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키나의 그림자 속에서 제13장 전진하면서 백미러를 봄 (민수기 31~36장)
 하나님께서 과거에 우리를 인도해 오신 것처럼
 전방으로 운전하여 나가면서 백미러를 흘낏 보는 것과 꼭같이, 미래를 위해 계획을 할 때, 과거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은 현명하다. 살아나가면서, 대국적인 관점을 잃어버리기가 쉽다. 우리는 엄수해야 할 마감시간, 지켜야 할 약속, 갚아야 할 빚, 수리해야 할 집 등이 있다. 이런 스트레스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무일푼의 학생으로서, 오랜 작업 시간과 완전히 소진된 체력으로 얻은 적은 월급으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갈 때, 좁은 아파트의 월세를 내는 한편으로, 힘든 공부의 무자비한 압박에 대처하기 위해 고투하고 있었던 시절이 어떠했는가를 기억하기 위해 잠시 멈추도록 하자.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큰 진보를 이룩해 냈다는 것을, 정말 큰일을 해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223.2)
 가나안 정복 작전의 한 가운데 배치된 민수기 33장 1절~49절은 애굽에서부터 약속된 땅 경계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기 어려운 여정을 요약한다. 모세가 그의 일기에 기록한, 장소들의 긴 목록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상기시킨다. 그 여정은 여호와께서 바라신 것보다 훨씬 길었지만, 그분의 백성들은 신앙 훈련이 적절히 이루어질 때까지 교정 작업을 위한 많은 추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분은 상대 평가를 하시거나, 아니면 그저 그들이 특정 연령에 도달했다고 하여 다음 단계로 승급시키지 않으셨다. 그들의 믿음은 그분의 선물들을 받고 그분과 협력하는 법을 배우는 일을 통하여 필수적 표준에 도달해야 했다. 충분히 강력한 믿음이 없다면, 그들은 위험한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실패하고, 그리하여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군인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것은 재난을 가져오기 십상이다. (224.1)
 설령 이스라엘 백성들이 몇몇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가나안 족속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그들의 예배 장소를 파괴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좇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여전히 전쟁에서 패배할 수 있고, 그들의 고된 여행에서 얻은 모든 것을 내던져 버릴 수 있다(민 33:50-54).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민 33:55,56). (224.2)
 하나님의 지혜에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기에 그 땅의 대부분을 정복한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하는 사시기를 읽어 보기만 하면 답을 얻게 된다. (224.3)
 이스라엘 지파들은 그들의 탄력을 잃어버렸으며, 자신들의 지혜에 의존하면서 가나안 족속의 잔당들을 쫓아내는 일을 완수하기보다는 그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과 꼭 같이 배교에 빠져, 압제를 당했다. 그렇게 하여 수 백 년 동안 확고한 평화가 연기되었다. (224.4)
 세상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통로 역할을 하기 위하여, 그분의 백성들은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해서는 안 된다(요 15:19; 17:14-16). 그들은 구별되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세상은 그 차이를 보지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경계선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우상을 숭배하는 국가들에 둘러싸여 사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들 가운에 있는 우상 숭배자들을 용인하고, 심지어 그들과 친해질 때, 동화되어 다른 모든 사람처럼 되려는 유혹은 너무나 컸다. (225.1)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너무 가혹한 분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들은 백성들의 어린아이 수준의 믿음을 포함하여 그분이 다루고 계셨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 아마도 한 비유가 조금 도움을 줄지 모른다. 여러분은 자녀가 마약에 중독되기를 원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런 마약은 그들의 삶을 파괴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그들을 마약에 중독되게 하려고 애쓰는 마약 판매상을 친구로 삼기를 원하는가?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은 마약 판매상이 여러분의 집에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과 함께 사는 것을 허용하겠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225.2)
 여러분이 이사오기 전 그 집에 살던 마약상이 떠나기를 거절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분은 그들을 쫒아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을 것인가? 글쎄다 ∙∙∙ . 그는 위험하고, 복수할 기회를 노릴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경찰이 그를 수감하고 어떤 사람도 해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그를 경찰에게 넘길 것인가? 물론이다! 그가 살인을 저지르고 처형될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여러분은 여전히 그를 고발하겠는가? 누가 보호를 받아야 하는가? 인간 포식자인가 아니면 여러분의 자녀인가? 둘 모두를 방어하고 변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범죄자는 이전에는 그 집에서 살 권리가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225.3)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지금 쯤에는 좀 더 이치에 와 닿게 되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지금 그분의 이스라엘 자녀들과 함께 사는 범죄자들을 하나님께서 더 높은 어느 인간 당국자들에 넘겨주실 수 있을까? 가장 높은 권위는 하나님께 있다. 그래서 그분은 심판하시고 친히 처형을 명령하셔야 하셨다. 그분의 자녀들은 안전하게 살 장소가 필요하였다. 그리고 가나안 족속들은 그 땅에서 계속 살 수 있는 권리를 상실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의 마약 중독에 빠진다면, 그들 또한 그 땅을 잃을 것이었다. (226.1)
 대제사장의 죽음이 자유를 가져다 줄 때까지의 피난처
 르우벤,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는 이미 요단강 동편 땅을 기업으로 얻었다(민 32장). 나머지 므낫세 반 지파와 아홉 지파는 이스라엘이 정복사업을 마쳤을 때 가나안 지역을 할당받을 것이다. (226.2)
 그들 사이에서 이 땅의 분할은 제비뽑기로 공정하게 결정되고, 국가 지도자들과 지파의 지도자들에 의하여 관리될 것이었다(민 34장; 수 13-19장 참조). 하지만, 레위 지파에는 어느 한 지역을 할당받는 대신에, 다른 지파들의 지역들 내에서 목초지로 둘러싸인 성읍들이 배정될 것이었다(민 35:1-8). 레위 지파는 성소에서의 봉사를 통하여 생계비를 받았기 때문에(민 18:20-24), 대규모의 농경지가 필요 없었다. 이렇게 종교 지도자들을 다른 지파들 가운데 분산시키는 것은 하나님 아래서 국가를 통합시키는데 이바지 할 것이었다. (226.3)
 하나님은 국가의 다양한 지역들 내에서 레위 성읍 중 여섯 곳을 우발적인 살인자가 그리로 도망할 수 있는 도피성으로 지정하셨다. 요단강 양 편으로 각기 세 성이 있었다(민 35:6,9-15). (227.1)
 사건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내 신부와 나의 학업을 마치게 해 줄 돈을 벌기 위해, 건설업자를 위해 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나는 가설 나무 갑판을 철거하는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1 kg짜리 해머를 휘두르다가 나는 그만 손잡이를 놓쳐 버렸고, 그 해머는 허공을 가르며 한 남자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그는 그것을 발견하고 신속하게 간신히 몸을 수그렸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는 즉사했을 것이다. 나는 그 사건 전이나 후에도 그 사람이 그토록 신속하게 몸놀림을 하는 것을 결코 보지 못했다. 휴! 정말 아슬아슬했다! (227.2)
 우발적으로 누군가를 죽였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가까운 도피성으로 도망하여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도망하지 않는다면, 고의든 우발적이든 그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하여 고인의 친척들이 죽음에 대한 원수를 갚으려 할 것이다. 도피성에 도착하여, 고의적인 실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판결을 받는 사람은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도피성에 머무른다면 복수자로부터 안전할 것이었다. 그 후에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22-28절). (227.3)
 정황 (무기의 사용, 매복, 이전의 원한) 증거가 확실한, 일급 살인죄를 범한 자들을 위한 어떤 피난처나 속전도 없었다. 율법은 이런 경우에 사형을 요구하였다(16-21, 31절).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함을 받을 수 없느니라”(33절). (227.4)
 본문은 몇 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생소해 보인다. 첫째, 도피성이 도대체 왜 필요했단 말인가? 왜 법은 아예 친척들에 의한 피의 복수를 금지하지 않았는가? 여기서 다시 한 번, 우리는 여호와께서 사회공학을 수행하시기 보다는 기존 문화의 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민 30장 참조). 반드시 정의를 실현하는데 강력한 관심을 가진 혈족에 의한 복수의 역할은 당시 사람들의 문화와 세계관에 깊이 뿌리박힌, 몸에 깊이 밴 전통이었다. 우발적인 살인자가 진정으로 안전하도록 이 관습을 근절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었다. 복수하는 사람이 일급 살인자를 처단하는 것은 하등의 잘못된 일이 아니었다(민 35:21). 문제는 어떻게 우발적인 살인자를 보호할 것인가 였다. 슬픔의 감정에 눈먼 복수자에게 의도적 살인과 우발적 살인을 구분하는 일을 맡기는 것은 안전하지 않았다. 이와같은 검찰관이 또한 피고측 변호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이해관계의 충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228.1)
 둘째, 어떤 의미에서 살인자가 그 땅을 더럽혔는가? 이것은 예식을 통해 해결될 수 있었던 신체의 제의적 부정 (예컨대, 시체를 만짐으로 인한 오염[민 19장])이 아니라, 우상숭배나 성적 부도덕처럼 도덕적 부정이었다(몰렉 예배, 간음, 근친상간, 동성애 그리고 수간에 관하여 레 18장, 21장을 참조하라). 그 땅은 그런 의미에서 “더럽혀”졌으며, 일단의 사람들이 그곳에 살면서 너무도 많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다면, 그 땅은 그들을 토해 내칠 것이다. 즉,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들을 쫓아내실 것이다 (레 18:24-30; 20:22-26). 결국 그런 일이 있어났으며, 그리하여 이스라엘과 유다는 유형(流刑)에 처해졌다(왕하 17,25장; 대하 36장; 예레미야와 에스겔). (228.2)
 셋째, 왜 우발적인 살인자는 도피성으로 제한되었는가? 그리고 왜 대제사장의 죽음이 그를 해방시켰는가?(민 35:25-28). 살인자가 야기한 피해가 우발적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 그 사실은 성경의 법에서, 영구적 신체 결함을 유발하는 폭행이 왜 보복의 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는 그토록 중한 범죄인가를 설명해 준다 (레 24:19,20). 어느 곳에선가 폭행의 법에서, “영구적 결함”을 의미하는 동일한 단어는 신성한 생명을 약화시키고, 그렇게 하여 이론의 남자 후손들이 제사장으로서 거룩한 직무를 행할 자격을 상실케 만드는 결함을 가리킨다 (레 21:16-23). 우발적 죄든 고의적 죄든, 죄는 죄였지만,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위한 속죄를 마련하셨다(레 4장 참조). 우발적인 살인의 경우에서도, 생명은 너무 귀중하여 오로지 한 사람의 죽음으로만 그것을 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살인자의 죽음 대신(민 35:33 참조), 여호와께서는 대제사장의 자연사를 받아들이셨다. (2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