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마태복음 제 II 부 왕의 선포 (4:17-16:20) 4. 왕국의 원칙들 II (6; 7)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품성, 영향 그리고 의의 원칙들을 제시하셨다. 6장에서 그는 그리스도인의 경건, 목표들, 그리고 우선 순위들을 다루시는 반면에, 7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관계들과 헌신들에 초점을 맞추신다. 총체적으로 산상설교는 사람의 생애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원칙들을 제시하는 광범위한 토대를 갖춘 문서이다. (113.1)
 ■ 말씀에 들어감
 한번 앉은자리에서 마태복음 6장을 신속하게 두 번을 읽으라. 읽으면서 다음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라. 그대의 답을 노트에 적어 놓으면 그대가 도달한 결론들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13.2)
 1. 6:15:16을 비교하라. 이 구절들이 조화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113.3)
 2. 구제, 기도 그리고 금식(2-6, 16-18)에 관한 마태의 권면은 같은 패턴의 삼중 반복 구조로 되어 있다. 그 패턴을 분석하고 그 기본 구성 요소들을 나열하라. (113.4)
 3. 성경사전에서 위선자(hypocrite)라는 단어를 살펴보라. 어떤 방식으로 그 헬라어 단어의 의미가 그 영어 단어[hypocrite]의 뉘앙스들을 밝혀 주는가? (114.1)
 4.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6절에서 공중 기도에 대한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계신다고 그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5절6절과, ‘주의 기도’(9-13절)에서 그 힌트들을 찾아 나열해 보라. (114.2)
 5. 어떤 사람들은 주의 기도야말로 이상적인 기도라고 제시해 왔다. 예수께서 주신 순서대로(예를 들어, 첫 번째 요소는 하나님에 대한 숭배[예배]) 그 기도의 기본적 요소들을 나열해 보라. 이 요소들이 나열된 순서에 있어서의 논리를 논해 보라. (114.3)
 6. 19-34절에서 각 단락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권면으로서 탁월하고 원칙에 입각한 강력한 한 문장이 있다. 각 단락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밑줄을 그으라. 그런 다음 그대가 밑줄을 그은 그 문장이 그것이 속한 단락의 의미를 어떻게 밝혀 주는지 그 방식을 몇 줄로 논하라. (114.4)
 7. 19-34절에서 염려하지 말 것에 대하여 예수께서 제시하신 논증들을 열거해 보라. 한 문장으로,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로 그가 제시하신 논증의 정수(精髓)라고 그대가 믿는 것을 표현해 보라. (114.5)
 ■ 말씀을 탐구함
 그리스도인의 경건
 6장에서 예수께서는 5:21-48의 도덕적 의로부터 “종교적” 의로 불릴 수 있는 것으로 이동하신다. 그 장의 첫 부분은 개인적 경건의 세 분야들—구제, 기도 그리고 금식—을 다룬다. 그것들이 유대인의 흔한 경건의 행위들이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이 세 분야를 사용하셔서 종교적 경건의 다른 행위들에도 적용될 수 있는 원칙들을 예시하신다. 달리 말해서, 이것들은 그리스도인 실천에 대한 완벽한 목록이 아니라 경건의 본보기들이다. (115.1)
 예수께서 이런 행위들을 명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주목하라. 정확히 말해서, 그는 천국의 시민들이 그것들을 실천하기를 기대하신다. 그 사실은 그 자체로서 매우 흥미로운데, 그 이유는, 이 셋 중 하나(금식)는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용도 폐기되어 왔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중세 그리스도교의 한 왜곡물로 간주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115.2)
 마태복음 6:1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의의 행위들”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명백하게 진술한다. 그렇게 하면 아버지로부터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5:16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착한 행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해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 두 구절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로를 보충해 주는 가르침들이다. 5:16에서의 화제는 공중 전도인 반면에, 6장에 주어진 세 가지 실례들의 주제는 개인적인 경건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5:16에서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인데 반하여, 6장에서 경건의 그릇된 행습은 그것들을 실행하는 자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런 조명 아래서, 그들은 정죄를 받는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 생애에서 모든 예배와 각각의 행위는 우리의 모든 소유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향으로 향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115.3)
 개인적 경건에 관하여 예수께서 드신 세 가지 실례는 기본적으로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제일 먼저, 그것을 실행하는 자의 “거룩성”을 공중 앞에서 전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그릇된 경건의 방식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진실치 못한 동기 유발로 인하여, 이런 연극 배우들(위선자란 뜻의 밑바탕을 이루는 헬라적 사상)은 그들의 행위로 인하여 그들이 얻게될 유일한 상급은 그들의 자기 중심적 행동(자아 여행)이 유일한 상급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달리 말해서 하나님은 그들의 경건을 진실된 것으로 인정치 않으신다. (115.4)
 각 예증의 후반부는 그 의무를 성취하는 바른 길을 제시한다. 각 경우에, 이런 제안들이 담고 있는 중심 사상은 개인적 경건은 개인과 하나님 사이라는 것이다. 즉 개인적 헌신(경건)을 불러일으키는 동기는 자기를 높이려는 자신의 죄악적 갈망이라기보다는 아버지와의 그 사람의 개인적 관계에 기초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실례들 모두는 신실한 경배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의 상급을 받을 것이라는 진술로 끝을 맺는다. (116.1)
 어떤 독자들은 개인적 경건에 대해 상급을 주신다는 개념이 못마땅하다고 생각해 왔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는 대로는, 그것은 공로로 말미암는 구원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추론은 산상설교가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 하나님을 그들의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와 같이, 그들의 경건 행위는 왕국에 들어가기 위한 공로성 행위들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자들로부터의 사랑과 숭배의 반응이다. (116.2)
 신약과 그리고 특별히 마태복음의 전반적인 취지들(요점들)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행위들은 상급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예컨대, 16:27; 25:14-46을 보라). 물론 행위들은 어디서 굴러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아버지에 대한 개인의 관계의 자연적인 결과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개인적 경건과 그 밖의 다른 그리스도인 행위들은 그 왕국에 들어가게 만드는 방편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이 된 사람들이 맺는 열매이다. (1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