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끼리 맺고 사는 널따란 수평적(水平的)인 관계는 사람이 자신을 있게 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 맺어지는 높다란 수직적(垂直的)인 관계에 의하여 비로소 영원한 의미를 찾게 된다.

 — 시편 15편(81.1)
 모범 인간 명세서
 물건은 품질(品質)에 따라 가격(價格)이 정해지고 사람은 성품에 의해 인격(人格)이 정해진다. 사람은 고유하기 때문에 인격을 값으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물건이 품질에 따라 가격이 높고 낮아지듯이, 사람의 인격도 사람에 따라 높낮이가 있는 것이다. 품질의 어떠함에 따라 물건의 쓸모와 값이 정해지듯 사람의 경우도 “공언(公言)은 (심판의) 저울에 다는 데는 아무것도 아니다.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성품이다”(엘렌 G. 화잇. 실물교훈, 67). 그렇다면 어떠한 성품이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보증하는 진정한 표준이 되는가? (81.2)
 시편 23편(목자의 시)과 함께 가장 널리 애송되는 시편 15편이 바로 그 대답이다. “선량한 시민”, 혹은 “하나님의 신사”로 불리우는 이 시편에는 모세의 오경에 기록된 613가지의 모세의 율법이 모두 요약되어 있다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주석책 탈무드의 정평까지 곁들여 있어, 보증된 표준 성품에 관한 우리의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른바 하나님의 나라에 영주할 수 있는 모범 시민의 성품 명세서인 것이다. (82.1)
 행복한 철칙(鐵則)
 올바른 성품이 왜 그토록 강조되어야 하는가? 인생을 얼마쯤 살아 본 사람은 이미 그 까닭을 알고 있다. 행복하기 위하여 운명을 거는 제2의 인생이라는 결혼도 결국 어떤 성품을 가진 배우자를 만났느냐에 따라, 가정이 행복의 낙원도 되고 불행의 늪도 되는 것이다. 성품이 괴팍스러운, 직장이나 군대의 상사와 동료를 겪은 괴로운 회상이 있다면 그 대답은 더욱 분명해진다. (82.2)
 사람은 홀로 살 수 없고 더불어 함께 살게 마련이다. 그렇게 맺어진 부모와 자식, 부부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주고 받을 때 사람은 비로소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끼리 맺고 사는 널따란 수평적(水平的)인 관계는 사람이 자신을 있게 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 맺어지는 높다란 수직적(垂直的)인 관계에 의하여 비로소 영원한 의미를 찾게 된다. (82.3)
 이렇게 올바로 맺어진 관계 속에서 사랑할(to love) 때와 사랑을 받을(to be loved) 때에만 행복할 수 있는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이 마련하신 행복의 철칙(鐵則)이 곧 십계명이다. 처음 네 계명은 사람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행복한지를 밝힌 것이고. 나머지 여섯 계명은 사람끼리 어떻게 지내야 행복이 보장되는지를 규정한 것이다. 그래서 십계명은 결국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누가복음 10장 27절)는 두 구절로 요약되고, 마침내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로마서 13장 10절)이라는 한마디로 집약되어, 사랑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행복의 철칙임을 강조하고 있다. (82.4)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함께 계실 수 없게 된 하나님께서 끝내 사람을 만나시고 함께 머물고 싶으셔서 임시 거처로 삼으신 곳이 회막(會幕), 곧 성소였다(출애굽기 25장 8절 참조). 인생 광야를 유랑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장막에 거하시던 하나님은 후에 다윗이 왕이 되면서 마련해 드린 예루살렘에 처소를 정하시고 거룩한 산〔성산〕에 거하시기 위해 오벳 에돔의 집을 떠나 법궤와 함께 그리로 옮기셨다(사무엘하 6장역대상 15장 참조). (83.1)
 이러한 배경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누구나 심령에 메아리쳐 오는 시온산의 엄숙한 산울림에 반향하는 것이다. (83.2)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백성들은 죄 때문에 저질(低質)이 된 그들의 인간 품질인 성품을 낮은 데서 높은 데로 향상(向上) 시켜야 한다. 그것이 “여호와의 산”에 올라 “거룩한 곳”에 서야 할 백성들의 시온산을 오르는 줄기찬 인생 등반인 것이다.
(83.3)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시편 24편 1, 3절). (83.4)
 그렇다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이사야 57장 15절)시는 하나님을 만나려 하는 인생 나그네들 그리고 마침내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 백성은 죄 때문에 저질(低質)이 된 그들의 인간 품질인 성품을 낮은 데서 높은 데로 향상(向上)시켜야 한다. 그것이 “여호와의 산”에 올라 “거룩한 곳”에 서야 할 백성들의 시온산을 오르는 줄기찬 인생 등반(登攀)인 것이다. (84.1)
 누구오니이까
 누가 감히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함께 시온산에 거하기 위해 겁 없이 나설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엄두를 내는 그들은 “누구오며” 하나님과 함께 거기 머물기로 작심한 그들은 도대체 “누구오니이까.” (84.2)
 그들은 이미 출애굽을 경험하고 속죄의 피로 뿌림을 받아 의롭다는 선언(稱義)을 받은(출애굽기 24장 5~8절 참조) 하나님의 백성들이다(신명기 33장 29절 참조). 이제 그들은 죄사함을 받아 의롭게 된 자신들의 신분에 합당한 거룩하고 완전한 생애를 삶으로써〔聖化〕 하나님 앞에서 살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시편 포편 2절 이하에 기록된 천국 시민의 특성이다. (84.3)
 “정직〔완전〕하게 행하며(walks)

   공의를 일삼으며(works)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speaks)”

   (시편 15편 2절). (84.4)
 “정직하게 행(行)하며”—이곳의 정직은 놀랍게도 흠이 없는(blameless) 완전을 뜻하는 히브리어의 타밈(tamim)이다. 사람이 어떻게 흠 없이 완전해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완전”이라는 말이 쓰여질 때마다 한 짝처럼 나타나는 말이 있어 완전의 뜻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곧 히브리어로 “할락”(halak)이라고 하는 동사 “걸어가다(行)”이다. (85.1)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타밈〕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할락〕”(창세기 6장 9절). (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