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질문이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는 이 “준수한 소년”(2절)은 지도력의 냥쭝을 가지지 못했다. 대소사간 이 사람은 남의 판단을 따랐다. 제10장 끝까지 우리는 사울의 음성을 오직 한 번 더 듣게 된다. 사무엘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에 관하여 묻는 숙부에게 회피적인 대답을 주었을 뿐이다. 사울은 나귀에 대하여 언급하였으나 “사무엘의 말하던 나라의 일[왕권]은 고하지 아니하니라”(16절). 그런 수줍은 성격 때문에 사울은 그의 왕권에 대한 공적인 선포를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행구(行具) 사이에 숨었다(22절). 마침내 공개적으로 기름을 붓는 모든 축제 행사들 후에 사울은 조용히 기브아의 집으로 물러갔다(26절). “비류”(匪流, “troublemakers”; 히브리어, “벨리알의 아들들”)가 사울을 놀리고 그에게 선물을 바치는 것을 무례하게 거절하였을 때에, 성경은 “그는 잠잠하였더라”(26절)고 말할 뿐이다. 만일 그가 이미 그의 무용을 과시한 사람이었다면 그러한 반응은 다른 편 뺨을 돌려대는 것의 구약적 모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마 5:39와 비교하라). 실상 독자는 사울의 머뭇거림이 겸손에서가 아니라 그의 비겁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기가 쉽다. (95.1)
 그리하여, 비록 이스라엘의 첫 왕이 신체적으로 우람한 사람이었지만 백성의 지도자로서의 자격은 애처롭게도 부족한 형편이었다. 아마도 “벨리알의 아들들”의 말이 맞을 것이다: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10:27). (95.2)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었다. 성경이 그를 주저하는 성격의, 수동적인 사람으로 묘사할지라도 여호와의 손이 그 위에 임한 것은 의심할 수 없다. 사울의 도착 전날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명하사 사울에게 기름을 바르고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라고 하셨다.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9:16).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에 사무엘은 사울의 운명에 대하여 암시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20절), 반복해서 그것을 강조하였으며, 그에게 상석을 제공하고 공동 식사에서 최상의 음식을 먹게 하고(22-24절), 이튿날 사사(私私)로이 기름을 부었으며(10:1),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구체적으로 알고 확신할 수 있는 징조에 관해 말하였다: 라헬의 묘실 앞에서 두 사람이 그를 만나 나귀를 찾았고, 아버지가 사울을 걱정하고 있다는 보고를 전할 것이다(2절). 그리고 다볼의 큰 나무에서 염소를 끌고 떡과 포도주를 갖고 가는 세 사람이 그에게 떡 두 덩어리를 줄 것이다(3, 4절). 마지막으로 기브아 동구 밖에서 하나님의 영이 사울 위에 “크게” 임할 것이며, 악기를 들고 가는 일단의 선지자들이 그에게 다가올 것이며, 그들과 함께 예언한 후에 사울은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이었다(5, 6절). 사무엘은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7절)고 말했다. (95.3)
 성경은 “하나님이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셨고, 그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9절)고 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사울을 택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을 더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사울이 행구 사이에 숨어 있는 것을 드러내신 것도 바로 하나님이시다(22절). 그리고 마침내 사울이 백성들 앞에 섰을 때, 사무엘은 사울이 “여호와의 택하신 자”라 하고, “백성 중에 [그와] 짝할 이가 없느니라”고 선포하였다(24절). 사무엘은 “나라의 제도”를 기록하였고, 그 두루마리 책을 “여호와 앞에” 두었다(25절). 사울이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지만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이 그와 함께 갔다(26절). (96.1)
 그리하여 사무엘상의 저자는 이스라엘의 새 왕을 복합된 역설적(逆說的) 존재로 그렸다: 미남(美男)인 사울은 또한 망설이는 사울이다; 그는 특정한 명령에 순종은 하지만, 결정적인 행동을 취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한 느낌을 남긴다. 사울은 백성이 선택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선택한 인물이 것이 분명하지만, 이 역설은 새 왕에 대한 사무엘의 애매하게 보이는 태도 때문에 더 복잡해진다. 이 애매성은 10장의 두드러진 두 사건에 잘 나타나 있다. (96.2)
 누가 책임자인가? 사무엘인가, 사울인가?(10:1-27)
 사울에 대한 사무엘의 혼합된 감정을 드러내는 첫째 사건은 사무엘이 사울을 “이중적 속박”(Polzin, Samuel, 107) 속에 둔 것인데, 그에게 예언자의 자유를 부여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사무엘에게 복종하도록 요구하였다. 10:6-8에 묘사된 것을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임할 예언의 경험과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예고하는데, 이 경험이 사울을 “변하여 새 사람”으로 만들 것이었다. 그리고 사무엘은 그에게 백지 수표를 주었다: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7절). (97.1)
 그러나 성년이 된 자녀의 자유를 걱정하는 노파심에서 사무엘은 그 백지 수표를 도로 빼앗는다. 그는 사울에게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을 기다리라”(8절)고 말하였다. 이리하여 결국 사울은 자기의 기회를 따라 일할 자유가 없었다. 그는 아직도 그에게 기름을 부은 선지자 사무엘에게 종속되어 있었다. (97.2)
 기다리라는 이레 동안의 수수께끼 같은 기간이 이 이야기를 해석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다. 사울이 실제로 사무엘을 기다리는 데 실패한 일은 7일이 지난 지 한참 후에 보고되었다. 사무엘상에 제시된 대로는 사울의 실패는 블레셋과의 전쟁과 관련하여 13:8에 기록되었다. 어떤 주석가들은 7일을 기다리라는 명령이 두 번 이상 주어졌다고 생각한다(Baldwin, 91을 보라). 다른 이들은 그 격차를 이용하여 10:7의 사울의 자유와 10:8의 제한 사이의 갈등을 제거하려고 한다. 그들은 7절이 원래는 13장에 속하였으나 편집상 10장에 삽입되었다고 말한다(G. Robinson, 60을 보라). (97.3)
 그러나 그 두 절을 함께 두어 두드러지게 한 것은 이 이야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사무엘의 딜레마를 강조하는 수단일 것이다. 애당초 사무엘은 왕을 달라고 하는 백성들의 요구가 잘못되었다고 확신하였다. 여호와께서 동의하기도 하셨다-그러나 180도 방향을 바꾸시고 사무엘이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하셨다(8:7, 9, 22). 비록 사무엘이 초장에 왕을 주지 않고 백성을 집으로 돌려보냄으로 여호와의 명을 회피하였을지라도 9장에서 여호와께서 이 일을 굳게 부여잡으시고 사무엘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을 붓지 않으면 안되도록 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97.4)
 그러나 사무엘은 마지못해 하는 아버지가 되었다. 분명히 그는 신명기에 있는 여호와의 권고 즉 왕은 레위인들에게 가서 법을 스스로 베끼고 그 내용을 정기적으로 묵상하도록 하는 것을 숙고하였다(신 17:18-20). 그러나 누가 왕이 법에 충성하도록 할 것인가?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너와 같은 선지자”를 세워 백성을 지도하리라고 약속하셨다(신 18:18). 사무엘은 바로 그 선지자였는가? 아니면,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하였으므로 그가 바로 그 자신의 선지자였는가? 여기서, 그리고 훗날에 사울이 거절당한 후에 백성들은 이런 질문을 하였다: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10:11, 12; 19:24). 그러나 양쪽 경우 모두 그것은 사실의 진술이 아니고 다만 질문일 뿐이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나타내고 있다. 왜냐하면 구약은 결코 어떤 다른 왕에게도 예언적 역할과 군주적 역할을 둘 다 맡기지 않기 때문이다. 다윗의 찬미와 기도, 그리고 솔로몬의 지혜가 성경의 일부가 되었지만 이 위대한 왕들이 사울이 그랬던 것처럼 카리스마적인 “예언적 광란”(“prophetic frenzy,” 10:10; 19:23, 「새개정표준역」)에 사로잡혔던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98.1)
 어쨌든 사무엘은 계속 사태를 장악하기로 결심하였다. 선지자들의 수장으로서 그는 선지자-왕을 순종케 하는 일에 책임이 있었다. 이리하여 그는 사울을 이중적 속박 속에 두면서 선언하기를 그에게는 자유가 있다-그러나 사무엘이 그에게 명하는 것만을 행할 자유가 있다-고 하였다. (98.2)
 그러나 사울을 장악하는 결심은 이 문단에서 사무엘에 관한 유일한 수수께끼는 아니다. 왜냐하면 10:8에서 사울에게 보낸 사무엘의 말이 히브리어로는 명령법(“내려가라.... ”; “너는 기다려야 한다.... ”[「새국제역」])이 아니라 단순 미래여서, 그가 명령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예언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즉 “너는 내려갈 것이다.... ”; “너는 기다릴 것이다.... ”(「새개정표준역」). 그리하여 사울이 사자들과 농부들과 선지자들과 만날 것을 사무엘이 예언한 것처럼(10:2-6), 그와 같이 이해하는 것은 그가 또한 사울이 길갈로 가고 사무엘이 7일 후에 도착할 것을 “예언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것은 13:8, 9에서 사울이 경황 중에 제사를 드리기로 결정한 것은 명령의 위반이라기보다는 예언의 실패로 이해하게 한다. 이 실패는 사무엘 자신이 정한 시간에 도착하지 않음으로써 조장(助長)한 결과였다. 사울처럼 순종적이고 주저하는 사람에게는 사무엘이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아니한, 그 설명이 없는 약속의 불이행이 깊은 고뇌를 일으켰고, 그의 군대가 흩어짐을 볼 때에 그 형편은 더욱 심하였다. 사무엘은 그에게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10:7)고 이전에 말했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7일 내로 와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사울에게 일러 줄 것이라고 말했다(8절). 왕은 자유로웠는가, 아니면 속박되어 있었는가? 그리고 그가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었을까? (98.3)
 사무엘이 사울을 임명한 일의 역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둘째 사건은 10:17-25의 사울의 공개적 기름부음이다.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모은 후에 그는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를 회고하고, 그들이 왕을 구한 악에 관하여 날카로운 책망을 하였고, 곧 이어 사울을 선출하는 일을 행하였다. 사무엘의 연설의 쓴 결론을 들었던 사울과 백성들의 기분을 상상해 보라: “너희가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 하나님을 오늘날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19절). (99.1)
 이런 꾸지람을 들은 후에 어떤 왕이 머리를 들 수 있겠는가? 사울이 행구 뒤에 숨은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 장면은 더욱 불길하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제비로 어떤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항상 죄 된 혹은 수치스런 행위와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두 개의 다른 경우에만 그런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는, 아간이 여리고의 바쳐진 물건을 훔친 범인으로 드러난 것이다(수 7:14-21). 다른 경우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왕의 맹세를 범한 자로 지목된 것이다(삼상 14:38-44). 이 두 경우에서 사형 언도가 내려졌다. 다행히도 요나단은 백성에 의하여 구출되었다. 사울에 관하여 폴친은 쌀쌀하게 말한다: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서 사울은 왕권의 죄됨을 상징하는 인물로 부각되었다”(Polzin, Samuel, 104). (99.2)
 사울은 사사인가, 첫 왕인가?(11:1-15)
 제10장은 사울이 집으로 돌아오고 “비류”의 면전에서 침묵을 지키는 사울의 모습으로 끝나며, 암몬 사람 나하스의 이야기로 들어간다. 이어지는 11:1-11의 내용 속에 왕권의 사상은 찾아볼 수 없다. 황급한 상황을 도와달라고 하는 길르앗 야베스의 사자들이 도착할 때에 그들은 왕의 관청으로 가지 않고 그들의 처지를 백성들에게 알렸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서 사울이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 백성들이 우는소리를 듣고 비로소 사울은 그 소식을 접하게 된다. (100.1)
 성경은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6절)라고 말한다. 수줍고, 주저하는 사울이 행동을 취한다. 그의 소들을 토막내어 온 이스라엘에 보내며 전쟁을 준비하라고 명한다. 사울과 사무엘과 합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소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라고 사울은 선포하였다.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같이 나온지라”(7절). 밤중에 사울은 군대를 이끌고 나하스에게 나아가 암몬 진영을 무너뜨렸다. (100.2)
 전체적 윤곽이나 세밀한 내용이나 이 이야기는 우리를 사사기로 이끈다. 사사기의 일반적 양식을 따라 여호와의 신이 평범한 사람 위에 강하게 임하시고, 그 사람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에 큰 구원을 이루신다. 하지만 세세한 연결 고리는 사사기의 마지막 이야기에 나온다. 그것은 어떤 레위인의 첩을 강간하고 살인한 사건 때문에 베냐민 지파가 이스라엘의 나머지 온 지파들과 대치되는 사건이다. 그러나 다른 투쟁-구원의 이야기와는 달리 이것은 내란이었으며, 백성을 구원할 사사가 없었다(삿 19-21). 게다가 이야기의 서론과 결론부에 그 당시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사실을 선포한다(삿 19:1; 21:25). 이것은 왕이 없는 나라는 무정부 상태에 빠져 “각 사람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게”(삿 21:25, 「제임스왕역」)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100.3)
 표면적으로 사무엘상 11장사사기 19-21장의 왕 없는 혼돈에 대한 손쉬운 해결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떤 구체적인 대응점은 잘 맞지 않는다. 첫째로, 비록 사울이 인체 대신에 소의 몸을 토막쳤지만(11:7; 비교 삿 19:29), 무장을 위한 소집은 일종의 성급함을 나타내는데, 한때 아버지의 나귀를 찾기 위해 방황하던 수줍어하고 주저하는 사람과는 딴판으로 나타났다. (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