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비록 그렇기는 해도 아직도 인간의 노동에는 에덴 시절의 기쁨과 보람과 거룩함의 맹아를 지니고 있으며 낙원의 회복과 함께 노동의 참 모습도 회복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하는 구원 즉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일을 통하여 약속하는 쉼은 단순히 수고스러운 일의 압제로부터의 해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은 수고로부터의 해방된 삶으로의 초청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다른 종류의 일로 부르는 초청이다. 다른 차원의 질을 가진 일들로의 초청이고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전혀 다른 일 경험으로의 초청이기도 하다. 삶이라고 해서 다 같은 삶이 아니듯이 일이라고 해서 다 같은 일이 아니다. 땅의 일이 있고 하나님 나라의 일이 있다(
행 1:3). 일 가운데는 구원과 거룩함의 경험으로써의 일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안식일에도 일을 하겠다고 말씀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안식일에는 우리가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야 한다”(
요 9:3).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창조의 일이다. 생명을 낳고 생명을 치료하고 생명을 거룩하게 하는 일이다.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사람의 눈에 바르는”(
요 9:6) 일이다. 진흙으로 사람을 빚고 거기에 생기를 붓는 일이다(
창 2:7). 또 실로암(보내심을 받은 자)에게 가서 씻게 하는 일이다(
요 9:7). 따라서 안식일 메시지를 잘못 이해하게 하는 함정은 일의 수고로 고통스러워진 삶의 정황을 강조하고 고통스러운 수고로부터의 해방을 너무 강조하는 나머지 안식일 신앙에 내포된 차원 높은 일의 성격과 의의가 소홀히 취급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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