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키나의 그림자 속에서 제13장 전진하면서 백미러를 봄 (민수기 31~36장)
 하나님의 복수
 여호와께서는 모세가 죽기 전에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을 처리하기를 원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그 후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민 31:2). 하나님의 명령은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첫째, 왜 미디안 족속에게 인과응보가 내리고, 모압 족속에게는 내리지 않는가? 둘째, 왜 모세가 이 작전을 담당할 필요가 있었는가? (216.1)
 첫째 질문에 관하여 말하자면, 모압 여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하여 바알브올의 부도덕과 우상숭배적 예배에 가담하게 하는 일에 참여했다(민 25:1-3). 배교를 절정으로 끌어올려, 24,000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인 염병을 촉발시킨 것은 한 미디안 족장의 딸로 대표된 미디안 족속이 맡은 추가적 역할이었다(6-9절, 14-18절). 죽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지은 공동체의 일부였지만, 미디안 족속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함으로서 그들의 범죄와 죽음에 대한 죄책과 책임을 공유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이웃으로서 그들의 땅을 보유하게 될 모압 족속을 괴롭히지 말라고 명하셨지만(신 2:9), 미디안 족속은 동일한 방법으로 보호하지 않으셨다. (216.2)
 미디안 족속에게 책임을 묻고 그들에게 인과응보의 형벌을 내리게 하심으로,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하고 기만하여 죄에 빠지게 만드는 사람들을 그분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보여주셨다. 모든 유혹자들 중 최고의 유혹자는 사단 자신이며 (계 12:9; 창 3장; 마 4장 참조), 궁극적으로 불못에서 소멸될 것이다(계 20장).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궁극적으로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계 21:27; 22:15). 이 구절을 보면, 불법적 약물이나 술, 담배를 제조하고 유통하는 이들을 포함하여 쾌락적 독극물의 기만으로부터 수익을 얻는 자들은 구원에서 제외된다. 또한 매춘부, 포주들, 포르노 제작자들, 영화산업 종사자들 등 사람들을 유혹하여 부도덕에 빠지도록 하는 이들도 제외된다. 또 다른 파괴적 기만은 비술(어두운 초자연적 세력들과 관련된 행습들)로서, 다양한 미디어와 종교 제도들 내에서 활약하는 옹호자들을 통하여 그 음험하고 사악한 마수를 많은 가정에 뻗치고 있다. (216.3)
 유혹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 (그들 자신이 속고 있다)이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그분의 생명과 정결의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고, 또 구원하신다. 하지만, 다른 이들을 망치는 일을 고집한다면, 그들의 파멸은 확실하다. 이 경고는 또한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유혹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 않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따금 다른 이들을 잘못 인도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영향력의 결과로 사람들이 더 나아졌는지 나빠졌는지 자문(自問)하는 게 좋을 것이다. (217.1)
 이제 우리는 왜 모세가 미디안 족속을 징벌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그들의 위협을 제거하는 궂은일을 해야 하는지의 문제로 향한다. 한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면, 미디안 족속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는 동안 그들에 대하여 죄를 범했다는 것일 것이다. 모세의 지도 아래 있는 이스라엘이 그들을 징벌하여, 모든 사람들이 이 두 사건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타당한 것이다. (217.2)
 또 다른 요인들이 있을 수 있다. 미디안 족속은 아브라함과 그두라 사이의 후손이었다. 그두라는 사라가 죽은 후 아브라함의 후처가 되었다(창 25:1,2,4). 그러므로 그들은 모압, 암몬, 에돔 족속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친척 관계가 된다. 그러나 모세는 참 하나님을 섬기던 미디안 제사장의 딸인(출 2장) 그의 아내 십보라를 통하여 널리 퍼진 미디안 백성들 중 한 가문과 좀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우상숭배를 행하던 미디안 족속을 징벌함으로써,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위협하는 악을 제거하라고 명령하실 때, 하나님의 충성스런 백성들은 심지어 친척이라 할지라도 살려두지 않는다는 것을 실증할 것이었다(출 32:25-29 참조).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위험을 멈추게 할 첫 번 째 책임을 진다. 후에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꾀어 우상숭배로 인도하려는 이들에 관하여 이 원칙을 분명히 설명하였다. “네 어머니의 아들 곧 네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곧 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에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를 따르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여기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신 13:6-9). (217.3)
 미디안 족속과의 전쟁은 정복을 위한 냉혹한 공격이 아니라, 국제적 수준에서 하나님의 인과응보를 실행하는 성전(聖戰)이었다. 이것은 세상에서 그분의 계시의 통로인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을 말살시키려는 유혹을 받는 다른 국가들을 향한 경고가 될 것이었다. 이것이 거룩한 전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제사장 비느하스는 몇몇 기명들과 제사장의 신호 나팔을 들고 군사들과 함께 동행하였다(민 31:6). 시므리와 고스비를 처형함으로써 바알브올 배도 때 염병을 멈추게 했던(민 25장) 비느하스의 참여는 저 사건을 특별히 미디안에 대한 전쟁과 연결시킨다. (218.1)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한 미디안 족속을 공격하여 발람 뿐 아니라 미디안 족속과 동맹한 다섯 왕을 포함하여 그들의 모든 남자들을 죽였다(민 31:7,8). 그러나 살아남은 다른 미디안 인들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삿 6-8장 참조). 여호와의 보호하심 덕분에, 군 지휘관들이 그분께 대한 특별한 감사 제물을 드림으로 인정했듯이, 이스라엘 군사들 중 단 한 사람도 전사하지 않았다(민 31:48-54). (219.1)
 이스라엘 군사들은 미디안 여인들과 아이들은 살려 두었지만, 모세는 젊은 처녀들만 살려 두라고 명령했다. 발람의 권고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하여 치명적 배도에 빠지게 했기 때문에, 이 여인들은 위험하였고, 또 죄가 있었다(민 31:9-18). 어린 소년들은 미디안 족속의 정체성을 지니고 복수를 도모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위험할 것이었다 (아말렉 족속인 아각의 후손임이 분명한 하만과 비교해 보라[삼상 15장; 에스더 3-7장]). 반면에, 이스라엘은 어린 소녀들을 결혼을 통해 동화시켜 그들 나라의 일원으로 만들 수 있었다(신 25:10-14 참조). (219.2)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시무시할 정도로 잔혹하게 들린다. 앞서 아랏에서, 그리고 후에 여리고와 다른 곳들에서, 진멸하도록 바쳐진 전쟁에서는 심지어 처녀들도 살려두지 않았다 (민 21:1-3; 수 6장; 이스라엘은 또한 다른 소유물과 아울러 동물들도 죽였다). 의심할 나위 없이, 성경은 여호와께서 이같은 진멸을 명령하셨다고 명백하게 밝힌다. 몇몇 현대 성경해석학자들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민족들을 진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잘못 생각했다고 말함으로써 이것을 부정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모세와 다른 선지자들이 이 분야에서 하나님을 오해했다면, 어떻게 우리가 창조, 아브라함의 믿음, 출애굽 이야기 등과 같은 다른 성경의 기록들과 가르침을 믿을 수 있을까? 바울은 성경 전체가 영감을 받았으며, 유익하다고 말한다(딤후 3:16). 이것은 전부 다냐 아무것도 아니냐의 문제이다. 우리가 식당에서 하듯이,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고르고 선택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문제를 야기시키고, 결국 믿을 만한 한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219.3)
 여호와께서는 물이든 불이든,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이든 그분이 선택하시는 어떤 수단으로도 타락한 민족들(소돔과 고모라[창 19장])과 심지어는 문명 전체 (홍수 이전의 세상, 그리고 예수 재림 시 세상의 종말[창 7장; 계 19,20장])를 끝장내실 권리를 갖고 계신다. 그분의 단체적 처형은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했다. 아마도 이 아이들조차도 개선의 여지가 없이 도덕적으로 부패되었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큰 그림을 위하여 장기적 안목으로 바른 선택을 하실 만큼 충분히 잘 알고 계신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판단할 자격이 없다(욥 38-42장 참조).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하늘의 기록들에 접근할 때까지(고전 6:2, 3; 계 20:4), 겸손하게 ‘비밀한 것들’, ‘오묘한 것들은 그분께 맡겨드려야 한다(신 29:29). 믿음은 그분께서 최선의 것을 아신다는 것과, 우리가 자신을 그분께 안전하게 의탁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욥은 이렇게 단언한다.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여전히 그분을 신뢰하리라)(욥 13:15). (220.1)
 갈등 관리
 민수기의 남은 장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정착을 위한 계획에 관한 것이다. 즉, 요단강 건너 편 영토 할당 (민 32장), 모든 가나안 족속들을 철저하게 제거할 필요성(민 33장),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서 가나안 지역의 분배(민 34장), 도피성을 포함한 레위 성읍의 건설(민 35장), 그리고 기업을 물려받은 딸들이 소유 토지를 원래대로 유지하기 위하여 그들의 가문 내에서 결혼하라는 요구사항(민 36장)이 그것이다. (220.2)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디안 족속의 성읍과 촌락을 파괴하였으나(민 31:10), 그들이 거주하던 지역을 점유하지는 않았다. 이스라엘 나라는 강 서부의 가나안을 점령하기 위하여 막 요단강을 건너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영토를 손아귀에 넣었다(민 21장). 이 지역들이 요단강 동편이었기에, 약속된 땅의 일부가 아니었다. 일단 가나안을 점령하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혼과 옥의 땅을 포기하려고 계획했다. 하지만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는 목장주들이었으며, 그 지역이 가축을 기르는데 완벽하다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와 다른 지도자들에게, 가나안에 정착하기 보다는 그 지역에 거주할 수 있는지 물었다(민 32:1-5). (221.1)
 몇몇 지파들이 요단강 동쪽에 정착한다면, 다른 지파들에게 서쪽에서 더 넉넉한 공간이 주어지게 될 것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세는 처음에 그 요청을,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을 돕는 일을 비겁하게, 그리고 반역적으로 회피하려는 수작으로 보았기 때문에 통렬하게 꾸짖었다. 그러한 움직임은 열 명의 정탐꾼들이 가데스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했던 것처럼, 나머지 백성들의 용기를 꺾게 될 것이며, 또 다른 세대가 멸망하게 될 것이었다(6-15절). 르우벤과 갓 지파는 요점을 파악하고 그들의 가족들과 가축들을 요단 동편에 정착시킨 다음, 남자들은 요단강을 건너가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된 땅을 정복하는 일을 돕기 위해 그들을 인도하여 참전하겠노라고 제안하였다(16-19절). (221.2)
 모세는 그 제안된 조건에 동의하였으며, 요단 동편 땅을 르우벤 지파,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다(20-42절). 하지만 그는 준엄하게 경고하였다.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23절). 그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말했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책임을 물으시고, 너희의 약속을 너희가 어기는 죄를 범할 경우 반드시 응분의 벌을 받도록 조치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분의 경고는 가혹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들 지파들이 이미 그들의 기업을 받은 상황에서,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을 돕기 위해 그들의 생명을 무릅쓰려는 그들의 유일한 인센티브는 여호와께 대한, 그리고 그 나라에 대한 충성 때문일 것이었다. 이것은 일하기 전에 일꾼에게 보수를 지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222.1)
 민수기 32장은 솔직한 의사소통, 타인의 관점에 대한 존중, 그리고 융통성의 원칙을 통하여 분쟁을 다루는 법에 대한 교훈이다. 어떤 이들은 멋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 동기를 이기적으로 해석하고 그 해로운 결과를 보았다. 다른 수단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대로 하려고 노력하면서 반역하거나, 아니면 삐지고 비평하는 대신에, 그 제안을 한 그룹은 상대방의 온당한 우려를 해소시킨, 확장되고 변경된 제안을 가지고 옴으로써 소통을 계속했고, 자신들의 동기가 결국 이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어느 누구의 안녕도 훼손하지 않은 그들의 제안은 양자 모두에게 득이 되는 제안으로 받아들여졌고, 이행되었다. (222.2)
 우리는 특별히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때, 그들의 관점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또한 연합과 높은 사기가 필요하다. 우리의 가정, 교회, 학교, 또는 기관에서 우리가 상이점을 가지고 있을 때, 그것들을 잘 해결해 가면서 일하는 방식은 우리의 성공, 아니 더 나아가 우리의 생존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222.3)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의 논거들을 참작하는 어떤 상황에서,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마음에 맞지 않는 선택들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평화적인 해결책이 가능할 경우, 우리의 자아나 개인의 이욕이 갈등을 매듭짓는 데 걸림돌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뭔가 큰 것을 얻으려고 하고 있는가? 그것이 아무리 클지라도 이스라엘 지파들 전체를 위해 집들을 마련하는 것에 비교될 수 없다. 여러분은 굉장한 권세를 가지고 있는 중요한 사람인가? 분명, 여러분은 모세만큼 중요하거나 영향력 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여 그대의 권력을 마구 휘두르지 말라. 합리성과 융통성은 여러분의 리더십을 훼손하지 않을 것이다. (2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