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토의 왕인 엔—릴 신이 루갈—작기시에게 국토의 왕권을 주었을때, 해뜨는 땅[Ellam]에서부터 해지는 땅[Syria]까지의 국토를 그에게 향하게 했고, 그의 힘 아래 모든 나라들을 굴복시켰을 때 아래의 바다부터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두 강을 따라 위쪽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그 통로를 그를 위해 평탄하게 했다. 동쪽으로부터 서쪽에 이르기까지 신 엔—릴은 그에게 적을 주지 않았다. 루갈—작기시는 나라들에게 평화의 쉼을 주었다. 땅은 즐거움의 물로 관개(灌漑)되었다.... 그때 그는 우룩시의 용모를 광채로 빛나게 했고, 스키와르드 시를 황소처럼 했다. 그리고 우르의 머리를 높이 쳐들게 했고, 사랑스러운 태양신의 도시 라르사(Larsa)를 기쁨의 물로 흐르게 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샤라(Shara)의 도시 움마의 품위를 훌륭하게 높였다.... 전토의 왕 엔—릴 신은 그의 사랑하는 아버지 안(An) 신 앞에서 드리는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나의 나라가 내 안에서 태평 성시하도록 나에게 생명을 연장해 주옵소서.... .”5)
(179.2)
 그러나 패전자 루갈-우르가니나(Lugal-Urganina)는 라가쉬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179.3)
“라가쉬를 파괴하여 그 신 닌-기르수에게 큰 죄를 저질렀도다. 그 승리에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 죄는 라가쉬의 루갈-우르가니나에게 있지 않도다. 움마의 엔시, 루갈-작기시의 목에 신이여 큰 벌을 내리소서.”6)
(179.4)
 그런데, “태양신 우투를 수호신으로 섬겼던 움마의 루갈-작기시도 수메르 사회 사상 최초로 그의 국토를 지중해까지 확장해서 대국을 건설했으나 25년간의 치세 끝에 북방에서 발흥한 신흥 도시국가 악갓의 루갈-사르곤에게 멸망당하였다. 사르곤과 그가 이끄는 국민은 셈족 계열의 족속이었다.”7) (179.5)
 

악갓의 통치자의 두상. 나람-신 또는 사르곤의 것으로 사료됨. 니느웨(쿠윤직) 출토. BC 2300-2200년경, 청동, 높이 30.5cm, 바그다드 이라크 미술관 소장.
(181.1)
 “엔시”(Ensi)는 단일 도시 국가의 지배자의 칭호이며, “루갈”(Lugal)이란 “큰 사람” 또는 “위대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모든 수메르 도시 국가 사회에서는 국왕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만 닙푸르(Nippur) 도시 국가에서는 예외였다. 닙푸르의 수장은 세속적 칭호인 “루갈”이라는 왕호를 사용하지 않고 종교적 칭호인 “파테시”(Patesi)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8) (181.2)
 도시 국가 닙푸르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사회에서 인정하는 모든 신들의 왕인 “엔-릴”을 모시는 성지로 봉헌되었기 때문에 성시였다. 그래서 수메르의 여러 도시들의 루갈들이 왕위를 계승하게 됐거나, 정복 전쟁에서 승전하게 되면 다 이 닙푸르에 와서 신중의 신인 최고의 신 엔-릴에게 축제 의식을 거행했었다. 움마와 패권 쟁탈전을 시도한 나라는 악갓 사람들의 도시국가 키쉬였고, 키쉬 왕국의 루갈은 사르곤(Sargon, 2411~2355 B.C.)이었다.9) 그는 동북쪽으로 엘람(Ellam) 지방의 수사(Susa)를 점령하여 라가쉬에서 지중해 바다까지의 전 국토를 정복하여 명실공히 수메르-악갓의 패권자가 되었다. 그는 북서쪽 원정을 시도하여 유프라테스 강 중류의 교통의 요충이었던 마리(Mari) 왕국에서 시리아 지방 타우루스(Taurus) 산맥 동쪽의 소 아시아 동부까지 정복하였다. 사르곤은 이 전승 기념을 다음과 같이 비문에 남겼다: (181.3)
 

악갓왕 나람신의 승전기념비. 수사 출토, 사암, 높이 2m. 나람승전비 부조는 왕이 자그르스 산 속의 약탈자 룰루비 족을 정복하고 있는 장면이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182.1)
“엔-릴 신은 전 국토의 왕 사르곤에게 위의 바다에서 아래 바다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적대자도 허용하지 않았도다.”10)
(182.2)
 이처럼 셈족인 악갓의 루갈까지도 “... 메소포타미아 전토의 통일자가 되면 반드시 닙푸르의 신전에 참배하여 보호를 받도록 기도하였다.”11) (182.3)
 사르곤의 3대 후의 루갈이었던 나람신(Naram-Sin, 2331-2294 B.C.)은 그의 전승비에 “나람-신 대왕, 1년에 9군을 정복한 사계의 왕”12)이라는 공식 칭호를 쓰면서 사막의 천막 생활을 걷어치우고, 흙벽돌 집을 짓고 살면서 수메르의 설형문자를 빌려 최초로 셈어의 설형문자 기호를 남겼다. 또 수메르인들의 종교를 받아들였다. 예술만을 제외하고 수메르인들은 모든 면에서 이 셈족 악갓인들의 교사였고, 수메르 문명은 악갓 왕국의 사계의 정복에 의해 널리 보급되었다. 그후 B.C. 2400년경 우르의 제3왕조가 일어나 수메르인들을 다시 통치하면서 “사계(死界)의 왕,” “수메르-악갓의 왕”이라는 칭호로 호령한 관료적 통일 국가를 재건하였다. 이것은 함족의 수메르인의 마지막 세력의 광채였다.13) (182.4)
 

함무라비 법전. 수사에서 발굴. 루브르 박물관 소장. 파리
(183.1)
 B.C. 2000년경에 산족 엘람족들이 득세하기 시작하면서 평야 족인 수메르인들이 쫓기기 시작할 무렵 시리아 지방의 아모리인들(Amorite)이 산족과 평야인들 간의 싸움을 틈타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침투하여 바벨론을 함락하였다. (183.2)
 그리하여 바빌로니아의 대국을 건설하게 된 루갈은 아무루 왕조의 제6대 왕 함무라비(1728-1686 B.C.)였다. 그는 우르 제3왕조를 멸망시킨 후, 이신, 라르사, 도시국가들과 메소포타미아에서 패권 다툼을 30여 년간 한 끝에 그것을 쟁취했다. 그는 다시 이 지역을 통일하여 동으로는 엘람에서 북으로는 앗시리아까지 세력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나서 그의 기념비적인 법전 비문의 전문에, “바빌론의 신 마르둑이 하늘의 최고신 아누와 그리고 도시들의 우두머리인 엔-릴에 의해 신 엔-릴과 동등한 위에 올랐다”고 함으로 바빌론의 수호신 마르둑을 격상시켜서 바빌론을 메소포타미아에서 영구적인 수도로 높였다. (183.3)
 바벨론은 함무라비 시대 이후 2000년 동안 메소포타미아 세계의 중심이 되고 그 수호신 마르둑은 수메르 신전의 최고신 엔-릴(셈명은 벨[Bel])과 합체되어 벨-마르둑이 되고 바빌로니아 신전의 주신이 되었다. 이와 함께 오랜 수메르 신화가 마르둑을 중심으로 하는 신화로 대규모적으로 변조되었다.14) (184.1)
 그는 그 전문에서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184.2)
“각 도시의 국왕은 돌기둥에 조각해 놓은 나(함무라비)의 정의의 말을 지켜 나 왕 나의 재판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 지혜있는 왕이라면 나를 따라 그 법과 재판을 행하여 국민의 행복을 증진토록 하라.”15)
(184.3)
 상술(上述)한 바와 같이, 우르의 제3왕조가 함무라비에 의해 멸망하게 되자 앗시리아도 다시 부분적인 독립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세력을 회복하면서 신장을 도모한 루갈은 일루수마(Ilushuma, ca. 1867-1830 B.C.)였는데, 그도 두 개의 봉헌된 비문에서 자기가 앗수르에 이쉬타르(Ishtar)신전을 건축했으며 성벽을 세웠으며, 우르, 닙푸르, 아왈(Awal) 그리고 키스말(Kismal)에 살고 있던 악갓 사람들의 자유를 보장해 주었다고 자랑했다.16) (184.4)
 그후 디글랏빌레셀 2세(Tiglath-pileser II, 965-933 B.C.)는 앗시리아로 남하하여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고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신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될 때까지 이 지역에서 최강국으로 신장해 왔다. (184.5)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