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의 의도는 우리 자신의 말을 듣기 좋아하는 즉, 어떤 대화에서 우리의 주장이 관철됨을 기뻐하는 우리 중의 사람들에게 침묵의 맹세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는 단지 우리의 입을 지혜롭게 사용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수세기 전에, 잠언의 저자도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
17:28)고 말했다. 많은 경우에, 듣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며 더욱 유리하다. 많이 듣고 적게 말하는 사람은 많이 배우고 고난에 적게 굴복당하는 사람이다. Lehman Strauss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귀는 두 개 주시고 입은 단 하나만 주셨다. 우리는 듣고 배우는 것에 두 배는 빨라야 하지 않겠는가?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듣고, 그가 말할 가치가 있다고 확신할 때에만이 대답할 것이다”(51)라고 영감적으로 기록했다. 야고보는 그의 청중들이 전체적인 시야로 듣고 말하고 성내기를 소망한다. Eugene Petersen은 그의 부연 설명인
The Message에서, 이 격언을 동시대적인 관점으로 제시하여, 우리가 야고보의 더욱 넓은 시각을 잡도록 도와준다. 그는
“이것을 모든 교차로에 세워라, 사랑하는 친구여, 너의 귀가 앞장서서 인도하며 너의 혀는 그 뒤를 따르라, 그리고 후미에 분노가 따르게 하라”(
잠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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