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요한복음 제II부 예수와 옛 세대 (1:19-4:54) 제 5 장 국외자(局外者)들이 제자가 됨 (4)
 북방 이스라엘의 혼합 예배는 바벨론 유수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비록 다른 많은 민족들이 북방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섞였으나, 그들 또한 고대 히브리 신앙으로 훈련을 받았다(왕하 17:24-28). 사마리아인들의 혼잡된 신앙(41절)은 또한 포로 이전에 유다에 있던 배교한 예배와 흡사하였다(왕하 21:1-15; 23:26, 27). 사실 야훼 예배를 혼합시키고 우상 숭배적으로 변질시킨 형태들은 사사들의 시대에 이미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었다(삿 17-19). (130.3)
 유대인들 중의 다수는 바벨론 유수에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실제로 바벨론에 간 수천 명의 사람들은 볼모로 잡혀 있었다. 다니엘, 에스겔, 그리고 에스라와 같은 사람들의 봉사로 바벨론에 있던 포로들은 그들의 신앙을 개혁하고 유수 전에 매우 보편화되어 있던 우상 숭배의 요소를 제거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팔레스타인에 돌아왔을 때, 그들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외국인처럼 취급했는데, 이것은 그들의 종교가 바벨론에서 시행된 개혁을 반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사마리아인들은 이로 인하여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참된 “부조들의 신앙”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00년 이상이 지난 후에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과 상종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그리심 산에 자신들의 성전을 세웠다(c. 330 B.C.). (130.4)
 이로 인한 양극화(兩極化) 현상은, 한 유대인 지도자(요한 휘르카누스[John Hyrcanus]—Koester, 248)가 세워진 지 약 200년이 된 그리심 산 정상의 성전을 파괴했을 때, 도무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 결과, 이 두 집단의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는 일을 전반적으로 거부하였다. 증오감이 너무 커서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이 만지는 것은 모두 부정해진다고 생각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에게 말을 건다는 것조차도 놀라운 일이었다. 예수께서는, 믿는 자는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요 3:16)의 보편성에 관하여 말씀을 하시고자 이 편견이 가득 찬 환경으로 들어가셨다. (131.1)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만큼, 아마도 그들보다도 더 모세에 대한 애정이 컸다. 그러나 그들의 모세 신학을 요한복음에 비춰 보면 특히 더 흥미롭다. 사마리아인들은 모세를 “위대한 선지자,” 즉 하나님을 볼 수 있었던(그러므로 그를 드러낼 수 있었던) 선지자로 불렀다. 그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중보자(mediator)였고,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intercessor)였다. 그는 법의 시여자(施與者)였고, “이스라엘의 구주”였다. 그는 시내 산에서 변형되었다. 사마리아인들에게는 “하나님과 모세를 믿으라”(“Believe in God and Moses”)는 속담이 있다. 그들은 그를 “말씀”(“the Word”)과 “빛”(“the Light”)으로 불렀다. 그들은 모세가 세상 창조에 어떤 식으로 관여했다고 가르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가 종말에 메시야(그들의 용어로는 타헵[Taheb])로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모세에 대한 사마리아인의 신앙과 요한복음의 예수 사이의 많은 평행들은 이 복음서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물론 다른 사람들도 포함되지만) 그들의 옛길을 버리고 참되고 궁극적인 하나님의 계시인 예수께로 돌아오라고 호소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구성된 것임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O'Brien, 89-100, 108-116). (131.2)
 우물가에서 있은 만남들
 요한복음 4장의 더욱 상세한 배경은 이삭, 야곱, 그리고 모세와 같이 뛰어난 인물들과 관련된 구약의 우물가에서 있은 만남들에서 찾을 수 있다. 각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그의 미래의 아내를 우물가에서 만난다(이삭은 그의 대리인이 만난다). 각 경우마다 일이 일어난 곳은 이방 땅이다. 매 경우에 여자는 만남이 있은 후에 우물가를 떠나 집으로 달려가서 자신의 부친에게 아뢴다. 매 경우에, 가족들이 부조에게 인사하러 나온다. 그리고 매 경우에, 여자는 남자를 자신의 주(lord, 히브리어로 남편과 주인 둘 다를 의미함)로 받아들인다. 이와 같은 구약의 이야기들과 요한복음 4장 사이에는 평행 요소들이 분명히 있다. (132.1)
 문단의 세부 사항
 요한복음 4:4에서 예수께서는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고 말씀하셨다. 지리학적으로 볼 때,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유다에서 갈릴리로 가는 지름길이 사마리아를 통과하고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여행하는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길을 택하였다. 이번의 경우, 이렇게 가야 할 필요성은 하나님의 계획(참고 3:14—인자가 “들려야 하리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물가에서 그분이 여인을 만난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었다. (132.2)
 때는 제6시, 즉 정오였다. 이 시각은 후에 그가 십자가의 정죄를 받던 때, 또한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고 하던 때와 같은 시각이었다(19:14, 28). 이 때는 팔레스타인에서 우물에 물을 기르러 오는 일상적인 시간이 아니었다. 여자들은 해뜨기 전이나 해진 후와 같이 좀 더 시원한 시간을 선호하였다. 그러므로 그 여인이 그 시간에 왔다는 것은 자신의 결혼 상태 때문에 자기 동네에서 외면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듯하다(17, 18절). (132.3)
 출발부터 그녀는 자신이 예수와의 관계를 진척시킬 가능성을 배제하는 세 가지 장애물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공적인 장소에 있는 여인이었고, 증오의 대상인 민족의 일원이었고, 또한 그녀는 죄 가운데 살고 있었다. 존경받는 유대인 남자라면 어느 누구도 그녀와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기꺼이 믿는 사람에게 오셔서 주시려 했던 생수를 그녀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이 모든 장벽을 넘어가는 위험을 감수하셨다. (133.1)
 엘렌 화잇은 비록 그 여인이 메시야와 개인적으로 함께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목마르고 여행에 지친 먼지투성이의 여행자 이상을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화잇, 시대의 소망, 184). 비록 제1 세대 그리스도인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육신으로 계시던 예수와의 관계로부터 아무런 특별한 것을 얻지 못하였다. 이 복음서에서 예수와 만났던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무지함은 실제적인 접촉이 없기 때문에 믿는 일에 갈등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격려가 된다. 예수의 말씀은 그가 메시야라는 확신을 그녀에게 주었다. 그의 말씀은 제2 세대에게 그분을 만지는 것만큼이나 유효한 것이다. (133.2)
 만남은 우물가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물이 귀한 곳에서는 물의 가치가 매우 높다. 팔레스타인은 비교적 물이 귀한 곳이다(7절). 야곱의 우물에서 “생수”를 말씀하신 것은 매우 적절한 것이다. “생수”란 물이 계속 흘러나오기 때문에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물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구약의 두 곳에서 물과 성령이 서로 분명한 관련을 맺고 있다(사 44:3; 겔 36:25, 26). 랍비들도 종종 이와 같은 연관성을 반복해서 말했다(Barclay, 1:154). 그러므로 성령이란 단어가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이 복음서의 독자들이 예수께서 여기서 성령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133.3)
 예수의 생수를 받아들인 사람이 결코 다시 목마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성령을 공급원으로 삼기 때문이다. 성령의 내재하심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이 생에서 지속적인 힘과 만족의 비결을 제공하신다(Jameison, Fausset, and Brown, 1033). 성령을 가진 사람은 이전의 삶처럼 영적인 생명의 한계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다가올 시대의 물을 받아 마셨다. (134.1)
 예수께서는 생수에 관해 흥미를 보이는 사마리아 여인의 표현을 사용하여(15절), 그녀의 죄된 삶의 실체를 그녀에게 드러내셨다(16-18). 이 장면은 이 책의 앞장에서 탐구했던 주제에 대한 좋은 예증이다. 예수께서는 그녀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시고(2:23-25), 그녀의 악한 행위를 드러내셨다(3:20). 그가 다른 사람의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속속들이 아신다는 사실은 그분이 누구인지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가 되곤 한다(1:47-49; Talbert, Reading John, 114). (134.2)
 야곱의 우물가의 여인에게 이것은 매우 잔혹한 심판의 순간이었다(참고 3:18-21). 그녀는 어떻게 응답할까? 그녀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를 영접할까? 아니면 그녀가 왔던 어두움 속으로 물러날까? 그녀는 화제를 바꿈으로 생각할 시간을 벌고자 했으나(4:19, 20), 이윽고 예수를 시인하고 그를 영접했다(29, 42절). (134.3)
 율법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일생 동안 합법적인 결혼을 세 번까지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결혼을 다섯 번 이상 했다! 이 이야기는 사마리아인의 역사와 종교에 대한 유대인의 교묘한 비평을 반영하는 듯하다. 열왕기하 17:24-33에 의하면, 사마리아인들은 각각의 신(神)을 가지고 있는 다섯 개의 도성들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들은 이 도성들과 신들을 떠나 팔레스타인에 와서 야훼를 섬겼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인은 5명의 남편(이방신들)을 가졌고, 지금 가지고 있는 하나님(야훼)도 진짜 결혼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134.4)
 요한은 이 복음서에서 종종 비하하는 의미로 “유대인”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분명히 그는 반(反)셈주의자(anti—Semitic)는 아니었다. 그는 4:22에서 하나님이 유대인을 메시야 곧 예수가 나올 족속으로 선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비록 하나님의 계획은 유대인들을 초월하는 것이지만, 그들의 중심적인 역할 없이는 그 계획이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 위에 있는 그들의 성전에 대한 계시된 권위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예배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대해 그와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134.5)
 요한복음 4:23, 24는 성전을 정결케 한 사건—예수께서 지상에 오셔야 했던 것은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는 유대인에게나 사마리아인에게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주적인 것이다. 지방화된 성전은 한 백성을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귀하게 여긴다.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우주적이다. 그것은 어떤 지리학적 지역성이나 어떤 특정 민족에 구애되지 않는다. 예배의 장소는 예배자의 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디서 예배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예배하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임재하시므로 어디서나 예배를 받으실 수 있다. (135.1)
 예수께서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사마리아 여인에게 드러내신 개방성은 사복음서 전체를 통해 볼 때 깜짝 놀랄 만큼 독특한 것이다(26절). 사마리아 공동체는 분명히 예수께서 자신을 개방적으로 드러내시기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곳이었다. 유대인들은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대했다. 그들은 고난당하고 죽어 가는 메시야의 개념을 거절했다. 예수께서 유대인들 중에서 자신을 메시야로 주장하셨다면, 그 결과는 엄청난 오해만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135.2)
 반면에 사마리아인들은 메시야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있었다. 사마리아인들이 모세의 오경만을 성경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메시야에 대한 그들의 주된 본문은 신명기 18:15-18이었다. 즉 그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일 것이었다. 이로부터 그들은 메시야는 그들에게 보다 나은 예배 방법을 가르칠 개혁자일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예수께서는 그가 유대인 사이에서는 결코 행하지 않으신 방법으로 자신을 사마리아인들에게 공개적으로 드러내심으로 그들의 올바른 메시야관을 강화시키셨다(4:23-26). (1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