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상의 광신자들과 형식에 치우친 예배자들이 곤궁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거나 관심을 갖는 일을 외면한다면 그 모든 것이 헛것이라는 가르침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야고보는 단지 예수님과 선지자들이 강조했던 것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야, 미가, 아모스, 호세아, 스가랴와 같은 선지자들은 이 문제—특히 고아와 과부를 볼보는 것에 개방적이어야 한다—에 특별히 사로잡혀 있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소돔의 관원들”과
“고모라의 백성”(
1:10)으로 언급하면서, 그들을 공격함으로 그의 책을 시작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제물과 번제(
11, 12절), 그들의 특별한 성일들(
13, 14절), 심지어는 그런 경우의 기도조차도(
15절) 기뻐하지 않으심을 매우 분명히 한다. 대신에, 그는 그들에게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16, 17절)고 탄원한다. 책 후반부에서, 그는 더 나아가 참된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에게 거할 곳을 제공하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라고 주장했다(
58:6, 7).
(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