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을 복주신 하나님의 행위 다음에 또 하나의 중요한 행위 곧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행위가 뒤따른다.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다”(창 2:3)고 했다. 히브어 동사 예카데스의 또 하나의 가능한 의미는 “그것을 거룩하게 만들다” 또는 “그것을 성화(聖化)하다”이다. 이 말의 동사형(型)인 피엘은 사역(使役)의 뜻과 서술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를 미루어 생각한다면 이 구절의 뜻은 하나님이 제칠일을 거룩하다고 선언하여 이것을 인간을 거룩하게 만드는 수단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 되겠다.5 “거룩한”이란 말이 성경에서 사용되기는 이것이 처음이고 제단이나 신전이나 사람과 같은 대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제칠일이란 시간에 대해서 “거룩한”이란 표현이 사용되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72.1)
 1. 안식일의 거룩함의 의미
 하나님이 안식일 위에 내려주신 “거룩함”의 의미는 무엇인가? 안식일이 다른 여섯 날과 똑같은 길이와 순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식일의 신성이 안식일의 구조에 관계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어떻게 시간과 같은 비인격적 요소가 거룩할 수 있을가? 창세기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 안식일을 복 주신 일과 마찬가지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한 일도 혹종의 신비에 가리워져 있는데 구속의 역사가 전개되면서 그 정체가 서서히 들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안식일의 거룩함이 여러차례 되풀이 하여 나타나고 있는 출애굽기에서는 안식일의 신성함의 의미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臨在)의 표현과 뚜렷히 연결되면서 확연해지고 있다. (72.2)
 만나의 이야기에서도 안식일의 신성함이 천명되고 있기는 하나 그에 대한 설명은 없다(출 16:23). 왜 그랬을까? 명백히 그 원인은 그 당시에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가 부분적인 것으로 그쳤고 나중에 시내산에서 크게 이루어질 하나님의 영광의 표현의 예비적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는 데에 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출 16:9)는 초청을 받았으나 그들이 광야 멀리 바라본 하나님의 영광은 구름의 모습을 한 “여호와의 영광”의 잔광(殘光)에 불과한 것이었다(출 16:10). (72.3)
 하나님의 임재로서의 안식일의 거룩함.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의 표시가 반복해서 그리고 가장 인상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를테면 십계명의 선포식은 하나님의 권능과 임재하심의 표현으로서 우뢰와 번개가 치는 가운데 행해졌다(출 19:16~19; 20:18~19).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로 거룩하게 된 시내 산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고 명하여 안식일을 하나님의 거룩한 날로 선포하였다. 간과해서는 안될 사항은 안식일 계명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초청으로 시작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신 5:15) 안식일의 거룩함이 창조 때에 하나님이 그날을 거룩하게 하신 행위 속에 근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 계명이 끝나고 있다는 점이다(출 20:11). 히브리어에서는 이 동일한 동사가 양쪽 경우에 모두 사용되고 있다. (73.1)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경험한 이스라엘은 이 경험을 통하여 시간(안식일)과 그리고 후에는 예배 장소(신전)에 나타난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배움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의 거룩함의 주지(主旨)는 시내 산, 안식일, 성전에 모두 나타나고 있으며 이 셋을 하나로 묶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 산에 강림” 할 때(출 19:10, 11)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와 만나기 위한 준비로 스스로를 성결케 해야한다는 분부를 받았다(출 19:11). 이 준비에는 개인적인 청결(출 19:10, 14)과 하나님의 영광으로 뒤덮혀 있는 시내 산 주위에 지경(地境)을 정하는 일이 포함된다(출 19:12, 23). (73.2)
 안식일의 거룩함과 연결된 이같은 연계성(連繫性)은 간과되지 말아야 한다. 실로 개인적인 준비와 또 일반적인 시간과 거룩한 시간의 경계를 정하는 일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기본적인 요소들이다. 필요한 준비를 하지 않고서 안식일에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경험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이익과 쾌락을 갈라 놓는 울타리를 시간 속에 치지 않고도 하나님의 거룩한 제칠일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공명할 수가 있을까? (73.3)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경험. 하나님의 거룩함의 의미는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제칠일에 구름 속으로 들어오도록 초청을 하시고 또 모세가 가까이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됨으로써 더욱 명료해지게 되었다.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일 동안 산올 가리더니 제칠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산 위에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같이 보였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다”(출 24:15~18). (74.1)
 여기에 나오는 제칠일은 일반적으로 안식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 예로써 니콜라 니그렛티(Nicola Negretti)는 이 구절에 대한 문어적 분석을 통하여 “안식일의 구조가 ∙∙∙ 하나님의 영광의 표현과 하나님의 계시의 시작사이에 문체적, 연대적 고리를 제공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6 엘렌 화잇도 “제칠일 곧 안식일에 모세가 구름 속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였다.”7 하나님께서는 제칠일에 모세를 당신의 영광스러운 임재 속으로 들어오도록 초청하심으로써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 때에 안식일이 거룩하게 된 것의 은밀한 의미를 밝혀 주셨다. 이제 안식일의 거룩함은 하나님에 의하여 이날에 주입된 마술적인 특질이 아니라 안식일에 그리고 안식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활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비스럽고 장엄한 임재라는 사실이 들어났다. (74.2)
 안식일의 거룩함의 의미는 출애굽기 31장 13절에서 좀더 힘있게 표현 되어 있다. 하나님은 분부하시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도 알게 함이라”(출 31:13)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안식일의 거룩함이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같은 것으로 나와 있다. 여기에 와서 창조의 안식일에 부여된 거룩함의 신비가 들어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마지막 창조 행위 즉 제칠일을 거룩하게 하신 행위를 통하여 이 세계위에 부여한 하나님의 임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74.3)
 6일 동안에 하나님은 이 지구를 선한 사물들과 생물들로 가득채웠으나 제칠 일에는 지구를 당신의 임재로 가득채웠다. 하나님의 임재는 안식일을 통하여 약속된 생명의 축복과 행복의 원천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게 될 때 인간의 생명은 하나의 무상한 그림자에 불과하게 된다.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버림을 당하게 됐다고 괴로워하던 다윗이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1)하고 기도했을 때 그는 이러한 진리를 잘 알고 있었다. 이 세계와 인간의 생활 속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과 보증으로서의 안식일은 하나님의 사랑스런 관심을 나타내 주는 가장 숭고한 표현이다. (74.4)
 2. 고리로서의 안식일의 거룩함
 하나님의 임재의 특별한 표현으로서의 안식일의 거룩함의 정의(定義)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잇는 고리로서의 안식일의 기능을 생각케 해준다. 유행하는 신학적인 개념을 이용해서 말한다면 이 고리를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으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안식일의 이같은 기능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를 좀더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출애굽기에서 안식일에 의하여 이루어진 율법과 은혜, 성막(聖휴)과 이스라엘 백성의 사이의 연계(連繫)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74.5)
 

하나님은 6일 동안에 이 지구를 선한 것들과 생물들로 가득 채우셨다. 그러나 제칠일에는 이 지구를 당신의 임재로 가득 채우셨다. 하나님의 임재는 안식일을 통하여 약속된바 생명의 축복과 행복의 원천이다.
(75.1)
 율법과 은혜의 연계(連繫). 출애굽기를 보면 십계명과 여러가지 민법(民法) 및 제식법(祭式法)이 선포된 다음에(출 21~23장) 성막 건축을 위한 청사진이 계시되고 있다(출 25~31장). 성막은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 (출 28:8, 29:45)과 그리고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대책(출 29:36; 30:19)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면 안식일은 율법과 은혜에 어떻게 연관되고 있는가? 모세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출 24:12)과 “장막의 식양(式樣)”(출 25:9)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속으로 들어간”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제칠일은 여기에서 율법과 은혜의 고리로서 작용하고 있다. (76.1)
 문맥으로 미루어 볼 때 행동 원칙의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스런 관심이 표명되고 또 속죄와 예배를 위한 대책이 마련되는 날이 안식일임을 알 수 있다. 지극히 중요한 원칙은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들어내 보이시고 그것을 이행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은혜를 허락하시는 날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허락은 성막에 대한 계시가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시는 여호와”(출 31:13)의 표로서의 안식일에 대한 강조로 끝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암시되고 있다. (76.2)
 출애굽기에서는 안식일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주제에 의하여 성막(聖幕)과도 연결되고 있다. 시내 산에서 구름의 형태로 나타났던 하나님의 영광(출 24:15~16)은 나중에 성막으로 옮겨졌다(출 40:33). 성막 만드는 일을 “모세가 필하였을”(출 40:33) 때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며 모세가 회막에 들어 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다”(출 40:34:35). (76.3)
 처음에는 시내 산에서 안식일에 구름의 모양으로 모세에게 나타났으나 나중에는 성막으로 옮겨진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은 창조의 안식일의 거룩함과 광야의 성막의 거룩함 사이를 연결해 주고 있다. 이것은 우주의 창조가 제칠일에 하나님의 개인적인 임재로 말미암아 거룩해짐으로서 종결되었듯이 예배 장소의 성화(聖化)도 그 장소 위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임재로써 완결되며 낙성된다는 것(출 40:34, 35)을 뜻하고 있다. (76.4)
 성막과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의 고리.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으로서의 안식일의 거룩함은 성막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또 하나의 고리를 마련해주고 있다. 성막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중”(출 25:8)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안식일도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출 31:13)임을 이스라엘 대대에 확신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임재로 인한 성화(聖化)는 안식일과 성막이 공유(共有)하는 요소이다. 안식일에 성막 위와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는 모든 신자들이 경험해야 하는 개인적인 체험이어야 한다. 사무엘 테리엔(Samuel Terrien)은 말하기를 “안식일을 통한 성소의 독특성은 하나의 내면적이고도 우주적인 실재로 되었다”8고 하였다. (76.5)
 시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성소로서의 안식일은 모든 신자들에게 환경에 상관없이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실상 수 세기에 걸처 질병이나 좋지 못한 환경 때문에 동료 신도들과 함께 성소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수 많은 신실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실로 휴대용 성소(聖所)나 다를바 없었다. 감옥의 창살도 믿는자의 영혼에게 비추는 하나님의 임재의 빛을 막지 못하게 하는 날이 안식일이다. 이로써 우리는 나라를 잃고 사방으로 쫒겨나 성전을 박탈당한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회당같은 집회소나 또는 공터(행 16:13)에 모여 성경 연구와 기도에 힘쓸 수 있었던 까닭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다.9  (7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