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하기아(hagia)는 성소(Holy Place)를 언급하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등대, 상(床), 그리고 성별된 떡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9:3에서 하기아 하기온(hagia hagiōn)은 지성소(Most Holy Place)를 가리킨다. 그 이유는 그것이 둘째 휘장 뒤에 놓여 있고 또 언약궤, 돌판, 그리고 그룹들(cherubim)을 포함했기 때문이다(4-5절). (171.4)
 이와 같이 타 하기아의 변형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울이 의미하는 것에 대하여 의문 속으로 내버려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9:8의 용례는 썩 분명하지가 않다. 우리는 이 구절로 이끌어 가는 논증을 따라간 후에 이 장의 뒷부분에서 이것을 살펴볼 것이다. (171.5)
 타 하기아 일반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덧붙여 보자. 장막(tabernacle)의 용례(用例)들이 있는 평행절들을 찾아봄으로써 일관된 역어(譯語)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실효가 없다. 장막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스케네(skēnē)인데, 문자적으로 “텐트(tent)”이다. 그러나 타 하기아와 같이, 우리는 이 말이 특정한 칸들뿐만이 아니라성소 전체(whole sanctuary)에 대하여 사용된 것을 발견한다. (171.6)
 예를 들면, 8:2에서 성소(sanctuary)와 참 장막(true tabernacle)은 동일하다. 우리는 비슷한 평행절을 9:1-2에서 발견한다. 하지만 「새국제역」은 9:3“둘째 휘장 뒤에 지성소라 일컫는 이 있었다(Behind the second curtain was a room called the Most Holy Place)”로 번역하고, 다시 9:6-7에서 “외실(外室, outer room)과 내실(內室, inner room)”로 번역한다. 헬라어 원문은 문자적으로 “첫 천막(tent)과 둘째(‘천막’으로 이해됨)”라고 한다. 스케네라는 말은 「새국제역」의 독자들이 감지하는 것보다 더 자주 헬라어 본문에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용례들의 빈도 자체가 타 하기아를 번역하는 열쇠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172.1)
 새 언약
 히브리서 8:6-13은 바울이 옛 언약보다 탁월하다고 말하는 새 언약을 소개하고 있다(6절). 언약은 위대한 성경적 개념들 중의 하나이며, 그것은 언필칭(言必稱) 구약의 중심 주제(主題)이다. 그 말의 근본적 의미는 “계약(contract)” 또는 “협정(agreement)”이나, 성경의 문맥에서 볼 때 그것은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인간을 향한 야훼(Yahweh)의 은혜로운 접근, 곧 그가 우리에게 오셔서 타락한 상태에 있는 우리와 관계를 맺어,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알고 그분의 구원의 능력과 그분의 축복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하는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172.2)
 현대의 어법(語法)에 있어서, 언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거래를 하자”고 말씀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주도권을 잡으시며, 그가 제의를 하신다. 우리가 협상 테이블에 가져올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가 모든 것을 가지고 오신다. 우리는 협상에 있어서 영(零) 상태에서 출발하고, 그는 무한대(無限大)에서 출발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신다. 그는 오셔서 제의하신다. 물론, 성경적 언약은 양 당사자의 이해 관계와 요구 사항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동등한 인간의 계약을 훨씬 능가한다. 여호와께서 인간과 계약 관계에 들어가실 때, 그가 계약 규정들을 정하신다. 우리는 그분과 흥정하지 않는다. 구원과 언약의 축복은 언제나 하나님의 협약 조건(terms)에서 오는 것이어야지, 결코 우리의 협약 조건에서 와서는 안 된다. (172.3)
 하지만 우리에게도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제의를 거절하고 은혜로운 주도권을 경시할 수도 있고, 아니면 하나님의 규정들에 우리 자신을 위탁하고 하나님의 약속들을 받아들여서 기쁨으로 언약을 수용하여 체결할 수도 있다. (173.1)
 하나님의 비하(卑下)—이것은 성경적 언약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맹세로써 자신을 하잘것없는 남녀들에게 얽어매는 거룩하신 분. 그리하여—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인간의 육신을 취하시고 우리의 형제로서 그의 장막을 우리 중에 치셨을 때(요 1:14)의 그 무한한 비하의 예시(豫示). (173.2)
 언약의 주제가 연구와 영적 함양(涵養)을 위한 열매가 있는 만큼이나, 그것은 수년에 걸쳐 논쟁의 불씨가 되어 왔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옛 언약”—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시내 산에서 체결하신 것—은 율법주의적이라고 주장하였다. 그것에 빗대어, 그들은 십계명 준수를 헐뜯으려고 애썼다. (173.3)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도 “옛” 언약과 “새” 언약에 대하여 논쟁하여 왔다. 어떤 이들은 시내 산에서 체결된 언약은 그것이 믿음보다는 순종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폐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다른 이들은 언약 자체는 폐기되지 아니하였고, 사실상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동일한 언약을 가지고 계셨으며, 그가 다양한 때에 개인들과 이스라엘에게 재진술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시내 산의 문제는 언약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람에게 있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173.4)
 우리는 히브리서의 본문에 접할 때, 이러한 교의적 논제들을 제쳐놓아야 한다. 우리의 기본 임무는 히브리서의 맥락에서 언약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우리가 발견한 것을 언약에 관한 보다 광범위한 문제들에 연결시키도록 해야 한다. (173.5)
 언약—헬라어로 디아쎄케(diathēkē)—이란 말이 처음으로 언급된 곳은 히브리서 7:22이다. 예수님을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으로 세운 하나님의 맹세 때문에, 그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인(guarantor) 또는 보장(surety)이 되셨다고 한다. 사도가 설명은 하고 있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주시해야 한다. 즉 그분은 언약과 제사장직을 연결하는 것이다. (174.1)
 8장은 예수님의 더 좋은 봉사를 강조한다: 그는 더 좋은 성전—참 성전(8:1-2)—에서 봉사하신다. 그리고 그는 그가 중보하시는 언약이 옛 언약보다 뛰어나므로(8:6) 레위의 제사장들보다 더 나은 봉사를 하고 계신다. 그리고 이 언약은 더 좋은 약속들에 기초하고 있다. 이 약속들은 무엇인가?—하나님의 약속들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약속들인가? 8:6-9:11에서 집중 거론되고 10:18까지 확대되는, 언약에 대한 잇따른 토론은 해답을 드러낼 것이다. (174.2)
 「새국제역」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히브리서 8:7-8은 잘 균형진 사상들을 보이고 있다. 7절에서 우리는 “첫” 언약은 “잘못되었”거나 흠이 있는 것으로 발견하지만, 8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저희를 허물”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들은 시내 산의 언약 자체는 흠이 없었다—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날려 버렸다”—는 견해를 지지해 줄 것이다. (174.3)
 너무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 8절의 헬라어 본문은 애매 모호하다. 그 절에 대한 각주가 말해 주듯, 어떤 고대의 필사본들의 독법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이 흠을 발견하시고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이해할 때, 언약 자체가 흠이 있었고 백성들에게만이 아니었다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토론의 밑바닥까지 이르기 위하여 더 나아가야 한다. (174.4)
 히브리서 8:8-12의 긴 인용구—신약의 인용구 중에서 가장 긴—는 여러 가지의 개별적인 사상들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새 언약에 대한 예언, 오래 전 이스라엘의 실패, 마음 속에 심겨진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이 각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가르치실 것이기 때문에 교사가 필요 없음, 그리고 죄의 용서, 등에 대하여 보게 된다. 하지만 이 인용구에 이어지는 언급들에서 우리는 이 다양한 사상들에 대한 설명을 발견하지 못한다. 저자는, 그가 일찍이 시편 110:4시편 95:7-11에 대하여 한 것같이, 이 인용구를 취하여 적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약에 대한 저자의 이어지는 언급들을 주시함으로써만 여기에 인용한 예레미야 31: 31-34의 의도를 깨닫게 된다. (174.5)
 “첫” 언약에 대한 그의 즉각적인 주석은 그것이 낡아져 없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새 것을 등장시키신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한물 갔다(passé)—그것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8:13). (175.1)
 하지만 곧 이어 그의 논리는 의미심장한 선회를 한다.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고 그는 말하고(9:1), 계속해서 모세의 성소와 그 봉사들에 관하여 간략히 기술한다(2-7절). 즉, 그는 첫 언약과 이스라엘의 예법—희생 제도—을 연결시킨다. (175.2)
 언약에 관한 다음 언급은 9:15-22에 나온다. 이 절들은 후에 자세한 조사를 필요로 한다—9:16-17에서 「새국제역」의 “유언”(will)으로 번역된 말은 언약과 동일한 단어인 디아쎄케(diathēkē)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또 다시 사도가 언약과 희생 제물을 연계시키는 것을 다만 주시하게 될 것이다—첫 언약은 동물의 피로 비준되었으나 새 언약은 “첫 언약 때에 범한 죄”(9:15)로부터 백성을 자유케 하는 그리스도의 피로 비준되었다. (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