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 너는 내앞에서 행하여〔할락〕 완전하라〔타밈〕”(창세기 17장 1절). (85.3)
 하나님을 너무도 기쁘게 해드린 에녹도(히브리서 11장 5절 참조). 승천하기 전에 “하나님과 동행하〔할락〕”(창세기 5잔 24절)였다고 적혀 있다. 완전이 무엇임을 설명하는 이 “행(行)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85.4)
 “행위 완전하여〔타밈〕 여호와의 법(토라〕에 행하는〔할락〕자가 복이 있음이여”(시편 119편 1절). (85.5)
 완전의 뜻이 분명해졌다. 완전을 추상적이고 정적(靜的)인 흠없는 상태로 보는 것은 희랍적 사상이다. 성경적인 완전이란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입증된 하나님의 성실하신 사랑과 은혜에 기초를 둔 역동적(方動的)인 언약 관계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신명기 7장 7~9절 참조). (85.6)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完全〕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完全〕하라”(마태복음 5장 48절)는 말씀에서, 접속사 “그러므로”는 그 앞에 소개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맛본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그와같이 하라는 권면이다. 같은 내용의 권면의 누가복음에는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6장 35절)고 표현돼 있다. 결국 이것은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로마서 13장 8절)는 말씀이나.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사랑은 율법의 완성”(로마서 13장 10절)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85.7)
 “공의를 일삼으며”—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형식적인 종교 의식이 아니라.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行)하는 것”(미가 6장 8절)임을 깨달아야 한다. 의(義 • 체덱)는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이다. (86.1)
놀랍게도 공고된 천국 시민의 자격 가운데 1/3이상의 말과 관련돼 있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언 18장 21절)는 말씀을 새삼스럽게 하고 있다.
(86.2)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누가복음 6장 45절)하는 사실을 이해할 때 진실한 말의 근원인 진실한 마음이 한충 절실해진다. 남에 대해 말하려거든 적어도 아래에 적힌 입 속의 네 문을 통과하라는 충고가 있다. (86.3)
 첫째 관문: 남에 관한 지켜 주어야 할 비밀이 아닌가?

 둘째 관문: 내용이 참된 말인가?

 셋째 관문: 꼭 해야 하는 필요한 말인가?

 넷깨 관문: 말하고나서 후회하지 않을 덕이 될 말인가? (86.4)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베드로전서 3장 10절)라는 권면은 말〔言語〕의 성화(聖化)가 얼마나 긴요한지를 극도로 강조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천국 시민의 세 가지 적극적인 특성은 다시 여덟 가지의 부정적 측면을 구체화함으로써 강세를 더하고 있다. (87.1)
 말과 재물과 이웃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시편 15편 3~5절). (87.2)
 놀랍게도 공고된 천국 시민의 자격 가운데 1/3이상의 말과 관련돼 있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언 18장 21절)는 말씀을 새삼스럽게 하고 있다. “발〔足〕을 사용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라갈(ragal)”에서 나온 참소란 말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말로 남을 헐뜯고 깎아내리는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공존할 수 없다는 엄숙한 경고이다.

 (87.3)
 자신이 가진 재물로 이웃에 덕을 입히기는커녕 남의 가난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고 공의를 그르치며 사회 질서를 교란시키는 파렴치한 이웃이 성산에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높이는 경건한 사람들을 멸시하고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는 줏대 없고 분별력 없는 사람들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할 것이며 심판날에 타작 마당의 거같이 하릴없이 날아갈 것이다(시편 1 편 4, 5절 참조). (88.1)
 그러나 산상보훈의 결론처럼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같”(마태복음 7장 24절)아서, 영영히 요동치 않게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반석같이 견고한 약속이요 보증이다. (88.2)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사람
 별로 예쁘지도 않은, 털이 엉성한 고양이 새끼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 포스터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사진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보시다시피 우리는 완전하지 못해요. 그러나 보시는 대로 우리는 완전히 사랑스럽답니다(We are perfectly lovable).” 사람이 더불어 함께 살줄 알게 될 때 비로소 공동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람 인(人), 사이 간(間)의 인간(人間)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과 사람 사이〔間〕가 사랑으로 채워질 때 사람은 행복을 경험하게 되고 서로가 사랑안에서 완전을 체험하게 된다. (89.1)
 사도 요한은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 14장에서 배신과 반역, 시기와 증오, 교만과 이기심으로 오염된 인간 품질의 공해를 이기고 마침내 거룩한 산 시온에 우뚝 선 상징적인 천국의 모범시민 14만 4천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저 높고 거룩한 곳을 향하여” 오르고 또 오르는 저 시편에 그 특성이 열거된 거룩한 산〔聖山〕 시온의 등반대인 것이다(시편 15편 1절; 24편 3~5절; 이사야 33장 13~16절 참조). (89.2)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자가 누군고?” 그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동료 인간과 더불어 영원히 함께 살수 있는 거룩하고 사랑스러운 성품을 꼴짓기 위하여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인도를 따라 성화(聖化)의 산 시온의 정상을 향해 오늘도 줄기찬 등반을 계속하는 그대와 나일 수 있음을 시편은 넌지시 확신시키고 있다. (8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