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요한복음 제II부 예수와 옛 세대 (1:19-4:54) 제 4 장 질문하는 제자 (2:12-3:21)
 갈릴리에서 확실치 않은 기간, 아마도 4-6개월을 보내신 후(2:12), 예수께서는 유월절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그곳에 머무시는 동안 그는 성전을 정결케 하셨는데(13-22절), 이것은 그에게 큰 관심이 쏠리게 하는 표징이었으나, 예수께서는 이를 기뻐하지 않으셨다(23-25절). 바리새인이며 유대인 통치 협의회의 일원인 니고데모는 예수가 하고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밤 시간에 몇 가지 조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3:1-21). 그는 말씀을 들으면서 묵묵히 앉아 있었다(10-21절). (101.1)
 이 복음서의 시간 진행에 의하면, 니고데모와의 면담은 예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신 바로 그날 저녁 늦게 있었다. 그래서 이 부분의 모든 내용은,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같은 날에 일어났고, 근본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다. (101.2)
 ■ 말씀에 들어감
 요한복음 2:13-22을 두 번 읽고 나서 다음의 질문들에 대답하라: (102.1)
 1. 예수의 성전 정결 이야기의 네 가지 다른 기사들(마 21:12-17; 막 11:15-19; 눅 19:45-48; 요 2:13-22)을 비교해 보라. 주요 유사점들과 차이점들은 무엇인가? 각 기사가 예수의 공중 봉사의 어느 단계에서 일어났는지 살펴보라. 그대는 예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신 것이 두 번 이상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여러 기자들이 자신의 신학적 목적에 따라 그 이야기의 위치를 정했다고 생각하는가? 한두 단락으로 그대의 답을 설명해 보라. (102.2)
 2. 그대의 성경의 난외주 또는 관주를 사용하여 2:17에 인용된 시편이 어디서 온 것인지 찾아보라. 그대가 찾을 수 있는 유사점들의 목록을 만들어 보라. 그대는 예수께서 구약의 이 시편을 인용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02.3)
 3. 2:13-226:22-35를 비교해 보라. 다시 한번 그대가 찾을 수 있는 유사점들의 목록을 만들어 보라. 그대는 이 복음서의 저자가 이 두 구절 모두에서 비슷한 교훈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대의 대답에 대해 설명해 보라. (102.4)
 4. 2:222:11을 비교해 보라. 두 문단에서 제자들의 믿음은 비슷한가? 아니면 다른가? 어떤 일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있은 후에야 이해되고 믿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102.5)
 ■ 말씀을 탐구함
 문단의 구조
 마태, 마가, 그리고 누가와는 현저하게 다른 방법으로, 요한은 성전 정결 사건을 십자가 사건 바로 앞에 두기(마 21:12, 13; 막 11:15-17; 눅 19:45, 46)보다는 예수의 봉사의 시작에 두고 있다. 이는 두 번의 성전 정결, 즉 한 번은 예수의 공중 봉사의 시작에, 또 한 번은 끝에 있었는지, 아니면 단지 한 번만 있은 것인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만일 단 한 번의 정결만 있었다면, 요한과 다른 세 기자 중에서 그것을 사건의 실제 역사적 위치에 둔 것은 누구일까? (102.6)
 제안된 세 가지 입장들에 대해서는 모두 지지하는 증거가 제시될 수 있다. 성전 정결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련되어 있다(2:19, 21; 참고 마 26:61; 27:40; 막 14:58; 15:29). 이 일은 유대교 안의 지배 계층들의 분노를 일으키도록 계획된 행위였다. 이리하여 십중팔구 이 사건은 그의 체포와 심문과 처형을 재촉했을 것이고, 따라서 마태, 마가, 누가가 그렇게 한 것처럼 이 사건은 그의 생애의 끝에 오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다음에서 살펴보겠지만, 요한복음 2:13-22에 기록된 정결의 시기는 예수의 공중 봉사의 초기와 잘 조화되고 있다. (103.1)
 성전 정결에 관한 두 기록 모두가 적절한 역사적 정황을 가지고 있으므로, 예수께서 실제로 성전을 두 번 정결케 하셨을 가능성이 매우 많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초기 행위의 강조는 대체(代替) 주제에 있다. 예수께서는 성전과 그 희생 제물을 자신의 몸으로 대치하셨다(19-21절).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 기록된 후기의 행위는 예수의 체포와 죽음을 재촉하였다. (103.2)
 2:13-22의 구조는 상당히 직설적이지만, 14-17절18-22절은 서로 평행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첫째 부분은 예수께서 행하신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둘째 부분은 그의 행위 이면에 있는 권위에 관심을 두고 있다(Talbert, Reading John, 96—98). 다음의 도표에 유의하라: (103.3)
14, 15 예수의 행위 18 예수의 행위
16 예수의 말씀 19 예수의 말씀


20, 21 오해
17 제자들이 기억함 22 제자들이 기억함
(104.1)
 문단의 배경
 요한복음 2:20에서 “유대인들”은 그들이 말하고 있는 당시에 그 성전이 46년간 건축중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전 건축은 성전이 파괴되기 7년 전인 A.D. 63년에야 완공될, 계속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었다. 성전의 재건축은 헤롯 대왕의 치세 제18년에 시작되었다(헤롯의 치세 제18년은 B.C. 20년 및 19년의 일부와 중첩된다). 헤롯 치세 제18년(B.C. 19년 봄)에 46년을 더하면 A.D. 28년 봄에 이르게 되는데(“0년”은 없었다), 이것은 예수께서 침례자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디베료[Tiberius] 15년-누가복음 3:1-은 A.D. 27년 가을이었을 것이다), 6개월쯤 지난 때이다. 이와 같이 이 이야기 속의 대수롭잖은 언급(“이 성전은 46년 동안에 지어졌거늘”)은 이 사건을 정확하게 예수의 공중 봉사의 이 지점에 둔 것의 역사적 정확성을 입증해 주고 있다. (104.2)
 제1세기말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성전에서의 상거래는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재임하던 시기(A.D. 18-36; 참고 Bruce, 64, 65)에 시작되었다. 제사장들이 성전에서의 매매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엄청났으므로, 이를 저지하는 것은 그들의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었다. (104.3)
 묵시서인 에녹1서에 기록된 대로,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올 때 그는 솔로몬 성전의 영광에 필적할 만한, 아니 에스겔 40-48장의 성전처럼 옛 성전을 능가하는 것으로 대치함으로써 성전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하였다(에녹1서 89, 90). 그러므로 유대인의 묵시서인 에스라4서와 바룩2서(A.D. 70년의 예루살렘 멸망 이후의 어느 때에 기록됨)에는 A.D. 70년의 성전 파괴는 메시야의 오심을 위한 필수적인 준비의 일부로 설명되어 있다. 옛 성전이 파괴되었으므로 새 것이 곧 이르러올 것이라는 희망이 깔려 있었다. 이와 같은 기대에 비추어 볼 때, 예수의 성전 정결은 그가 메시야임을 주장하는 행위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1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