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요한복음 제II부 예수와 옛 세대 (1:19-4:54) 제 5 장 국외자(局外者)들이 제자가 됨 (4)
 문단의 구조
 병든 아들이 있는 왕의 신하의 이야기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시작한 사이클(cycle)을 마무리한다. 다시 한번 예수께서는 가나에서 위대한 표적을 행하셨다(46, 54절). 이 이야기와 평행을 이루는 기사들(마 8:5-13; 눅 7:1-10)에서, 예수께 나아온 자는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사들과 요한복음의 기사 사이의 상이점들이 너무 커서 두 개의 완전히 다른 사건들이 이 기사들 이면에 있는 것 같다(화잇, 시대의 소망, 196-200, 315-320을 보라). (139.5)
 요한복음 4장의 신하는 아마도 헤롯을 섬기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만약 그가 이방인이라면(그러나 화잇, 시대의 소망, 196을 보라), 이 이야기도 역시 “누구든지 사이클”(“whoever cycle”)을 마무리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니고데모 및 사마리아 여인과의 면담과 비교하고 대조할 때, 매우 두드러지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3:1-21), 사마리아인(4:7-42), 그리고 이방인(4:46-54) 모두가 예수께 나아온다. (140.1)
 그러나 비록 이 이야기가 가나의 혼인 잔치와 거기서 시작된 사건들의 사이클(cycle)과 분명히 연결되어 있지만, 그것은 또한 “예수께서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심”(5-12장)이라는 제목이 붙은 부분[제3부]을 시작하는 다음 장[제6장]과 “양방향적”(“duodirectional”)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연못가의 중풍병자의 이야기(5:1-15)에서처럼, 예수께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사람에게 생명을 주신다. (140.2)
 문단의 세부 사항
 요한복음 4:43-45는 생경(生硬)한 문단이다. 예수께서는 선지자가 고향에서 높임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갈릴리로 접근하신다(44절). 그럼에도 갈릴리 사람들의 반응은 그를 환영하는 것이었다(45절). 이와 같은 모순에 대한 해결책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언급에서 찾아볼 수 있다(45절). 이 갈릴리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표적에 기초한 표면적인 믿음만을 계발시키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44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의 핵심은 단순히 이적 때문에 그를 열망하는 것은 그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일한 참된 예배는 신령(spirit)과 진정(truth)에 기초한 것이다. (140.3)
 왕의 신하는 가나에 계신 예수를 만나고자 약 16마일(26킬로미터) 떨어진 가버나움으로부터 왔다. 그는 예수께서 그의 아들을 고쳐주시기를 희망했다(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병든 자가 신하의 아들이 아니라 백부장의 하인이다). 예수께서는 다소 무례하게 그를 대하셨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48절). 이 말씀은 4:44, 45의 인상을 확증해 준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사람들 속에서 이적과 특별한 사업에 경외감을 가지면서도 그의 말씀을 믿는 데는 느린 사람들을 보셨다. 니고데모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부정적인 사람들을 깨뜨리기 위하여 직설 화법이 필요함을 알고 계셨다. (141.1)
 관원은 그의 사명에 문제가 생긴 것을 깨닫고, 그의 아들이 죽기 전에 급히 왕림해 달라고 예수께 한 번 더 간청했다(49절). 그 사람이 예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는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라는 말씀뿐이었다. 그 밖의 다른 확증이나 행동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의 믿음은 아무런 보증이 없는 말씀을 붙잡을 만큼 성숙한 것일까? 아니면 그가 믿기 전에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할까? (141.2)
 이 대화는 이 복음서의 말미에 나오는 예수와 도마의 만남에 대한 맛보기(foretaste)를 제공한다(20:29). 표적의 의도는 믿음을 굳게 하는 것이지만, 표적에 의해서만 힘을 얻는 믿음은 예수께서 격려하시는 복된 믿음이 아니다. 기적적인 행위의 경외스러움 자체가 그 이적 속에 담겨 있는 예수의 계시를 보는 믿음의 눈을 멀게 할 수 있다. 참된 그리스도교 믿음은 일차적으로 예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 (141.3)
 이 사람은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는 진심으로 믿게 되었다. 그의 믿음은 예수와 만난 후에 집으로 가는 모습 속에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그는 예수를 제7시, 즉 오후 1시에 만났다(52, 53절). 만일 그가 서둘러 움직이면 그 날 밤 안으로 가버나움에 돌아갈 수 있었다(화잇, 시대의 소망, 199).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경치 좋은 길을 택해 갔다. 꽃 냄새를 맡으면서 길가에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예수께 대하여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가족들이 그를 찾기 위해 하인들을 내보냈다(51절). 그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각에 그의 아들이 나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예수의 이적은 예수의 말씀과 더불어 그 아버지의 믿음을 견고히 하였고, 그 결과 온 집이 다 예수를 믿게 되었다. (141.4)
 문단의 주요 주제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의 기본 목적—사랑받던 제자[요한]의 죽음이 가까워진 시기에 제2 세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이중 기별—을 강조하고 있다(「서론」을 보라). 제2 세대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첫째 기별은 예수께서는 멀리 계시면서도 육신으로 함께 계신 것처럼 능력을 행사할 수 있으시다는 것이다. 제2 세대가 예수를 알고 동행했던 사람들보다 불리한 입장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142.1)
 제2 세대를 향한 둘째 기별은 예수의 말씀이 능력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말씀을 연구함으로써 사람들은 예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실 때 그들에게 부어줄 수 있는 것과 동일한 축복을 모두 얻을 수 있다. 기록된 말씀은 예수께서 육신으로 임재하시는 것만큼이나 능력이 있다. 그의 말씀은 그를 만지는 것과 같은 힘이 있다. (142.2)
 이 이야기의 관원의 태도는 또한 일상의 문제를 어떻게 취급해야 되는지에 대한 탁월한 예증을 제공해 주고 있다. 첫째, 그대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어떤 사람에겐 이 일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 될 것이다. 둘째로, 문제를 예수께 가지고 가라. 셋째, 그로부터 그대의 필요가 충족되었다는 말씀을 받아라. 예수께서 육신으로 함께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성경에 나오는 그분의 말씀을 연구함으로 할 수 있다. 그의 말씀은 그를 만지는 것과 같은 힘이 있다. 그대가 그의 말씀을 알고 있다면, 그대는 삶의 문제를 해결할 최선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넷째, 그대가 말씀 속에서 받은 해답을 말하고 실행하라. 많은 이들에게 이 일은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그가 믿는 자들에게 분명히 약속한 것을 그대가 요청했을 때, 그가 약속하신 대로 이루실 것이라는 생각에 따라 살고 행동할 때는 지금이다. 예수께서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그가 그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할 필요가 있다. (142.3)
 ■ 말씀을 적용함
 1.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대가 극복하기 어려운 사회적, 인종적, 성적, 그리고 종교적 장벽들은 어떤 것들인가? 이 이야기에 기초하여, 그대는 예수께서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 각자에게 어떻게 대하실 것으로 생각하는가? (143.1)
 2. 예수께서 그 여인과 만나신 것은 우연이 아니라 예수의 생애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그대는 그대가 처음 예수와 만난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였다고 생각하는가? 그대의 확신을 지지하는 증거를 찾아보라. (143.2)
 3. 예수께서는 그가 제기하신 문제와 부딪치기를 회피하고자 화제를 바꾸려는 그 여인의 반복된 시도들을 끈기 있게 참아내셨다.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나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라는 도전을 감당할 시간을 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대는 결심을 하기 전에 내용을 깊이 생각할 여분의 시간이 필요했던 적이 있는가?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것처럼 밀어 붙여야 할 때와 우물가의 여인에게 하신 것처럼 물러서야 할 때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43.3)
 4. 그대가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갈 때, 그분의 돌보심에 다 맡겨버리는가? 아니면 스스로 계속하여 그에 대해 염려하고 불평하는가? 그대가 하나님을 신뢰했을 때, 그가 성경에 약속된 그대로 해 주신 때가 있었는가? (1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