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성소 (재림교회 신학의 심장) 〈부록〉 개인적인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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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에 쓰인 수정된 형태의 이 간증은 애드벤티스 리뷰(Adventist Review), 1982년 11월 4일자, 7, 8쪽에 처음 실렸다. 독자가 말하는 대로 표현하면 내 출신이 어디인지, 그리고 이 책에 포함된 주제에 대한 나의 접근 방식이 무엇인지에 관해 더 나은 이해를 갖도록 이 기사를 여기에 게재했다.) (186.1)
 1960년대 중반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을 때 나는 재림교인들 가운데 성소 교리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 을 재림교회의 밀실에 들어 있는 비밀사항의 일종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186.2)
 재림교회에서 그 교리가 점하는 중심적 위치 때문에, 이런 태도는 나에게 적잖은 불쾌감을 주었다. 나는 영국 국교회 집안에서 양육되었고, 교회의 가르침과 성경을 조화시킬 수 없게 되자 그 교파를 떠났다. 과연 내가 새로 입교한 교회에서도 동일한 상황에 직면할 것인가? 그 문제는 내가 대학의 학문의 장을 떠나 목회를 시작하면서 곧 보류 되었다. (186.3)
 하지만 7년 후 내가 다시 대학의 학문적 분위기로 돌아와 박사학위 논문을 써야 할 상황에 처했다. 나는 재림교회의 성소 교리와 관련된 연구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진행할 수 있었는가? (187.1)
 내가 십대로서 중등학교에 다닐 때 냉철한 탐구심이 배양되었다. 우리는 모든 주장을 그것의 출처에 상관없이 비평적으로 연구하도록 장려 받았다. 나는 이런 철저한 연구 태도를, 많은 재림교인들이 가장 난감하게 여기는 교리와 관련된 주제에 접목시켰다. (187.2)
 그러므로 나는 대학의 배경이 제공하는 면밀한 조사에 의존하여 무난히 연구에 착수하였다. 그때까지 존재하는 문헌 조사를 통해 그 전에 성소 교리에 대해 그러한 접근을 시도한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나는 속담에 나오는 대로 천사들도 밟기를 두려워 하는 영역으로 돌진하는 바보처럼 느껴지곤 하였다.(좌절도 있었지만) 나의 유일한 위로는 내가 그 주제로 급하게 덤벼들지 않고 오히려 천천히 공들여 연구한 것이었다. 나는 진리란 탐구해도 변치 않고 그대로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지지하는 교리는 비평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1) 엘렌 G. 화잇의 진술들을 통해 힘을 얻었다. (187.3)
 그렇지만 이것이 내가 엘렌 G. 화잇의 글들에서 얻을 수 있는 지침의 모두였다. 재림교인들이 성소 교리의 토대를 그녀의 글들에 둔다는 비평을 충분히 파악한 후에, 나는 성소 교리에 대한 나의 평가에서 그녀의 글에 하나라도 규범적인 가치를 두는 것이 매우 부적합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의도적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동안 줄 곧 화잇 여사가 그 주제에 대해 언급한 것에 정신적인 담을 쌓으려고 했다. (187.4)
 재림교회 내의 적극적인 충성파 중 어떤 이들은 이런 접근방식에 대해 의문을 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만일 재림교인들이 선조들의 가르침을 성경과 이성의 따끔한 시금석에 비춰 평가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전통에 매달린다면 가톨릭 교회나 몰몬교회의 전통주의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우리의 설교를 듣는 가톨릭교인이나 몰몬교인들이 그들의 선조들의 전통을 치우침 없는 비평적인 평가에 굴복 시키기를 기대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겐 덜 요구하는가? 나의 접근방식은 이런 사고 절차를 통해 꼴 지어져야 했다. 말하자면 내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임을 잊고 되도록 편견이 전혀 없이 연구를 수행해야만 했다. (188.1)
 그러나 바로 이 결정적인 점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잘못을 저지른다. 그들은 “중립적인” 입장보다는 “반대” 입장을 취한다. 재림교회 학자들이 객관적으로 보이기 위해 타 신학계에서 특이한 개념으로 여겨 지는 어떤 것 곧 반재림교회적 요소를 실제로 또는 때때로 무의식적으로 채용하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연구자와 독자를 기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학문적 작업에 꼭 필요한 객관성을 저버리는 행위이다. (188.2)
 게다가 학자들은 되도록 완전한 중립의 지점에 이르기 위해 자기의 내적인 동기도 조사해야 한다. 이런 저런 종류의 부정적인 경험이나 잘못된 동기가 특정 문제에 대한 삐뚤어지고 치우친 접근방식으로 바뀌기가 쉽다. 예컨대 특정 주제에 대한 더할 나위 없이 나쁜 설교, 어떤 행정자나 동료에게 품은 분개심, 개신교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 이는 신학적 규범들을 따르려는 경향, 교회 지도자들에게 충성파로 인정받고 싶은 열망, 악명 높은 자로 남고 싶거나 선구자로 평가받고 싶은 충동, 혹은 기타 여러 가지 자아 중심적인 요인들로 나타날 수 있다. 이것들은 어느 것이나 학문적 사고나 논증들을 왜곡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다. 그것은 매우 불확실한 연구가 된다. (188.3)
 나는 끊임없이 이런 함정들을 되새기면서, 그 주제를 놓고 매주 지칠 만큼 공부했다. 재림교회의 입장을 성경과 비교할 뿐만 아니라, 내 논문이 마쳐진 1980년 8월 초순까지 찾을 수 있었던 재림교회 입장에 대한 비평을 모조리 읽었다. 나의 탐구는 당시 성소 문제로 교회 내에 동요가 일기 전에 이미 시작되었고, 따라서 그것으로 인해 급조 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논쟁이 나의 연구의 의의(意義)를 고조시켜, 수많은 시간을 뜬눈으로 새며 수행한 연구가 순전히 학문적인 것 만은 아니라는 확증을 주었다. (189.1)
 1979년 가을쯤 그 논쟁이 불거지기 시작했을 때, 내 연구의 영역을 알고 있던 몇 사람이 성소 교리와 관련하여 이런 저런 문제에 대한 내 견해를 듣기 위해 거의 매일 찾아왔다. 그러나 6개월 이상 나는 구체적으로 논평하는 것을 간단히 거절해 버렸지만 마음속으론 그런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189.2)
 그 주제로 점점 깊이 들어가면서 나는 사실 나의 연구가 어디로 진행돼 나갈지 불안하였다. 나의 연구작업을 열정적이며 편견 없이 하기로 한 약속은 박사학위 논문 위원회에 의해 강화되었고, 그것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나의 발견과 결론이 이 문제에 관한 재림교회의 기본적인 가르침에 배치되는 것으로 판명되면 어떻게 될까? 내가 생각하기로, 나의 결론들이 전적으로 교회의 입장을 무효화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그 정도로 오만 방자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관심은 곧 교회의 기본 신조와 관련하여 잘못된 결론에 도달함으로써 발생할 교회와 나의 개인적인 관계에 있었다. (189.3)
 약 2년의 비평적인 평가를 거친 후에 나는 결론을 쓸 준비가 되었다. 나는 몇몇 재림교회의 걸출한 신학자들(그리고 교회 전체)이 과거에 취한 입장을 때론 강하게 비판했고, 교회의 몇몇 비평자들, 특히 앨비언 폭스 밸린저 같은 사람들이 성소 교리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점을 환기시켰다. 하지만 이렇듯 냉철한 연구로, “[나의] 연구를 통해 접 한 증거는 재림교회가 발전시킨 [성소 교리]의 기본 영역에 전혀 치명 적이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2)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190.1)
 이런 결론의 가치는 과소 평가돼서는 안 된다. 이는 내가 1844년의 의미 혹은 재림 전 심판 혹은 십자가를 구심점으로 하여 하늘 성소에 집중된 최종적 속죄와 관련된 우리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무효화 시킬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전혀 찾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나는 이런 입장들이 신학적으로 건전할 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매력적인 것임을 믿는다. (190.2)
 내 논문의 결론을 쓴 후, 사흘 정도 나는 성소 문제로 모인 글레이셔 뷰(Glacier View) 회의의 대표자로 앉아 있었다. 우리가 모인 목적이 있었지만, 나의 개인적인 관심은 내가 얼마 전에 내린 논문의 결론을 회의 결과에 따라 수정해야 할지 아니면 단념해야 할지를 주시하는 데 있었다. 다행히도 내 연구가 아직 심사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회의의 협의안은 나의 결론들이 성소에 관한 교회의 기본 입장에 비추어 건전한지를 다루지 않고 넘어갔다. (190.3)
 더욱이 나는 성소 교리의 완전함에 대해 훨씬 더 강화된 믿음을 가지고 그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매일 회의에 참석하면서 나는 본 교단 내의 예리한 지성을 지닌 신학자들이 이 주제를 둘러싼 중요한 쟁점들을 자유롭고 진솔하게 토론하는 것을 목격했다. 회의에서 도출된 합의점은 내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그것에는 내가 앤듀루스 대학교의 개인 열람실에서 외롭게 한 연구가 줄 수 없는 면이 있었다. (191.1)
 이 부록은 내가 기술한 논문의 결론3)으로 도출한 주장을 제시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또한 그것은 성경적 및 이성적 고찰이나, 심지어 의식의 더 깊은 차원에서 내게 확신을 심어준 초이성적 고찰도 상술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소를 연구하는 한 학생이 재림교회 내에 존재하는 신학적 관심의 한 쟁점을 어떻게 해결했는지에 관한 개인적인 간증일 뿐이다. (191.2)
 참고
 1) 참조 Ellen G. White, Counsels to Writers and Editors, 35; 교회증언, 제5권(Mountain View, CA: Pacific Press Pub. Assn., 1948), 707, 708.

 2) 참조 The Sanctuary Doctrine, 283.

 3) 나의 결론을 보기 원하는 자들은 내 박사학위 논문을 참조하라.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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