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병거 제11장 엘리야의 등장
 구약성경의 마지막 장에는 종말적인 약속이 나온다. 이 장이 고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경고 메시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뿐만 아니라, 새 언약의 백성인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호소의 골자들을 담고 있기에 주목할 만하다. (209.1)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리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5. 6).
(209.2)
 신약성경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혹은 심판의 날을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날로 해석한다(히 9:27, 28). 하나님은 악한 자를 “뿌리와 가지가” 남겨지지 아니할 정도로(말 4:1) 완전하게 살라 버릴 멸망의 날에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자 “선지자 엘리야”를 보낼 것이다. 엘리야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하다. 만일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저주로 그 땅을” 치실 것이다. 반대로 이스라엘이 그 메시지를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다 주는 언약 가운데서 히나님과 연합할 것이다. (209.3)
 올 엘리야는 누구인가? 이스라엘이 바알 신 숭배로 배교의 위기에 빠졌을 때에 이스라엘에게 경고한 그 선지자인가? 이 메시지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하여 백성을 준비케 하는 책인 요한계시록에 다시 나오는가? (210.1)
 역사를 통하여 수많은 기별자들이 자칭 엘리야라고 주장해 왔다. 그리스도인들은 엘리야가 돌아올 것이라는 이 흥미로운 예언의 의미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 때에 참된 엘리야와 거짓 엘리야를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210.2)
 길르앗에 우거한 디셉 사람 엘리야는 말라기와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고대 선지자이었다(왕상 17:1). 그는 말라기보다 400년 전에, 그리스도보다는 800년 전에 살았다. 열왕기서는 종교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배도하였을 때에 엘리야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낸 선지자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바알 숭배라는 우상 숭배와 부도덕에 빠졌다. 그리하여 엘리야의 사명은 모세 언약을 회복하도록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 모세 계약을 부활 소성케 하고, 이스라엘이 야훼를 거룩하게 경배하는 것을 회복케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말라기에게 “내가 마지막 심판이 있기 전에 엘리야를 다시 보낼 것이다”라고 한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분명히 다시 배도하였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210.3)
 성경를 피상적으로 읽으면 이 약속은 선지자가 친히 직접 돌아 올 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신약성경상 이 예언은 실제로 선지자가 다시 온다기보다는 오히려 엘리야의 기별이 이중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말라기의 예언을 자신의 초림을 위하여 길을 예비하기로 계획된 엘리야의 심령 및 성정과 유사한 부흥과 개혁의 메시지의 도래로 해석하였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고대 선지자에게 주어진 심령 및 성정과 유사하면서 예수의 재림을 위한 길을 준비하는 목적을 지닌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엘리야의 메시지는 옛날 그 문자적인 선지자의 환생 혹은 재출현이 아니라,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강림을 위하여 준비하도록 하는 부르심이다. (210.4)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엘리야가 메시야의 선구자로 먼저 와야만 한다고 주장한 랍비들이 옳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씀하셨다(마 17: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11-13절). (211.1)
 세례 요한은 자기가 고대의 선지자인 엘리야의 환생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지만(요 1:21) 자기의 사명이 “소리” 혹은 메시지가 되는 것임을 강조하고, 메시야의 임박한 출현을 선포하였다. 그는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고 대답하였다(23절). (211.2)
 요한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가브리엘 천사는 요한의 부모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고 선언하였다(눅 1:16, 17). (211.3)
 가브리엘은 말라기 4장의 말씀들을 인용하여 요한의 사명에 적용하였다. 엘리야의 메시지가 그리스도의 강림을 위한 준비의 기별이라고 말하면서 가브리엘은 구약성경의 예언을 기독론적으로 해석하였다. (211.4)
 이리하여 신약성경은 또한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된 말라기의 예언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해 준다. “크고 두려운” 심판의 날이라는 강조에서 간파할 수 있듯이, 이 고대 예언은 가장 직접적으로 이 사건을 지적하고 있는바, 신약성경은 같은 사건을 예수의 재림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도들은 심판의 날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라고 부른다(고전 1:7, 8; 5:5; 고후 1:14을 보라). (211.5)
 1. 세례 요한의 메시지
 그렇다면 엘리야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반복되어야만 한다. 그 메시지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도록 사람들을 준비케 할 것이다. 세례 요한이 사람들을 초림을 위해 준비시킨 행위에 주목함으로써 마지막 엘리야의 메시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요한이 “모든 것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7:11). 그는 엘리야가 행한 일 즉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으로 되돌아오도록 부르는 일을 행하였다. (212.1)
 헤롯 왕이 자기 동생의 아내와 저지른 부정한 관계에 대하여 요한이 책망하였을 때에(눅 3:19) 보여준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고양은 요한의 생명을 잃게 하였다. 하지만 그는 율법주의자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설교하였기 때문이다(요 1:29). (212.2)
 이러한 부흥과 개혁의 메시지가 오늘날에도 필요한가? 역사상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이렇게도 방약무인하게 짓밟은 적이 없어 왔다. 또 사람들이 이토록 널리 하나님을 배척한 적도 없었고, 그의 말씀을 이렇게도 무시한 적이 없었다. 오늘날만큼 세상이 엘리야의 기별을 필요로 하던 때도 없다. (212.3)
 엘리야의 메시지는 우리로 하여금 임박한 그리그도의 오심을 느끼게 해준다. 왜냐하면 이 메시지는 정확한 시기에 당도하기 때문이다. 세례 요한은 초림 수세기 전에 태어나지 않았다一그는 초림을 소개하였다. 마찬가지로 엘리야 메시지의 선포는 재림을 소개한다. 엘리야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디에 있든지 그들을 배도로부터 불러내어, 하나님과 올바른 언약 관계로 되돌아가도록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메시지이다. (212.4)
 우리는 오늘날을 위한 이 메시지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하여 엘리야가 말한 기별의 본질을 면밀히 살펴보아야만 한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기초적으로 틀린 해석을 하는 일로 나가지 않도록 우리 자신들을 지킬 수 있다. (213.1)
 2. 엘리야의 기별
 열왕기상 16:30-33에는 아합 왕과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이 결혼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스라엘 왕들이 이교도와 결혼하는 것은 금지되어 왔다. 그 이유는 결혼 반려 자가 노상 이교적인 종교를 유입해 오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서도 그러했다. 야훼를 향한 참 예배와 바알 예배를 섞어 백성들에게 주입시켜 강요하였기 때문이다. (2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