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앗시리아 제국의 최후와 유다 왕국의 멸망
 에살핫돈(Esarhaddon, 681-669 B.C.)의 아들 아슈르바니팔(Asshur- banipal, 669-626 B.C.) 말기부터 앗시리아 제국은 갑자기 쇠퇴하기 시작했다. 제국 내 깊숙이 침입한 스키티아인(Scythians)의 약탈과 방화, 그리고 도처에서 봉기되는 반란이 그치지 않았다. 거기에다 아슈르바니팔 사후에 왕위 계승권 쟁탈전으로 내분이 그치지 않자 제국의 중앙 집권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었다.1) 그 와중에 이집트는 독립을 선언하고 엘람도 제국의 세력권에서 벗어 나갔다. 설상가상으로, 앗시리아 제국이 완전히 괴멸하게 된 결정타는 두 지역에 아슈르바니팔이 죽기 전에 총독으로 임명한 두 봉신들의 배신이었다. 그 하나는 바빌로니아 지역 최남부 “바다의 나라”2) 총독으로 임명받은 나보폴라사르(Nabo- polassar, 625-605 B.C.)3)와 다른 이는 이란 고원 지역의 메대(Media) 총독으로 임명된 키악사레스(Cyaxares)의 반란이었다. (185.1)
 

사자를 사냥하는 아슈르바니팔 부조, 루브르 미술관 소장, 파리
(186.1)
 B.C. 625년에 아슈르바니팔이 죽자 나보폴라사르는 반란의 주모자로 변신하여 그 해에 바벨론 성에 입성하고 갈대아의 신 바빌로니아 왕조를 창건하였다. 그것으로 잦은 전투가 계속되다가 앗시리아 제국에 항쟁으로 돌변하더니 B.C. 616년부터는 아예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서 티그리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수도 니느웨를 향하여 고도 앗수르에 진격하기 시작했다. (186.2)
 한편, 이란 고원의 엘람과 손잡은 메대의 총독 키악사레스는 메대 군을 재편성하고 수도 엑바타나(Echbatana)를 중심으로 하여 지금의 테헤란 지방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독립 왕국을 선포했다. 드디어 B.C. 615년에 자그로스(Zagros)산맥의 험준한 계곡길을 넘어 앗시리아를 기습 공격하여 아랍[Arapah](현재의 키르쿡[Kirkuk])을 단숨에 점령하고 다시 그 여세를 몰아 B.C. 614년에 앗시리아의 옛 수도 앗수르를 먼저 함락했다.4) (186.3)
 그리하여 한발 늦게 앗수르에 도착한 나보폴라사르는 그 성벽 아래서 키악사레스와 함께 제국 앗시리아를 멸망시키기 위해 모의하던 중 혈맹을 맺기에 이르렀다. 즉 나보폴라사르의 아들 느부갓네살(605-562 B.C.)과 키악사레스의 손녀(Astyages의 딸) 아미티스(Amytis)와 정략혼을 하게 한 것이다.5) 이렇게 해서 결성된 메대-신 바빌로니아(Medo-Neo Babylonia)의 연합군은 드디어 B.C. 612년 여름에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를 급습하였는데, 파괴와 약탈에 열광적이던 스키티아인도 합세했다. (186.4)
 

BC 616-609년의 바빌로니아 연대기. 메대가 앗수르를 정복하고 니느웨를 멸망시킨 내용을 포함한다. 루브르 미술관 소장
 약 2개월간의 포위 공격 끝에 니느웨는 함락되고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앗수르 왕 신- 샬-이스쿤(Sin-sar-iskun, 621-612 B.C.)은 그 많은 중신들과 궁녀들과 함께 살해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187.1)
 B.C. 611년에 제국 내 여러 곳에 흩어진 패잔병들을 한 곳으로 집결하고 군을 재편성한 한 용장은 자신이 앗시리아의 새 왕 아슈르-우발리트(Asshur-uballit II, 611-609 B.C.)라 선언하고 왕위에 즉위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하란(Haran)을 새 수도로 삼고 마지막 방어진을 구축하면서6) 이집트에 원군을 긴급 요청하였다.7) (187.2)
 B.C. 610년에 느부갓네살은 연합군을 재정비하자 곧 하란을 포위 공격했다. 아슈르 우발리트는 이집트의 원군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하란에서 철수하였다. 하란은 느부갓네살이 이끄는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고 말았다. 하란의 성주 나부—바라추—이쿠비(Nabu—baratsu—iqubi, ?—610 B.C.)는 처형되고, 그의 아내인 월신 신(Sin)의 여사제 슈무—아담콰(Shumu—adamqua)는 그의 어린 아들 나보니두스(Nabonidus)8)와 함께 생포되어 월신 신(Sin)과 화성신 네르갈(Nergal)의 신상들과 함께 전리품들 속에 이끌리어 바벨론 도성에까지 끌려왔다. (188.1)
 한편, 앗시리아의 아슈르 우발리트가 하란에서 이집트에 원군을 그렇게 간곡히 요청했는데도 왜 이집트의 바로는 제때 응하지를 못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부왕 프삼메티코스(Psammetichos, 663-609 B.C.)9)의 임종을 기다리다 부왕 사후 뒤늦게 왕위에 즉위하고 나서야 출동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지체된 것이 아닌가 싶다. 여하간에 B.C 609년에 아슈르-우발리트도 구하고 동시에 빼앗긴 팔레스타인과 아람[Syria]의 지배권을 회복하기 위해 느고(Nechoh, 609-593 B.C.)도 대군을 이끌고 북상했으나 돌연 예상치 못하게도 므깃도(Megiddo)에서 유다 왕 요시아 군에 의해 저지당해 버렸다.10) (188.2)
 비록 느고는 므깃도에서 요시아 군을 파하여 대승하였으나 상당량의 군력을 손실하고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리하여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서 앗시리아의 잔존병과 합세하여 갈그미스 성을 바빌로니아 군에서 탈환했다. 아마도 그 전투에서 앗시리아의 최후의 왕 아슈르 우발리트 2세는 전사했는지도 모른다. B.C. 609년의 사건이었다. (188.3)
 

바벨로니아 연대기 기록(605-594 B.C.). 느부갓네살왕이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포위, 예루살렘 포위 공략, 정복한 것을 기록함. 대영 박물관 소장, 런던
(189.1)
 느고는 갈그미스에 앗시리아의 잔병들과 이집트의 수비병을 두고 일부 병력을 거느리고 남하하여 유다 예루살렘 성을 공략하여, 므깃도 회전에서 상처를 크게 입고 결국 그것 때문에 죽은 요시아(640- 609 B.C.) 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여호아하스를 생포하여 3개월만에 왕위에서 폐위시키고 그의 동생 여호야김을 유다 왕으로 봉하고 무거운 벌금을 부과시키고 강제로 이집트와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바로에게 충성을 다짐받기 위해 여호아하스를 볼모로 끌고 우선 시리아로 다시 북상하여 리블라(Riblah)로 끌고 갔다가 다시 이집트로 잡아 내려와서 죽을 때까지 포로로 지나게 했다.11) (189.2)
 B.C. 605년에 느부갓네살은 부왕 나보폴라사르의 명령으로 갈그미스 성을 탈환하기 위해 메대-신 바빌로니아(Medo-Neo Babylonia) 연합군을 이끌고 출동했다. 그리하여 그해 5-6월에 앗시리아-이집트의 연합군과 대회전이 벌어졌다. 갈그미스 대회전에서 대승을 거둔 느부갓네살은 “한 사람도 그의 나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패잔병을 하맛까지 추격하였다.12) 느부갓네살은 그길로 예루살렘 성까지 공략하여 함락시키고, 유다 왕 여호야김으로 하여금 이집트와의 동맹 관계를 폐기토록 하였다. 그리고 성전의 기구들을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이집트 국경선까지 진입하여 일전을 위한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있을 때 본국에서 부왕 나보폴라사르가 8월 15일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사자(使者)로부터 전해듣고 이집트 공략을 포기하고 곧바로 본국으로 돌아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189.3)
 2. 바벨론 도성
 바벨론 도성은 전체의 주위가 약 13km(외벽의 둘레는 16km)의 이중 성벽과 해자에 의해 둘려져 있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에 의해 건설된 성탑은 모두 250개나 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다.13) 그리고 그 이중 성벽의 내성벽은 “임구르-벨”(Imgur-Bel)이라고 부르는데, 그 광이 21피트, 고가 300피트이고 장 60피트마다 높이 240피트의 성탑(망대)을 설치했다. 그리고 외성벽 “니미트-엔릴”(Nimit-Enlil)은 광이 11피트였다. 그리고 내성벽과 외성벽 사이의 해자는 6피트의 너비로서 총 연장 67km의 유프라테스 강물을 흐르게 했다. (190.1)
 

바벨론 도성
(190.2)
 느부갓네살은 아래와 같이 기록했다: (191.1)
“... 나는 동쪽 바벨론에 강력한 성벽을 쌓았다. 나는 해자(moats)를 파서, 그 해자의 안쪽 벼랑 벽을 역청과 구운 벽돌로 조성하였다. 그리고 그 해자의 가장자리에다 막강한 성벽을 산처럼 높이 구축했다. 나는 그 성벽에 넓은 대문을 만들어 구리 옷을 입힌 삼나무 문짝을 달았다. 그래서 악의를 품은 적이 바벨론 사면에서부터 침공할 수 없도록 했다.”14)
(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