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 제 3 편 뜰 제11장 놋 번제단
 

 번제단에서 부르심
 우리는 번제단(番祭壇)에서 “내게로 오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는다. 죄인이 정문으로 들어가서, 용서와 받으심을 위하여 번제단으로 나아간다. 이때 얼마나 감미로운 약속이 주어지는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80.1)
 번제단에 모든 것을 놓으심
 번제단 위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출 12:5)인 어린양(羊)이다. 이 흠이 없는 생명은 희생되어졌고, 번제단의 불로 곧 완전히 태워졌다. 이 양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그 양은 그분의 탄생은 물론 탄생 전부터 하나님에 의하여 세상의 구주(救主)로 구별된 예수님을 나타낸다(눅 1:35). 그분은 “창세 이후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계 13:8)이셨다. 그때에 그분은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그분의 생명을 완전히 태워지도록 내주셨다. (80.2)
 “여호와 앞에서”(레 9:24) 나온 불은, 하나님께서 손수 점화하신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희생제물을 받아 주실뿐 아니라 희생제물과 함께하심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 불은 “꺼지지 않게 할”(레 6:13)것이니, 그것은 회개하는 죄인을 위한 계속적인 구속과 영원하신 자비, 지속적인 가납을 나타내며 밤낮으로 탈 것이었다.1) (80.3)
 예배를 위해 정해진 매일 아침과 저녁 시간에, 제사장이 번제단 위에 어린양을 놓을 때, 모든 이스라엘 사람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머리를 숙여 기도하였다. 그리스도를 그들의 희생제물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섬기며 살고자 그들의 모든 것을 새롭게 헌신하는 것이다. 이것이 “늘 드릴 번제”(출 29:38~42)이며, “온전한 번제”(신 33 :10)였다. 2) (80.4)
 “주께 모두 드리네.”
 일 년 된 어린양은, “너는 청년의 때 곧 ∙∙∙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2:1)는 성경절을 연상시킨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결심할 때, 그는 자신의 죄를 위하여 제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야 한다. 번제단에서 태움을 당한 그분께서 그분의 피로 우리를 사셨음을 믿고, 우리의 모든 죄, 즉 영혼의 성장을 망치며 방해하는 우리의 모든 어리석은 행실과 그릇된 습관과 무익한 독서와 부도덕한 교제와 해로운 오락들을 그분에게 기꺼이 드려야 한다. 그대는 이 모든 것을 번제단 위에 놓았는가? 죄는 언제나 우리에게 해만 줄 뿐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모두 포기하도록 하자. 비록 우리 생애에 실수가 많고, 우리의 마음에 죄가 아주 많을지라도, 이제부터 진실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고백해야 한다. (81.1)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고
사랑하고 의지하여
주만 따라 가려네.”
(81.2)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내어 놓자. 오직 그럴 때에만 하나님께서 예물과 바친자를 모두 받아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81.3)
 그러나 이 번제물은 태워 버릴 우리의 죄를 포기하는 것 이상의 뜻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몸, 우리의 생애를 “산 제물”(롬 12:1, 킹제임스역)로 드려야 한다. 우리의 모든 시간과 모든 재능, 육체적인 모든 힘, 모든 수입과 모든 열정을 그분이 지시하시는 대로 사용하고, 완전히 그분을 위하여 태워지도록 제단에 놓아야만 한다.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막 12:30; 마 22:38). 그것이 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의 첫 번째 계단이다. 단지 철저한 헌신만이 가납될 따름이다. 우리는 그때에 마음의 깊은 곳으로부터 진실하고 기쁘게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81.4)
“주께 드리네. 주께 드리네.
사랑하는 주 예수께 모두 드리네.”

-J. W. DeVenter, 찬미가 635장-
(81.5)
 만약 우리가 이같이 하지 않는다면,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크신 희생에 대하여, 우리는 그분에게 “합당”(마 10:38)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의 사업에 전심을 다하 ∙∙∙ 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분의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 전적으로 바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수 없으며, 그분의 동역자가 되기는 더더욱 어렵다”(시대의 소망, 273).  (81.6)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드리지 못하는 자는, “참으로 자기 생명까지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눅 14:26, 신킹제임스역)한다. 그는 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준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어휘 중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말이며, “드린다”는 말은 그것의 동의어이다. 만약 우리가 이같이 드리지 않는다면, 단지 교회 녹명책에 우리의 이름만 기록된 것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가 그분의 제자라고 할 수 있을까? 사탄은 불신의 말로 “너는 할 수 없어!”라고 속삭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용기 있는 믿음의 손을 앞으로 내뻗으면서, “나는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82.1)
 그리스도의 군사의 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군사로 선택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딤후 2:3, 4)가 될 수 있다. 이 싸움에서는 두려울 것이 없다. (82.2)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고후 9:8).
그는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8).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그는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히 7:25).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를 능히 건지실 것이며”(단 3:17).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으니(빌 3:21).
그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엡 3:20).

그는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이다”(유 1:24).
“그 은혜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82.3)
 이처럼 기라성(統羅星) 같은一그보다 더 많은—확신 어린 약속을 받은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화답해야 하지 않을까? (82.4)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딤후 1:12).
나는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롬 4:21).
(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