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대제사장(하늘 성소의 예수 그리스도) 제 11 장 그리스도의 재림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은 첫 번째 오심에서 이루지 않고 남겨 놓으신 것에 대한 성취이다. 지상에 그리스도의 사역은 구속의 사역에 있어 첫 장이었을 뿐이다. 거기에는 실현되어야 할 더 많은 것이 있다. 그리스도의 최상권은 아직 승인받지 못하였다. 죄는 여전히 더하고 있고 사단이 아직도 활개치고 있다. (212.4)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히 10:12, 13).
(212.5)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 그분의 사역의 첫 열매로 그분께서 자기의 자녀들을 위해 돌아오시겠다는 보증으로 지상에서 그분의 자녀들의 한 무리를 그분과 함께 데리고 가셨다(마 27:52, 53; 엡 4:8). 수백 만이 넘는 사람들이 무덤에서 그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다. 무덤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자녀들 사이의 분리는 영원한 것이 될 수 없다. 그분은 확실히 그들을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212.6)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 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3-18; 참고 고전 15:51-58).
(213.1)
 마침내 그분을 신뢰한 모든 사람들은 그의 영원한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된다. 이 확실성이 모든 시대를 통하여 재림의 소망이 되어 왔다. 그 소망은 이러한 마지막 때에 하나님 백성들의 중심이다.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하여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듯이, 또한 그분의 재림에 대해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듯이 이루어져야 한다. (213.2)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40).
(213.3)
 구원은 이생에서 용서, 칭의, 그리고 성화보다 더 많은 것을 포괄하고 있다. 구원은 여기서 그분을 믿는 사람들의 가납 그 이상의 것이다. 완전한 구원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포함한다. 구속의 경륜은 이것 없이 마쳐질 수가 없다. 완전한 구원은 위로부터의 새 질서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날에 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셨다. (213.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계 21:4, 5).
(213.5)
 인간의 진보가 이 일을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생명을 연장시킨다 해도 사람은 공포, 눈물, 죄와 사랑을 결코 정복할 수 없다. (214.1)
 사람에 의해 지구상에 완전한 사회가 실현될 수 있다는 단언은 부인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현재 문명의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항상 지속적으로 거룩한 계획이 되어 왔다. 그리스도는 어느 한 날에 그분의 계획을 완전케 하실 것이다.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완전한 존재들의 죄 없는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이러한 그림자들 너머에, 완전한 질서가 예수 그리스도의 최종적 계시와 함께 도래하게 될 것이다. (214.2)
 우리가 지금 여기서 우리 주님으로부터 의식적으로 받게 되면 우리는 더욱 갈망하게 되고, 확신은 더욱 깊어지며, 이 의에 대한 갈망은 부끄러움을 입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채울 수 있는 하나님에 의해서만 채워 질 것이다. 그리스도인 믿음은 소유된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궁극적인 실체에 고정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믿음에 따라 더 추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구름 중에 나타나실 때만 셋째 천사 기별의 완전한 성취를 발견할 수 있다. (214.3)
 돌연한 간섭
 세상의 상태에 관한 한 더 나은 변화가 성경에 약속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비관주의가 아니다. 성경의 진리이다. (214.4)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214.5)
 오늘날 어둠과 불의의 세력은 어디서나 증가 추세에 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점진적인 발전으로 복음이 선포되는 것과 문명을 구제하는 이론을 세울 수 있으나, 성경은 그것을 부인한다. 그리스도는 말씀하시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 18:36)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오심을 하늘 군대를 이끌고 흰말을 타고 오시는 자로 묘사했다. (215.1)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계 19:15, 16).
(215.2)
 그의 다시 오심은 돌연하며 격변적이다. 그것은 무서운 돌연성으로 세상에 임한다. (215.3)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27-31).
(215.4)
 사람들이 평화와 안전을 선포하고 있는 동안 돌연한 멸망이 그들에게 임한다. (215.5)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 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살전 5:2-6).
(2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