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대제사장(하늘 성소의 예수 그리스도) 제 11 장 그리스도의 재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7, 18).
(209.1)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셔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성도들을 부활시키기 위하여 다시 돌아오심이 없이는 그분은 오직 죽은 자의 하나님이 되실 뿐이다. 다시 오심은 그리스도 그 자신이 오셔야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의 마음에 성령의 오심이 그 약속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재림 시에 그의 성도들을 부활시킬 “그 날”에 대해 말씀하셨다. (209.2)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 29).
(209.3)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
(209.4)
 만일 현재의 질서가 있는 그대로 계속된다면 사단, 죄, 그리고 사망에 대한 그리스도의 뚜렷하고 영원한 승리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209.5)
 무덤이 마지막에 정복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한 요소가 죄와 사망보다 강하며, 한 가지 것이 둘 다에 대한 승리를 보장해 주는데, 사람은 불멸의 영혼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불멸의 구주를 갖고 있으며, 사람들이 사망시에 더 높은 생명이나 더 낮은 생명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들은 그분의 것이 된다. (209.6)
 죽음 후에 생명은 온전히 부활에만 의존되어 있다. 그분의 부활 시에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요 20:17)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하늘로 돌아가도록 부르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그를 무덤으로부터 불러내셨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지 못하셨다면, 그분은 지금 하늘에 계실 수가 없으실 것이다. 그는 아직도 팔레스타인 어딘가의 무덤에 있을 것이었다. 오직 부활에 의해서만 생명이 온다. 이것은 모든 신자들에게 진실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요 11:25)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는 우리 자신의 승리에 대한 보증이다. 그리스도인은 두려움 없이 사망을 맞이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오실 때에, 그리스도인은 그분의 음성에 의해 불멸로 일깨워지게 될 것이다. (209.7)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니(고전 15:51-57).
(210.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관하여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도록 하자. 그것은 아주 가까웠다. 그리스도께서는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 오실 때에 그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그리스도인의 영광스러운 날이다. (210.2)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게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 3:8-11).
(210.3)
 지상으로 그리스도의 눈에 보이는 개별적인 육신의 몸을 갖고 다시 오심은 초기 교회의 전반적인 믿음이었다. 신약은 이 근본 진리에 대한 언급이 풍부하다. 초대 신자들의 연합된 믿음과 기대를 설명할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 자신의 선언에서 찾아져야 한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개별적이며, 가시적으로 다시 오실 것을 전적으로 확신 했다(행 1:11; 살전 4:13-15; 히 9:27, 28; 계 1:7). (210.4)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관해 예언하고 말한 성경 기자들은 높은 도덕적 완전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성경 구절들은 단지 바라는 생각의 산물이나 병든 마음의 공상적인 발명이 아니다. 이 지상 역사의 마지막 사건들에 대한 그들의 증언은 전혀 실수가 없다. 그 때로부터 기독교는 이 진리를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음, 그리고 부활과 함께 그 신조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선포해 왔다. (211.1)
 우리 주님의 대 예언
 세 공관복음서의 기자들이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바로 전에 그분의 다시 오심의 확실성을 강조한 예언을 설명하고 있다(마 24; 막 13; 눅 21:5-36). 그들이 예루살렘의 장엄한 성전을 바라볼 때, 그리스도께서는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는 말씀으로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하셨다. 제자들이 즉시 그분에게 묻기를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3절). (211.2)
 그 때 예수께서는 유대 나라와 세상에 모두 임하는 거룩한 심판을 포함하여 미래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분은 자신의 제자들이 그들의 세대 안에 이루어질 유대 나라에 임하는 무서운 재난과 어두운 때를 준비하기를 원하셨다. (211.3)
 유대인에 관한 심판을 다루신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 하는 그들의 질문에 답하시기 위하여 즉시 응하셨다. 그분께서는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기 바로 전에 발생하게 될 하늘과 지상에 임할 다양한 표적들에 대해 말씀하셨다(눅 21:25-36 참고). (211.4)
 유대 나라에 관한 그리스도의 모든 예언이 그 모든 상세한 부분에서 놀라울 정도로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정확한 사실은 세상 끝과 그분의 다시 오심에 대한 예언도 그와 같이 정확한 문자적 성취를 이룰 것을 확실하게 해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다시 오심에 대한 시간보다도 그것의 확실성을 더 강조하셨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다시 오심의 사실이 너무 확실하고 분명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믿음의 근본 가운데 포함되도록 하셨다. (212.1)
 완성된 구원
 완전한 구원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것은 잃어버린 인간을 위한 구속과 새 땅의 회복이 실현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의 충분한 소원 성취는 아직 실현되어야만 한다. (212.2)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롬 8:21-24).
(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