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십자가 (안식일의 신앙의 의미) 제 1 부 안식일과 쉼 제 12 장  우리에게 남아있는 안식일 안식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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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브리서 4장의 안식일
 우리에게는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있다”(히 4:1). 이것이 무슨 말인가? 공동번역에는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했다. 안식의 약속이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다는 말이다. 우리들에게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있다”는 말이다. (109.1)
 우리에게는 안식일 안식의 약속이 있다. 확실히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두려움은 우리에게도 “안식일 안식의 약속이 있을까”의 두려움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 누구도 “우리가 그 안식일 안식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공동번역, 4:1). 우리에게는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확실하게 “있다”(4:1).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확실히 “있다.” 그리고 “지금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계 14:13). 그들에게도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가 그치고 쉬리라”(계 14:13) 하였기 때문이다. (109.2)
 우리의 두려움은 다른 데에 있다. 우리의 진정한 두려움은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분명히 살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약속에 혹 미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4:1)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안식일 안식의 약속을 누리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두려움이다. (109.3)
 왜 두려운가? 과거 역사에서 안식일 안식의 약속을 누리지 못한 세대들도 우리와 같이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4:2). “저희도 우리와 같이 복음을 들었다.” 그런데 “그 들은바 말씀[복음]이 저희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한 까닭이 무엇이었는가.” 복음을 들은 저희가 안식일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까닭이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도 그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씀이 그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4:2). 복음을 들었을 뿐 복음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안식일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110.1)
 사실 우리가 안식일 안식에 들어가는 일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이미 다 이루어진 일이다”(4: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었던 것이다”(창 2:1).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다 마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 하셨던 것이다”(창 2:3). 그리고 “이미 믿은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히 4:3). (110.2)
 그런데 저희와 우리가 다같이 들은 복음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할 때 그 일을 다 이루었다는 소식이다. 천지 만물이 “다 이루었다”는 소식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는 소식이다. 우리와 같이 복음 전함을 받은 저희가 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이 복음을 들었으나 이 복음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복음을 듣고도 그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들은 복음이 그들에게 아무 유익도 되지 못했다.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았으나, 하나님이 창조 때에 이미 다 이루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이 안식일 안식의 기쁜 소식을 믿지 않는다면 이 복음이 우리에게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110.3)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안식일 안식의 공로를 믿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이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신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의 안식”에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 해야할 일은 정녕 이것이다. (111.1)
 우리에게 남아있는 안식
 우리에게 남아있는 안식일 안식은 하나님이 창조 때에 누리신 안식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구속을 “다 이루시고” 들어가신 안식이다. 이 안식은 어떤 의미에서 그냥 있어서 남아있는 안식이 아니다. 있음으로써 남아있음이 아니라 과거의 세대들이 미달하여 남아있는 안식, 과거의 세대들이 미치지 못하여 남아있는 안식, 우리가 혹 미치지 못할까 두렵고 우리가 혹 도달하지 못할까 두려운 안식이다. (111.2)
 다시 말해 이 안식은 아직까지의 세대들이 도달하지 못한 차원의 안식일 안식이다. 출애굽을 한 여호수아의 세대들도 도달하지 못한 차원의 안식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여호수아의 세대가 미치지 못한 차원의 안식에 대한 약속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초청하는 안식은 출애굽의 차원과 가나안의 차원에 있는 안식이 아니다. 다윗 왕국의 차원에서 경험되는 안식이 아니다. 태초의 안식, 제칠일의 안식, 하나님의 안식, 하늘나라의 안식, 예수 그리스도의 안식이 우리에게 남아있는 안식이고, 우리에게 약속된 안식이다. 이것은 복음을 듣는 차원에서 경험되는 안식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안식일 안식을 이러한 차원의 안식으로 인식하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노하여 맹세할” 것이다.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4:3) 하실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희는 결단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4:5) 하실 것이다. (111.3)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셨고,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있는 안식은 믿음의 차원에 있는 안식이다. 믿음의 왕국에서 누리는 안식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다 이루심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다 이루심을 믿음으로써 들어가는 안식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들어가는 안식이다. 믿음으로 들어가는 안식일 안식은 아직도 저 하늘의 높이에 그대로 서있는 “저 안식이다.” 저 높은 하늘의 안식이다. 하나님 나라의 안식이다. 하나님의 “그의 안식”이다. 이 안식이 우리에게 남아있다. (112.1)
 저 안식일 안식을 위하여 남아있는 사람들
 그러나 저 안식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있다. 앞 세대들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다 이루셨다”는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고 또 “순종치 않은 탓으로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4:6)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있다. 따라서 저 안식은 남아있는 자들의 안식이다. 복음을 믿고 복음을 순종하는 남은 무리의 안식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고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의 안식이다(계 14:12). 이미 믿은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남은 무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112.2)
 그리고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우리 남은 무리들은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4:10). 남은 무리들은 “이미 믿고” “이미 안식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이미 순종하고” 안식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제칠일에 쉰다. 쉬려고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안식에 들어갔기 때문에 제칠일에 쉰다. (112.3)
 넷째 계명대로 쉰다. 그리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입을까하는 자기 일도 쉰다. 중요한 것은 여호수아의 시대에 살았건, 다윗의 세대에 살았건, 복음의 시대에 살았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는”(3:13)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아야 한다”(4:7). 하나님의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세대들은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하나님의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3:11). 하나님의 안식의 복음을 듣고도, 복음의 “음성을 듣고도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노하여 맹세하기를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리라 하신 것이다”(3:10, 11). (113.1)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권고하기를 오늘날 안식일 안식의 복음을 들을 때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라(3:12) 하였다.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는 것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마음이 강퍅케 됨을 면하라”는 것이다.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라”는 것이다. (113.2)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자기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당신의 안식으로 초청하시는 예수께서 당부하시는 말씀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 11:28, 29)는 것이다. 안식일 안식의 멍에는 온유와 겸손이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안식일 안식의 길은 온유와 겸손의 길이다. 온유와 겸손한 마음의 믿음과 순종의 길이다. 예수의 길이다.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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