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키나의 그림자 속에서 제12장 새로운 세대 (민수기 26~30장)
 민수기 28장 16절부터 29장 전체는 연중 절기들에 드려야 할 추가적인 희생제물을 나열한다(레 23:4-43 참조). 봄철 절기들은 유월절과 무교절, 그리고 칠칠절(오순절)을 포함한다. 가을 절기들은 나팔절, 대속죄일, 그리고 초막절(장막절)이었다. 각각의 경우, 추가적인 번제와 그것에 수반되는 제물이 드려졌으며, 속죄를 하기 위해 거기에다 하나의 정결 예물이 추가되었다. 번제 또한 속죄를 제공했지만(레 1:4; 16:24), 정결을 위해 드리는 제물들은 특별히 제거에 초점이 맞춰졌다(레 4장). (208.1)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를 위하여 연중 매일 드리는 번제들과, 절기 때 (대속죄일을 포함하여) 드리는 번제와 정결 제물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담요처럼 전체를 뒤덮어 주는 그런 속죄를 제공했다. 개인들이 또한 자신들의 희생제물을 성막으로 가지고 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아야 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레 4,5장). 그러나 대중을 위해 드리는 희생 제물들은 그들이 성막에 도달할 수 있기 전에 그들을 가리워주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전역에 흩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남자들에게 일 년에 세 번(무교절, 칠칠절/오순절, 초막절/수장절) 성막으로 오라고 요구하신 것을 기억하라(출 23:14-17; 34:22-24). (208.2)
 이스라엘 희생 제도가 가르치는 단체적/공동체적 속죄와 개인의 속죄 사이의 관계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값없이 제공하시는, 포괄적으로 이용 가능한 속죄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선물을 받아들일 때 우리 개인의 속죄 경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롬 5:15,16; 고후 5:19).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그 거민들이 살 수 있도록 우리 세상을 되사셨으며, 개인적으로 그분을 믿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얻을 기회를 주셨다 (요 12:31). 그리스도께서 그와 같이 죽지 않으셨다면, 인류의 존속을 위한 토대는 마련되지 못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희생 없었다면 그들이 결코 살아있도 못할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208.3)
 죄를 지을 때, 용서와 죄 씻음을 받을 수 있으려면, 우리는 자복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레 5:1,5,6; 요일 1:9).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상에서 하신 것은 우리가 우리의 죄책을 인정할 기회를 갖기도 전에 우리를 덮어준다. (209.1)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당혹케 해온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 내가 죄를 지은 후 자백할 기회 없이 즉시 죽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여러분이 운전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무례하고 위험하게 여러분의 차를 방해했다고 하여 불의한 분노에 사로잡힌 나머지, 여러분은 해서는 안 될 제스쳐나 말을 한다. 그러고는 쾅! 여러분의 인생이 비극적인 사고로 끝났다. 여러분이 한 마지막 일이 죄였고, 즉사했기 때문에 죄를자백하지 못했으므로, 여러분은 영원히 잃어버린바 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속주로 받아들이는 일을 계속 하였다면, 여러분이 죄를 고백할 수 있을 때까지 그분의 희생이 여러분을 가리운다. 여러분이 죄를 고백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그런 토대 위에서 여러분은 잃어버린바 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분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다(요 3:16). 그분은 우리가 실수하는 바로 그 순간 단두대의 도끼를 떨어뜨리시고, 득의의 미소를 지으시며 그의 손을 문지르시면서 “잡았다. 한 건했다.!”라고 기뻐 어쩔 줄 몰라 하실 수 있도록 우리가 실수할 때를 기다리고 계시지 않는다. (209.2)
 절기들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의 있어서 농업적 및 역사적 측면을 기념하였다. 그분의 창조력을 통하여 그분은 그분의 백성들에게 초기 추수 (칠칠절)와 후기 추수 (초막절) 때 양식을 제공해 주셨다. 장막절에 희생제물을 풍성하게 드림으로써 추수기에 끝에 그분께 특별한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여호와의 구속하시는 능력 (피조물에 대한 그분의 통제를 포함하여)을 통하여, 그분은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해방하셨으며 (유월절과 무교절), 광야에서 그들을 부양하셨다(초막절). 그분께서는 그들의 거룩한 왕으로 칭송을 받으셨으며 (나팔절), 실수한 인간에 대한 그분의 취급하심이 공의로웠음이 옹호되었을 때, 그분의 충성스러운 신민과 불충한 신민 사이에서 누가 충성스러운지 심판하셨다(대속죄일). (210.1)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속죄일에 자기 부정 (금식 등)을 통하여 스스로를 겸비케 하고 모든 노동을 그만 둠으로써 그들을 위한 속죄의 최종적 국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여호와께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보여주었다(민 29:7; 레 16:29-31; 23:26-32 참조). 대속죄일은 의문의 안식일이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런 노동도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는 매주의 안식일과 같았다. 다른 의문의 안식일들에는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닌, 어떤 일들(예를 들면, 가사일 같은 것들)을 하는 것이 허락되었다(민 28:18,25,26; 29:1,12,35). (210.2)
 그것들이 속한 제의적 제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성경의 절기들을 지킬 수 없는 반면,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이 마련해 주시는 유지시키는 돌봄과 구원을 경축할 특별한 시간을 우리가 떼어놓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예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변화된 유월절인 성만찬 예식을 제공해 주셨다. 이 예식은 우리로 하여금 모두를 위해 그분의 단번의 희생을 통하여 그분께서 마련하신 구속을 기억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분을 대표하는 그 희생에 부수적인 떡(소제)과 포도즙(전제)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으로서의 그분의 희생을 받아들인다(마 26:17-19, 26-29; 고전 11:23-26; 5:7; 출 12장). (210.3)
 약속이 지켜질 수 없을 때
 선교사 부모를 따라 인디아에서 살던 딸이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211.1)
 그녀는 진지하게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들은 몇 년 뒤 학업을 마치면 결혼하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들뜬 그녀는 한 인도 친구에게 자신의 결혼식 때 신부 들러리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커플의 계획이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어서, 그들은 일 년도 채 되지 못해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 당시 그들은 결혼식에 들러리로 참석할 인도에 있는 친구가 비행기를 타고 올 수 있는 돈을 보낼 충분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신부는 심심한 사과의 편지를 써서 보냈고, 다른 친구에게 신부 들러리가 되어달라고 요청해야 했다. 그 인도 소녀는 답장을 하지 않았고, 결코 다시 그녀와 서신 연락을 하지 않았다. (211.2)
 여러분이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211.3)
 이 같은 시나리오는 좌절감과 상한 감정을 야기할 뿐이다. 여러분의 약속이 여호와께 한 것이라면, 그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민수기 30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211.4)
 현대의 독자들에게, 민수기 30장에 주어진 하나님의 지시 사항들은 성차별로 보일 수 있다. 남자나 혼자 사는 여자(과부나 이혼녀)가 여호와께 서원을 하거나 맹세를 한다면, 그들은 절대적으로 약속을 지켜야 하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집에 거주하는 젊은 여성이나 남편과 함께 사는 아내의 서원이나 맹세는 아버지나 남편이 그것을 처음 들은 날 그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아버지나 남편이 그 시점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자신의 의무에 묶이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나 남편이 서원을 이행하는 것을 반대하고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그 약속에서 놓여나고, 여호와께서는 자동적으로 그녀를 사하겠다고 약속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율법에서 법령에 의한 용서의 유일한 예이다. (212.1)
 성경이 여기서 여성들에 대해서 편견을 갖고 있는가? 자주녀(自主女)들이 남성처럼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그 문제가 단순히 성별에 관한 것이 아님을 가리킨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여자와, 그(아버지나 남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서원과 맹세의 분야에서 그녀를 주관할 권세를 가지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나 남편과의 사회적 관계이다. (212.2)
 이스라엘 사회는 남자들을, 재산 관계 거래를 포함하여 법적 문제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딸이나 아내가, 여호와께 대한 것을 포함하여, 재산의 이동에 관한 서원이나 맹세를 한다면, 그녀는 자신의 약속을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그녀의 남자의 협조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녀가 협력하도록 남자에게 압력을 가하고, 남자는 마지못해 그렇게 한다면, 가정 내에 적개심이 생길 수 있다. 남자가 협력을 거절하면, 여자는 서원을 성취할 수 없게 되고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동의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신고하면 여자로 하여금 의무에서 놓여나게 하심으로써 이런 문제들을 예방하셨다. (212.3)
 “모든 서원과 마음을 자제하기로 한 모든 서약은 그의 남편이 그것을 지키게도 할 수 있고 무효하게도 할 수 있으니”(민 30:13). 본문은 일정 기간 동안 성관계를 삼가겠다는 서원을 포함할 수 있는 육체적 자제를 가리킨다. 확실히 그러한 약속을 지키는 일에는 남편의 자발성이 요구되며, 강요되어 자신이 원치 않는 상황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느낀다면 남편은 적개심을 가질 수도 있다. 한번 더, 하나님께서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불행을 피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도 남편들과 아내들이 성적인 분야에 있어서도 서로 협력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였다. (213.1)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 7:3-5). (213.2)
 민수기 30장의 두 측면은 주목할 만하다. 첫째, 여호와께서는 가족 내의 어떤 다른 사람에게 끼쳐질 결과에 상관없이, 그분의 이름으로 행한, 그분께 대한 모든 서원과 취해진 맹세들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심으로써 신과 왕으로서 자신의 권리들을 강력하게 주장하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권리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정에서의 조화에 관심을 가지셨다. (213.3)
 둘째, 여호와께서는 고대 사회와 더불어 일하셨다. 그분이 그 사회를 만들지 않으셨지만, 상황을 개선하고 문제들을 풀기 위해 그것을 규제하셨다. 지극히 큰 권세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가부장적 일처리 방식을 타도하려고 시도하심으로써 사회 공학에 종사하지 않으셨다. 현대에 있어서, 우리는 사회 공학이 얼마나 파괴적이 될 수 있는지를 보아왔다. 러시아와 중국 사회를 공산주의의 틀에 강제로 집어넣는 일은 수 백만의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모택동 주석의 지휘 아래 사망한 중국인 수는 7천 5백만 명으로 추산된다. 아내와 나는 최근 공개강좌를 가르치면서 루마니아에서 몇 주를 보냈다. 그곳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 아름다운 나라가 1989년 혁명으로 끝난 공산주의가 가져다 준 황폐함으로부터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는지를 보게 되었다. (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