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이상(理想)을 보여주면서 결론을 맺었다: 여호와를 온전히 의지하고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으며 회개하는 백성; 이스라엘과 그 이웃과의 평화; 여호와 앞에서 백성을 대표하며 여호와의 기별을 백성에게 전하며, 하나님은 모든 선의 근원이심을 상기시키는 신실한 사사. 에벤에셀에 세운 돌이 그 사실을 잘 말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삼상 7:12). (85.1)
 제7장의 이상(理想)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제8장의 시작하는 말 속에 그 이상은 꿈틀거리고 다시 깨치고 나온다: “사무엘이 늙으매 그 아들들로 이스라엘 사사를 삼으니”라(1절). 아들들을 사사로 삼았다고? 말도 안 된다. 위대한 사사들—드보라, 바락, 기드온, 삼손—의 권세는 세습되지 않았다. 그것은 여호와께로부터 왔다. 세습적인 제사장직도, 그 집이 “영원히” 설 것이라는 여호와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악함 때문에 단절될 수 있다. 엘리에게 물어보면 곧 알 것이다(삼상 2:27-36). 하물며 사사가 자기 권세를 아들들에게 물려주다니? 성경은 사무엘이 늙어서 이렇게 했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 아들들을 사사로 삼았다—악한 아들들이 악한 사사가 되었다. 백성들의 분노는 자극되었고, 그들은 악한 요구를 들고 사무엘에게로 왔다: 우리에게 왕을 주시오! (85.2)
 ■ 말씀에 들어감
 윤곽을 파악하기 위해 사무엘상 8-12장을 한눈에 읽으라. 그리고 왕권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읽어라. 왕권을 옹호하는 듯한 구절과 왕권을 반대하는 듯한 구절의 목록을 따로 만들고 간단히 제목을 붙이라. 간단한 한 문단으로 다음 질문에 답하라: 왕권은 좋은 생각인가, 나쁜 생각인가? 다른 말로: 왕권이 나쁜 것이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왜 용인하셨는가? (86.1)
 다음 질문들을 생각하면서 8장을 내용을 자세히 검토하라: (86.2)
 1. 하나님과 사무엘. 8장에서 하나님과 사무엘 사이의 상호작용을 요약하라. 누가 왕권에 대하여 더 심한 반대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독자의 대답의 증거는 무엇인가? (86.3)
 2. 왕권: 하나님의 뜻인가? 신명기 17:14-20에서 왕을 세울 때에 필요한 모세의 교훈을 읽고, 하나님과 사무엘이 백성들이 왕을 구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떠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무엘상 8장과 비교하라. 성경이 왕권을 반대한다면, 도대체 그 반대의 이유가 무엇인가? 이 두 구절은 어떤 면에서 일치하며, 또 어떤 면에서 서로 맞지 않는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86.4)
 3. 왕권: 도움인가, 방해인가? 사무엘상 8:11-18의 사무엘의 연설이 왕권의 어두운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사사기 21:25는 혼란의 치료책으로 왕을 꿈꾸고 있다. 사무엘의 연설을 숙고하고 부정적인 면을 상쇄시킬 이점들을 나열해 보라. 시편 72편이 이 목록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86.5)
 ■ 말씀을 탐구함
 그들에게 왕을 주라(8:1-22)
 8장은 이스라엘 역사의 고통스런 장을 열고 있다: 백성들이 왕을 원한다. 하나님과 사무엘은 그것을 악한 요구라고 여긴다. 비록 신명기 17:14-20에서는 이스라엘이 참으로 왕을 요구할 것이고 여호와께로부터 왕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가정하면서도. (87.1)
 일이 더 꼬이다보니 사무엘의 아들들의 규모 없는 생활이 사무엘 자신을 연루시켜 백성들의 요구가 부분적으로는 사무엘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처럼 되었다. 사무엘에 관한 이러한 교묘한 비판은 이 책의 이 부분에서 처음 나타난다. 사무엘의 아내는 언급된 적이 없지만 그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는 성경에 자리를 잡았고, 이스라엘의 중심지에 있는 사무엘의 고향 라마에서부터 남쪽 저 멀리에 있는 브엘세바의 사사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악을 사무엘의 고결성과 대조시키면서 그들은 좋은 사사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사무엘의 길을 따르지 아니하였”고(8:3, 5) “부정당한 이익을 좇았으며,” “뇌물을 받았고, 재판을 굽게 하였다”(3절). (87.2)
 그들의 행실이 백성들을 너무 격노시켜서 대표자들이 사무엘에게 와서 그의 아들들의 악한 행위를 공공연히 말하면서 왕을 요구하였다(5절). 몹시 기분이 상하여 사무엘은 여호와께 하소연하였다(6절). 이스라엘은 한번도 왕을 섬기지 않았고, 여호와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지도자이셨다. 사사들의 지도하에서, 입다처럼 대중의 요구에 따라 갈채받는 지도자라면 그의 소명은 성령의 특별한 부음으로 확정되어야만 하였다(삿 11:29). 주요한 사사들의 대부분이 같은 경우였다: 옷니엘(3:9, 10), 에훗(3:15); 바락(4:6); 기드온(6:11-16); 그리고 삼손(13:3-5). 만일 드보라(삿 4:4)와 작은 사사들(삼갈[3:1], 돌라[10:1, 2], 야일[10:3-5], 입산[12:8-10], 엘론[12:11, 12], 그리고 압돈[12:13-15])에 관하여 여호와의 특별한 임명이 언급되지 않았을지라도, 사사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라면(신 17:8-13을 보라) 권세가 절대로 세습되지 않았다. (87.3)
 사사 시대 동안에 신적 주도권의 원칙이 도전을 받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았다.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워 승리한 후에 백성들은 그의 가족을 왕의 가계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들은 말하였다: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삿 8:22). 그러나 기드온 자신은 이 생각을 반대하였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23절). 기드온은 위험스럽게도 우상 숭배에 가깝게 접근하였으며(24-27절), 거리낌없이 일부다처를 행했기(30, 31절) 때문에, 이스라엘을 위한 이상적 인물은 못되었지만, 그가 분명히 알고 있던 좋은 것 한 가지는 여호와만이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것이었다. (88.1)
 그러나 기드온의 70명의 아들들에게는 그들이 아버지의 권세를 물려받지 않은 사실이 그렇게 분명하지 못했던 모양이다(삿 9:2). 기드온의 첩들 중의 하나의 아들인 아비멜렉은 사실상 자신을 왕으로 선포하려고 시도하였으나, 그 자신과 그의 꿈은 속히 뭉그러지고 말았다(54-56절). 어쨌든 백성들이 왕을 구하려고 사무엘에게 왔을 때에, 그들은 그 요구를 지지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전통을 들먹일 수 없었다. 그 대신 그들은 그들 주위에 있는 국가들의 예를 들먹였다(삼상 8:5, 20). 그것이 문제였다. 얄궂게도 엘리와 사무엘이 자기 아들들로 그 뒤를 잇게 함으로 세습적 지도력을 반대하는 이스라엘의 전통을 파괴하는 일에 일조하기도 했다. 제사장직은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세습된다. 그러나 엘리와 사무엘이 제사장 겸 사사였기 때문에(4:18; 7:17), 그들이 자기 아들들로 그 뒤를 잇게 함으로 세습의 문제성을 가리게 된 것이다. 엘리가 자기 아들들을 사사로 세운 분명한 기록은 없지만 사무엘은 분명히 그렇게 하였고, 그 결과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이제 백성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왕을 원하였다. 그들은 주변 국가들과 같아지기를 원하였다. (88.2)
 왕을 요구한 것이 사무엘과 하나님을 불쾌하게 한 것은 신명기 17:14-20을 통해 볼 때에 난해하다. 왜냐하면 그 내용은 백성들이 그런 요구를 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유도 신명기를 반향하고 있다: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주변 나라들처럼 우리 위에 왕을 세우자’(신 17:14; 삼상 8:5, 19, 20과 비교)고 하였다. 그러나 “마음 상한” 사무엘이 백성들의 소원을 여호와께 아뢰었을 때, 여호와께서는 지체 없이 반응하셨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라”—그리고 바로 그것은 사무엘을 배척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배척한 것이라는 해석을 달아주셨다. 실로 평행 구조 속의 여호와의 반응은 그것이 이스라엘의 오래되고 계속되는 우상 숭배의 싸움의 새로운 국면일 따름이라고 암시한다: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8:8). 다시 말해서, 왕을 달라는 요구는 여호와를 배척한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우상 숭배와 같다는 뜻이다(10:19도 보라). (89.1)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은혜로우셨으며—사무엘보다 더 은혜로우셨다—그리고 백성들의 요구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셨다. 동시에 사무엘은 그 문제를 너무 개인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도 시사하셨다: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다”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8:7). 그러나 사무엘에 대한 여호와의 첫 말씀은 다음과 같은 명령이었다: 백성의 희망을 이루어 주라! “들으라!”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7절). 8:9에서 여호와는 그 명령을 다시 반복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여기 사용된 “들으라”는 말은 가장 유명한 유대인의 성구인 신명기 6:4셰마(Shemaʽ)의 시작하는 말과 같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 그 말은 “순종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말은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할 그 유명하고 운명적인 말 속에 들어 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15:22). (89.2)
 그러나 사무엘에게는 백성들의 말을 “순종하라”는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의 이중 명령에 반응하지 않았다. 8장의 대화의 끝에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세 번째 명령하셨다: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22절). 그러나 사무엘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백성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89.3)
 사무엘과 백성들 사이의 대화(10-20절)는 선지자와 백성들 양편이 다 여호와의 이상에서 떠났다는 인상을 남긴다. 만일 백성이 왕을 구함으로 그들의 잘못된 마음을 드러내었다면 사무엘은 자기의 아들들을 바로 교육하지 못함으로 그리고 그들에게 왕을 주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회피함으로 그의 마음을 드러내었다. (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