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야고보서 제II부 참 종교 (1:19-2:26) 5. 가난한 자들을 돌봄 (1:27-2:26)
 이 구절의 중심 문제는 15-17절에서 발견되는데, 사람들이 “작은 비유”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15-17절). 이 사건은, 꾸며낸 비유와는 거리가 먼, 야고보 공동체에서의 실제적 삶이었다. 이 서신을 주의 깊게 읽으며, 야고보의 시대적 사회 역사와 지리적 배경으로부터의 통찰로 인해, 가난은 그의 청중들 대부분이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 이웃의 기본적인 필요에 대해 무심한 반면, 그들 자신이 부르는 믿음에 대해 더욱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심지어 그의 공동체 안에도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야고보는 정확하다. 그런 믿음은 죽은 것이요, 그런 경건은 용납되지 않는다. (135.2)
 야고보 시대 이래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에 관한 한 변한 것은 조금도 없다. 사회적 행동을 배제한 개인적 믿음에 대한 우리의 초점은 기독교계의 재앙이다. 가난한 자들의 필요에 대한 민감성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구성요소로 여겨지지 않는다. 대신에, 가난한 자들이 무시되거나, 그들은 게으름을 멈추고 스스로 나아지라고 듣는다. 이 반응은 야고보 시대의 반응과 전혀 다르지 않다. Simon Kistemaker는 이 점을 잘 논증한다: 가세요, 잘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은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대중적인 말로 요약된다. “즉, 떨고 굶주린 형제나 자매에게 자력으로 성공하게 하는 것이다.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만일 가난하고 비탄에 잠긴 형제나 자매가 그들 스스로 열심히 노력한다면, 그들은 충분히 먹을 것이며, 충분히 입을 옷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하셨을 것이다”(James, 89). 만일 야고보가 오늘날 기록했다면, 그는 그 같은 반응에 도전받을 것이다. 그는 전직 미연방 대법원 판사 Thurgood Marshall이 아무도 자력으로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한 것에 동의했을 것이다. 우리 각자는 다른 사람이 도움의 손길을 뻗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확신하다. 나는 또한 야고보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벤자민 프랭크린의 진술(때때로 성서적 진술로 인용되는!)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성서적 진리는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돕는 특별히 궁핍한 자를 돕는 나를 도우신다는 것이다. (136.1)
 야고보의 기별은 개인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지체 곧 교회에 대한 것이다. 너무나 자주 오리의 초점은 교회나 개인의 소위 “영적인” 필요에 대해서는 거의 배타적이다. 복음 선포는 사회와 개인의 육신적인 필요는 배제하고 교회 성장과 개인의 구원이 중심이다. 다시, Kistemaker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청중들의 육체적 필요에 대한 어떠한 관심도 없이 주님의 복음만을 선포한다. 그들은 구원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말하지만, 그들은 복음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의복과 음식이 필요한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과 행동이 함께하지 않으면, 복음의 선포가 사회적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믿음이 사랑의 돌봄과 관심으로 보여지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죽은 것이다”(James, 89). (136.2)
 나는 야고보의 예증을 확실한 단어로 의역하여 많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궁핍한 자들에게 반응할 방법을 비쳐주기를 바란다: “의복과 음식이 궁핍한 형제와 자매가 너희에게 도움을 청할 때, 너희들은 그들에게 말하기를, ‘정말 안됐군요. 우리가 당신을 위해 꼭 기도할 것입니다. 더웁게 하고 배부르게 하세요. 하나님의 평안이 당신과 함께할 것입니다,’ 하지만 너희가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너희의 믿음의 상태가 좋은가?”(2:15, 16). 야고보는 이 믿음, 이 경건은 죽은 것이요, 무효하며, 소용없고,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것이라고 진술한다. 믿음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1:27). (137.1)
 ■ 말씀을 적용함
 1. 나는 경건의 수직적, 개인적인 면(“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만을 강조하는 반면, 수평적, 사회적인 부분(“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은 소홀하지 않는가? 어떤 방법으로 그것들을 똑같이 중요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137.2)
 2. 내가 참여하여 내 지역 사회에서 참된 경건을 보여줄 수 있을 만한 특별한 사회적 활동이 무엇일까? 목록을 작성하라. (137.3)
 3. 적어도 나의 편애라도 필요한 사람에게 내 자신이 편협했음을 발견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은 무엇인가? 최근 열두 달 동안에, 내가 특별한 날(생일, 졸업,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줄 기회가 있었을 때, 더 많이 편애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은 가진 자들이었는가 아니면 필요한 자들이었는가? 두 칸(가진 자, 갖지 못한 자) 속에 수령인들의 명단을 작성하라. 만일 내가 앞으로 1년만 살 수 있다면, 야고보서를 읽은 후에, 목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137.4)
 4. 내 자신이 의복이나 내가 소유한 다른 것들 중에서 불필요한 낭비를 한 것을 발견하는가? 나는 때때로 값 싼 결혼 반지를 한 사람을 비난하면서, 나는 최고급의 수입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내 집은 근사하고 값비싼 물건들로 가득 차있고, 내 옷장은 고가의 의류, 신발들로 넘쳐나지 않는가? 나의 태도와 생활 양식을 야고보의 기별 수준으로 맞출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가? (138.1)
 5. 나는 세계의 ⅔정도의 개발도상국이나 선진국 내의 가난한 부류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교회 성장을 몹시 비난하는가? 이 가난한 회심자들은 그들이 “믿음이 부유함으로” 신앙 공동체와 복음에 매혹당했음이 가능할까? 토의하라. (138.2)
 6. 나는 죄의 계층(예를 들어, 상위층에 간음과 암살, 하위층에 교만과 편애)을 나누는 경향이 있는가?(과거에 당신이 우선순위를 매겨온 방법에 따라 가장 나쁜 것부터 조금 심각한 죄까지의 목록을 만들라.)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138.3)
 7. 야고보가 그의 편지 중 2장의 청중들에 대한 묘사와 병행되는 내 교회의 경향이 있는가? 그의 가르침이 내 가정, 지역 사회, 직장, 학교 등의 넓은 사회에서도 적용되는가? 설명하라. (138.4)
 8. 내 교회의 우선 순위로 고려해볼 때, 아래의 세 영역 중 가장 많은 예산이 책정된 것은 무엇인가? (1) 사회 활동 (2) 공중 전도 (3) 예배와 의식. 만일 이 세 영역에 내 교회가 10만원을 책정한다면, 나는 어떻게 분배할까? (138.5)
 9. 내가 가난한 자들과 집 없는 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위험하고, 불편하며, 안락하지 않는 발걸음을 얼마나 멀리 내디딜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거리에서, 거처에서, 움막에서 그들과 시간을 보냄으로 그들과 기꺼이 하나가 되며, 동시에 그들을 가난함, 즉 고통받는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조치를 취하겠는가? 한 문장으로 당신이 그런 행동이나 그 같은 위험한 방법을 왜 하는지 아니면 하지 않는지 설명하라. (138.6)
 ■ 말씀은 연찬함
 1. 성구사전에서 과부와 고아를 찾아보라. 그들의 상황을 묘사한 구절을 기록하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복지에 관하여 주신 특별한 규칙은 무엇인가? 그들이 어떻게 다루어져야 할 지에 대한 어떤 특별하거나 중요한 것을 발견했는가? 당신이 발견한 것과 성경사전과 비교하라. (139.1)
 2. 성경사전에서 믿음과 행함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라. 각각에 대한 사전의 정의를 요약하라. 각 정의와 야고보서 문맥에서 그의 정의와 일치하는가? 그것들이 일치하거나 일치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라. (139.2)
 ■ 말씀의 추가 연구
 1. 오늘날의 교회와 사회에 있어서 독자들에게 이 구절의 사회적 함축에 대한 탁월한 적용과 도전을 보여준 주석서는 S. J. Kistemaker, James and I-III John을 보라.

 2. 야고보서 2:1-13에 대한 주석적 연구뿐만 아니라, 특별한 배경을 위한 (이 경우, 남아프리카) 해석학적, 교훈적 함축이 있는 논문은 D. J. Smit, “Exegesis and Proclamation: ‘Show no Partiality . . .’(James 2:1-13).”을 보라.

 3. 야고보서 2:1-13의 상세한 연구를 위해서는 P. Maynard-Reid, Poverty and Wealth in James를 보라. 특히 제4장 “Favoritism and the Poor,” 48-67을 보라.

 4. 야고보의 믿음과 행함의 논쟁에 대한 개척적, 학술 연구를 위해서는 Joachim Jeremias, “Paul and James”를 보라.

 5. R. P. Martin의 야고보서 주석을 보라. 분량의 ⅛에 해당하는 부분을 믿음과 행함의 복잡한 문제에 대해 공평하고 철저하게 다루고 있다. 마틴은 그 당시의 본문적 문맥에 비쳐 그 구절을 해석하는 일에 기여했다.

 6. 이 서신에서 “믿음”의 개념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위해서는 J. F. MacArthur, Jr., “Faith According to the Apostle James”를 보라. (1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