에 있지 않다. 오직 남은 자만이 그리스도와 함께 서게 된다. 다수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을 택해 왔다. 아무도 하나님 앞에 그 자신을 위한 진리를 선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단지 어떤 교회에 연합함으로 그의 양심을 가볍게 거절할 수 없다. (225.4)
 참된 교회는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도록”(잠 4:18) 그의 추종자들을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계속적으로 인도할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교회는 오류와 어둠의 세력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226.1)
 성경 가운데 가장 핵심적이고 용기를 주는 말씀의 일부분은 그분의 남은 교회에 하신 하나님의 권면 가운데 발견된다. (226.2)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226.3)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226.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니(계 20:4).
(226.5)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고 사람들이 인정함으로 그들이 그분의 진리를 그들 스스로의 생애에 적용하며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참으로 가치있는 일이다. 하나님 말씀은 남은 교회에서 자유롭게 행보 할 것이다. 주님의 임재로부터 오는 새롭게 하는 큰 날이 이르렀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 즐거이 헌신하니”(시 110:3). 참된 교회는 하나님 계명에 대한 그들의 순종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산 증거에 의해 그들이 하나님 백성임을 증거할 것이다. 참된 교회 안에서 교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며 순종하게 된다. 이 충성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선물로 인해 즐겁게 받아 들여진 바 된다. 교회는 사람들이 만드는 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모든 진리 가운데 인도함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교회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살아 있는 그리스도에 의해 시험되고, 부족함이 발견되지 않는 교회이다. (226.6)
 이러한 시험이 없이는 어떤 교회도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신뢰될 수 없다. 교회가 그의 주님께 대한 온전한 충성심으로부터 끊임없이 믿음과 사랑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선포하는데 도달할 때 하나님의 교회에는 능력이 있을 것이며, 음부의 권세가 그를 대항하여 이기지 못할 것이다. (227.1)
 교리에 유의하라
 이 마지막 때에 있어서 교회의 가장 큰 위험들 중의 하나는 건전한 교리가 부족한 것이다. “교리”에 대한 헬라어는 디다스칼리아(didaskalia) 또는 “가르침”이라는 단어이다. 성경은 건전한 교리나 가르침 거룩한 사물에 있어서의 교리적 지식을 위한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성경 교리는 조직적으로 배열된 성경의 근본적 진리이다. 마음은 구조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의 진리들을 그들의 적절한 관계 속에서 보게 할 필요가 있다. 성경 교리들은 경험과 행위에 관한 진리와 대조되는 지적인 개념이라고 흔히 생각되고 있다. (227.2)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이다. 그것은 체계적인 의미에서 교리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성경 기자들 중 누구도 어떤 특별한 진리에 관하여 조직적인 연구를 제시한 사람이 드물다. 예를 들어서, 재림, 죽은 자의 상태, 심지어는 구원에 대한 것, 그리고 다른 많은 위대한 진리에 관한 조직되지 않은 개요나 논증들이다. 로마서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바울의 연구가 이러한 것에 가장 근접하고 있다. (227.3)
 하여간 무엇이 진리이며 건전한 교리인가에 관한 열렬한 관심이 있다. 성경 기자들이 성경 교리에 대한 교과서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성경의 가르침과 진리에 부주의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독교회의 역사는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서 오류를 가르쳤을 때마다 일어난 투쟁을 보여준다. 교회는 건전한 교리의 조직된 체계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고 유익이 되는 교리를 찾아 왔다. (228.1)
 거듭거듭 성경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건전한 교리를 따를 필요를 강조하고 있다. (228.2)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여(딛 2:1).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딛 2:7).
(228.3)
 성경이 “사람의 교훈”(마 15:9)과 “귀신의 가르침”(딤전 4:1)에 반대 되는 것으로서 “선한 교훈”(딤전 4:6; 잠 4:2)과 “바른 교훈”(딤전 1:10; 딤후 4:3)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같은 것을 가르치는 여러 가지의 방법이 있다거나 교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것들은 반대되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그 차이는 그리스도인 경험에 있어서 핵심적이다. 각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질문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 진리가 무엇인가? 건전한 교리가 무엇인가? 교회는 진리와 건전한 교리의 교사로서의 그의 역할을 해야만 한다. 교 회는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딛 1:9) 한다.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라”(딛 2:1). (228.4)
 오늘날에는 교리에 대한 무관심과 반대가 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필수적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 “그리스도께 돌아가자!” 하는 부르짖음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것을 인정한다. 어떤 교회나 교단도 그 교리와 생애가 그리스도에게 중심되어 있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라 불릴 수 없다. 종종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교리는 신앙에 냉담함과 그리스도인 경험에 손실을 가져온다고 믿도록 인도된다. 기독교는 신조가 아니라 생애라고 말한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 논쟁하기를 원치 않는다. 동시에 그 진술은 잘못 인도될 수 있는데, 특별히 이러한 표어들이 성경의 이성적 가르침과 내용들을 저하시키는 데 사용될 때 그렇다. 그 경향은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교리와 그리스도인 경험을 놓으려고 한다. “교리를 없애라.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자”는 부르짖음이 “식물학을 없애자. 꽃들로 돌아가자,” “신학을 없애라.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과 같이 그럴 듯한 말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교리와 신앙은 병행하는 것이다. (228.5)
 이러한 접근의 형태에서 발견되는 위험은 쉽게 분간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개인적 헌신 없이 종교에 대한 지적인 인정으로 만족하고 한다. 자주 교회는 살아 있는 진리보다 이성적 확실성에 더 크게 관심을 가져 왔다. 교회는 교회와 학교가 하는 공식적 선포에 우선권을 주는 사상들과 교리들의 배경 안에서 오랫동안 운영해 왔다. 개인적으로 종교에 귀의하지 않으면서 종교에 관한 많은 질문들에 대답하는 것이 가능하다. 말과 개념의 장난 가운데 하나님을 하나의 사상으로 축소시킬 수 있다. 교리의 논리적 체계를 세우려는 노력은 아무데서도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앎의 신앙이 아니라 삶의 신앙이 요청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둘 사이의 차이는 참여자가 되는 것과 구경꾼이 되는 것의 차이이다. (229.1)
 우리는 그리스도 중심의 생애가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스도인 경험은 교리 이상이다. 그러나 핵심적 질문은 어떻게 진리에 도달하는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그가 주장 하는 경험이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진리와 일치되는지를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사람들이 진리와 반대되고 있는가? 언제 사람의 경험이 진리와 일치되는가? (229.2)
 우리 시대에 위험스러운 경향들 중의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의 규범적 특성에 매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가 그리스도가 아니고, 사람에 관한 교리가 사람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분명히 하나님은 교리가 아니다. 구원에 대한 교리를 아는 것이 우리가 구원을 경험하는 것과 꼭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들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참된 경험에 선행(先行)한다. (2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