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요한복음 제II부 예수와 옛 세대 (1:19-4:54) 제 5 장 국외자(局外者)들이 제자가 됨 (4)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후 예수께서는 침례자 요한이 예언적인 사역을 계속하고 있는 요단 강 근처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셨다(3:22-24). 이 복음서의 저자는 그곳에서 있었던 상황을 이용하여 다시 한번 침례자의 겸비와 예수의 완전한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다(25-30절). 31-36절에서 저자는 아버지께서 침례자보다 예수에 대해 더 나은 증거를 한다고 언급하면서, 침례자의 사역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뜻을 내비친다. (126.1)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사역에 대해 너무 민감한 관심을 보이자, 예수께서는 갈릴리로 떠나기로 결정하셨다(4:1-3). 정오에 수가라는 사마리아인의 동네 근처 우물가에서 그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멈추셨다(4-6절). 제자들은 그를 떠나, 점심거리를 구하러 동네에 들어갔던 것 같다(27, 31절). 우물가에서 예수께서 여인과 만나신 이야기는 여러 세기를 통하여 반복되어 회자(膾炙)되어 왔다(7-30절). (126.2)
 수가에서 여러 날을 보낸 후에 예수께서는 갈릴리를 향하여 여행을 계속하셨다. 저자는 갈릴리 사람의 피상적인 믿음(43-45절)과 아들의 치유를 간구하기 위해 먼 거리를 달려온 한 아버지, 즉 왕의 신하의 이야기(46-54절)와 대조시켜 묘사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그의 속생각을 읽으시고, 그의 불신과 대면하셨으며, 그가 믿는 자가 되어 떠나가게 하셨고, 큰 징조들을 행하는 자신의 능력이 어떤 경우에도 거리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셨다. (126.3)
 ■ 말씀에 들어감
 요한복음 4장을 적어도 두 번 읽은 후에 다음의 질문들에 대답하라: (127.1)
 1. 우물가의 여인은 낯선 이를 전적으로 무시하다가 전심으로 메시야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선회한다. 예수께 대한 그녀의 반응들을 자신의 말로 각각 기록하고, 각 반응이 면담의 각 국면에서 그분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이해하는 데 어떤 빛을 던져주는지를 설명해 보라. (127.2)
 2. 이 문단에서 특별히 유대인에 대한 사마리아 여인의 신학, 역사, 태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구절이 있으면 모두 열거하라. 그 여인은 어떤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대는 예수께서 그녀의 메시야관에 동의하셨다고 생각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열왕기하 17장은 주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 사마리아인의 메시야관은 신명기 18:15-18에 기초하고 있다. 이 문단은 사마리아인의 메시야관에 대한 어떤 암시를 주는가? 성경 사전에서 사마리아인에 관한 항목을 찾아 읽어 보라. (127.3)
 3. 이 이야기를 니고데모의 이야기와 비교해 보라. 전자는 남자이고, 후자는 여자이다. 전자는 한밤중에 찾아왔고, 후자는 대낮에 찾아왔다. 두 이야기 사이에 이와 같은 대조를 이루는 것을 그대는 얼마나 더 열거할 수 있는가? 그대는 저자가 이러한 대조들을 두드러지게 강조하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27.4)
 4.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사회적인 장벽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예수께서 이 여인을 대하시는 자세와 이틀 내내 그 동네에 기꺼이 머물렀다는 사실에서 그대는 어떤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가? 이 이야기 속에서 보인 제자들의 반응에 기초하여 그대는 예수의 행동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128.1)
 ■ 말씀을 탐구함 (128.2)
 문단의 구조
 이 이야기는 예수에 대한 이해가 급격히 깊어져 가는 한 여인을 묘사하고 있다. 처음에 그녀는 단지 한 목마른 남자만을 보고 그를 무시했다(7절). 그런 후에 그녀는 그가 유대인임을 알게 되자 즉시 그를 싫어하였다(8-10절). 그런 후에 그녀는 그가 랍비일 것이라 여기고 그에게 곤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11, 12절). 그러고 나서 그녀는 그가 분명 선지자일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서 그에게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다(19, 20절). 마침내 그녀는 그가 메시야임을 깨닫고는 그에게 경배하게 되었다(25-30, 42절). 나는 종종 이 여인이 예수께 나아가는 방식이 오늘날 세속의 사람들이 예수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에서 따르게 되는 전형적인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128.3)
 이 사건이 일어난 계절은 언제일까? 4:35의 진술로는 우물 주변의 밭들이 추수할 때가 되었는지, 혹은 추수를 위해 아직 넉 달이 남았는지가 분명치 않다. 추수기는 5-6월이므로 넉 달 이전은 1월경이다. 이 때가 1월이라면 요한복음 2장의 유월절이 지난 후로 10개월이 된 때였고, 요한복음 5장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절기는 또 다른 유월절이었다. 더욱 가능성이 있는 것은 이 때가 성전을 정결케 한 후 두 달 정도 지난 때였고, 요한복음 5장의 절기는 가을 절기들(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 중의 하나였다. (128.4)
 문단의 배경
 사마리아인의 역사와 신학
 사마리아인들은 그들의 종교의 오래됨과 유대인 신앙보다 자신들의 신앙이 우월하다는 것에 대한 훌륭한 논증을 가지고 있었다. 야곱의 우물(5, 6절)은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의 계곡에 있던 성읍인 고대의 세겜에서 약 250피트(76미터) 떨어져 있었다. 세겜 성읍은 고대 이스라엘 예배의 가장 중요한 중심지였다. 창세기 12:6에 의하면, 세겜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그 땅에 들어갔을 때 도착한 첫 번째 장소였다. 세겜은 야곱이 팔레스타인으로부터 메소포타미아로 돌아갈 때 갔던 장소였다(창 33:18-20).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에 가나안에서 예배를 위해 첫 번째 집회를 연 곳도 세겜 골짜기의 양쪽인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위였다(신 11:29-32; 27:1-13; 수 8:30-35). 그리심 산은 “축복의 산”이 되었다(신 11:29; 27:12).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심 산을 거룩한 산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리 이상할 것이 없다. 세겜은 또한 출애굽 후에 요셉의 시신이 장사된 곳이다(수 24:32). (129.1)
 흥미로운 사실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동안에 여호수아가 그 땅의 중심부에서는 아무런 저항도 직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큰 전투들은 남쪽과 북쪽에서 있었다(수 10-11; 13:1-7). 사실 앞서 언급한 집회(수 8:30-35)는 이스라엘이 남동쪽의 두 도성—여리고와 아이—을 점령했을 때, 그 땅의 중심부에서 개최되었다. 고고학은 세겜에서 “언약의 바알”(바알은 가나안어와 연관된 말로서, 히브리어로 “주”를 뜻하는 또 다른 단어임)이라고 명각된, 출애굽보다 앞선 시대의 제단을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가족들과 더불어 애굽을 향해 이주해 갈 때 가나안의 중심부에 많은 야훼 경배자들을 뒤에 남겨두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많다(창 34:24; 46:1-7). (129.2)
 사마리아인들이 자신의 신앙의 오래됨을 주장하는 것이 적어도 부분적으로 옳다는 것이 신성한 유대인의 문헌에도 매우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예루살렘은 다윗 시대인 B.C. 1000년경에야 비로소 이스라엘 예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예루살렘이 성전의 위치로 정해졌을 때, 세겜은 이미 거의 1,000년 동안 아브라함의 자손들의 예배의 으뜸가는 중심지였었다. 「사마리아 오경」(모세의 오경의 사마리아 판)을 보면, 이 사실은 더욱 더 확실해진다. 예를 들면, 「사마리아 오경」은 창세기 12:6에 세겜은 “모리아 땅,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 제물로 드린 곳”이란 말이 더해져 있다(창 22:2를 보라). 사마리아인들에게 있어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 제물로 드린 곳은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의 성전 터가 아니라 그리심 산이었다. 또한 「사마리아 오경」은 신명기 27:4에서 에발이란 이름을 그리심으로 바꾸어, 후에 사마리아 성전이 있게 될 산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130.1)
 위에 언급한 전승은 의심할 여지없이 이스라엘의 북쪽 열 지파가 솔로몬 시대 이후에 예루살렘에서의 예배를 거부하는 기초를 제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왕상 12:25-30). 하여튼 성전이 지어진 지는 대략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더 일찍 된 것이 더 좋은 것이다. 참으로 오래된 예배 장소는 북방에 있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내려갈 이유가 있었겠는가? (1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