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9장 인(印)침을 받은 성도들
 둘째, 요한계시록 7장에 있는 12지파의 명단은 이스라엘의 정규적인 12지파가 아니다. 예를 들면, 유다(Judah)가 르우벤(Reuben) 대신에 첫째 지파로 등재되었다. 그 이유는 두말할 여지없이 예수님이 그 지파 출신이기 때문이다(계 5:5). 다음으로, 단(Dan)지파와 에브라임(Ephraim) 지파가 빠졌다. 그 대신 요셉(Joseph)과 레위(Levi)가 포함되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7장의 지파들이 이스라엘의 역사적 지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여기에 제시된 명단은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것이다. (134.17)
 단(Dan) 지파가 빠진 것은 이 지파가 제일 먼저 우상숭배에 빠졌기 때문이다(삿 18:27-32). 후에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단 지파는 우상숭배의 중심지가 되어 예루살렘의 성전 예배와 경쟁하였다(왕상 12:27-31). 요한 시대의 유대인들은 적그리스도(Antichrist)가 단 지파에서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2 같은 이유로 에브라임(Ephraim)도 12지파에서 제외되었다. 구약게서 이 지파는 배교와 우상숭배의 상징이 되었다(대하 30:1, 9-10; 호 4:17; 8:11). 시편 기자는 에브라임 사람들을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율법 준행을 거절”한(시 78:10) 사람들로 기술하였다. (134.18)
 이런 것들이 필경 단지파와 에브라임(Ephraim) 지파가 요한계시록 7장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명단에서 제외된 이유일 것 같다. 144,000인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참 이스라엘이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로 그들의 두루마기를 깨끗이 씻었다(계 7:14). 그들은 인침을 받고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며,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계 14:1-5) 자들인데, 여기서 여자는 배도한 교회들의 상징이다. 이런 종류의 불충성을 범한 단과 에브라임 지파는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 들 수가 없다. 하나님께 충성한 자들만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수 있으며, 영원한 유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계 7:14-17). (134.19)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12지파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가리킨다. 신약에서 교회는 이스라엘의 12지파로 일컬어진다(약 1:1).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 불렀고(갈 6:16), 그리스도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3:29)라 일컬었다. 144,000인은 12지파의 각 지파로부터 12,000명씩 나와서 구성된 무리이며, 마지막 때 직전에 있을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한다. 이들이 바로 인침을 받고 마지막 7재앙의 큰 환란을 통과하기에 준비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이마에 있는 하나님의 인으로 말미암아 보호를 받는다. (134.20)
 투쟁교회 (Church Militant)로서의 144,000인
 큰 환란의 문턱에 서 있는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백성을 묘사하면서 요한계시록은 전쟁 용어를 사용하였다. 144,000인은 전쟁하러 나가는 고대 이스라엘을 본따서 군대로 묘사되었다. 그들의 수 144, 000은 12에다 12를 곱하고 거기에다 다시 1, 000을 곱한 것이다. 구약의 전쟁 장면에서 1,000(히브리어 엘레프[èleph]은 기본적인 부대 단위이다(민 31:3-6; 삼상 8:12; 22:7). 144,000인은 12지파로 구성되어 있고, 각 지파는 12개의 단위로 되어 있으며, 각 단위 부대는 1,000명의 병사로 이루어져 있어서, 각 지파의 총 인원은 12,000명이고, 전체 병력은 144,000명이다. 이리하여 144,000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는, 사탄과 그의 군대 “2만 만”[2억](계 9:16)을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준비된 144개의 부대 단위[1,000명]로 형성된 군대를 상징한다. 요한계시록 19:18은 사탄의 군대도 1,000명으로 된 부대 단위들로 조직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그리스어 킬리아르코스[chiliarchos, 한국어 성경에는 “장군”으로 번역됨—역자 주]는 병사 1, 000명의 지휘관을 가리킨다. 6:15도 참고하라). (134.21)
 이리하여 144,000이란 숫자는 고대 이스라엘처럼 부대 단위로 조직된 투쟁교회(鬪爭敎會, Church Militant, 하나님의 교회가 이 세상에서는 끊임없이 사탄의 세력과 싸우고 있으므로 이 지상의 교회를 ‘투쟁교회’라 일컫고, 이 세상이 끝나고 천국에 올라가면 승리한 교회가 되므로 천상의 교회를 ‘개선교회[凱旋敎會, Church Triumphant]’라 칭한다—역자 주)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용어이며, 이들은 이 세상 역사에서 최후 최대의 전투인 아마겟돈 전투(참고 계 16:16)에서 싸우기 위해 출전하려고 한다. 상징적인 인(印)이 그들을 최후의 투쟁에서 하나님의 편에 있는 자들임을 확인해 주는 한편, 그것은 또한 이제 곧 악인들에게 내려질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기도 한다. (134.22)
 셀 수 없는 큰 무리(7:9-17)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숫자를 들은 다음, 요한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보았다. 그들은 모두 흰옷을 입고, 어린양과 보좌 앞에 서서 그들이 받은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과 어린양을 찬양하였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144,000인을 그리스도인들 중의 마지막 세대, 즉 마지막 7재앙의 큰 환란을 통과하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왕국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할 사람들로 보고 있다. 그리고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144,000인과는 대조적으로 모든 시대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추정한다. (134.23)
 그러나 요한계시록 7장은 그러한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요한은 그 “셀 수 없는 큰 무리”도 하나님의 백성의 마지막 세대임을 매우 분명히 말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7:9에서 요한은 그 “큰 무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흰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그 후에, 장로들 중 하나가 요한에게 설명하기를 흰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들은 큰 환란에서 나온 자들이라고 하였다(계 7:14). 그들은 어린양의 피에 그들의 옷을 씻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긴다(7:15). 이것은 그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나님의 백성의 마지막 세대—마지막 7재앙의 큰 환란을 통과할 사람들—임을 보여 준다. (134.24)
 우리가 이 무리에 대해 해석할 때 명심해야할 것은 요한계시록에서 여러 번 사용된 문학적 특징이다. 이 특징은 “내가 들으니” 또는 “내가 보니”라는 형식이다. 요한은 자주 이상(vision) 속에서 무엇에 대하여 듣는다(hear). 그 후에 그는 그가 들은 것을 다른 상징과 다른 시각으로 본다(see).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 5:5에서 요한은 유다 지파의 사자(Lion)가 이겼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잠시 후에 요한이 보는 것은 일찍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다(계 5:6). 사자나 어린양은 둘 다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사자는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보여 주고, 어린양은 그분이 그 일을 어떻게 하셨는지를 보여 준다. 또한 요한계시록 17:1에서 요한은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에 대해 듣는다. 그러나 17:3에서 요한은 그 음녀가 붉은색 짐승을 탄 것을 본다. 물들과 짐승은 둘 다 세상의 정치적 세속적 세력의 상징들이다(참고 계 17:15). (134.25)
 이것이 우리가 요한계시록 7장에서 바라보는 상황이다. 요한이 들은 것은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의 수가 144,000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그 인침을 받은 사람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그에게 능히 셀 수 없는 큰 군중으로 보였다. 이것은 144,000인과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동일한 그룹의 백성, 즉 상이한 시대와 환경에 처해 있는 마지막때의 하나님의 백성임을 보여 준다. (134.26)
 이것을 요한계시록 7:1-4에서 좀 더 부연해서 설명한 것을 보면, 144,000인은 네 천사가 바람을 잡고 있는 동안에 인침을 받는다. 인치는 일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바람이 놓여서는 안 되었다. 인치는 일이 끝났을 때, 바람이 놓임을 받았고(계 7:3), 마지막 7재앙이 반역하는 인류 위에 내려졌다. 인침을 받은 144,000인은 마지막 7재앙의 큰 환란을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요한은 그들을 보지는 않고, 단지 그들이 인침을 받았다는 것을 듣기만 했다. 그가 그들을 실제로 보았을 때, 그들은 크고 셀 수 없는 무리로서 큰 환란으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서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그 큰 승리를 축하하였고(계 7:9-10), 그들의 상급을 받으려 하고 있었다(계 7:15-17). (134.27)
 144,000인은 144개의 군부대[1,000명 단위]로 조직되어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전쟁에 돌입하는 투쟁교회로 묘사되어 있다. 반면에, “큰 무리”는 그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와서 승전을 경죽하는 개선교회(凱旋敎會, Church Triumphant)로 묘사되었다. 이제 전쟁은 끝났으므로 그들은 더 이상 군부대로 조직되지 않았다. 요한에게 그들은 셀 수 없는 무리로 나타났다. 그들을 셀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수가 크기 때문이 아니라, 요한에게 있어서 그들이 144,000인과는 대조적으로 세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144,000인을 쉽게 헤아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1,000명으로 이루어진 단위부대 144개로 조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34.28)
 현시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144,000인이 신자들 중의 마지막 세대라면, “큰 무리”는 어떤 존재인가? 그들은 전 역사를 통하여 있었던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로 구성된 것인가? 우리는, 요한계시록 7장의 목적이 요한계시록 6:17에서 제기된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 질문은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능히 서리요?”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7장의 초점의 대상은 전반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마지막 세대이다.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 전체는 요한계시록 19:1-9에 묘사되어 있다. (134.29)
 144,000인은 누구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요한계시록 7장이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백성을 두 가지의 다른 관점에서 묘사하고 있음을 보았다. 첫째로, 그들은 마지막 7재앙이라는 큰 환란의 문턱에 서 있는 인침을 받은 144,000인으로 묘사되었다. 그런 존재로서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에 능히 설 수 있는 사람들이다(계 6:17). 둘째로, 그들은 또한 그 큰 환란의 날을 견디고 나오는 “큰 무리”로 묘사되었다. 그들의 지상 여정은 끝났고,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그분의 보좌 앞에 서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위에 장막을 치시리라”(계 7:15)고 약속하신다. 이스라엘에 관한 언어를 사용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광야 경험이 끝났음을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들이 다시는 굶주림이나, 목마름이나, 뜨거운 햇볕의 고통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7:16-17). 이런 고통들은 큰 환란 동안에 있을 재앙들의 일부였다. 이제 어린양은 그들을 먹이시는 목자가 되셔서 생명수가 흐르는 샘들로 그들은 인도하시며, 거기서 그들은 마침내 그들의 본향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겨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계 21:4). (134.30)
 우리가 여기서 기억할 것은, 요한계시록 7장은 144,000인이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의 마지막 세대라는 것이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다(계 7:14). 그들의 구원은 그들 자신의 거룩함이나 행위의 산물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것의 결과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134.31)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지상에 두 부류의 구원받은 백성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성도들의 마지막 세대가 그들 앞서 살아간 사람들이 도달할 수 없었던 거룩함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사상은 성경 어디서도 가르치지 않는다. 144,000인은 하나님의 다른 백성으로부터 분리되고, 구속받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특권들을 부여받는 선택된 부류가 아니다. 144,000인은 지상에서 박해를 받은 유일한 백성이 아니고, 인침을 받는 첫 번째 사람들도 아니다. 그들은 구속을 받는 유일한 백성도 아니고, 또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흠이 없는 자로 나타나는 첫 번째 사람들도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어떠한 차별 없이 흰옷을 입을 것으로 약속받았다(계 3:4-5; 6:11; 19:8). 이렇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귀족도 계급도 없으며, 어떤 이들에게는 주어지고 어떤 이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특권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134.32)
 요한계시록 14:1-5에서 우리는 마지막 위기의 배경 가운데서 144,000인의 추가적인 특성들을 보게 될 것이다. (13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