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출애굽기 제 II 부 하나님께서 구원(救援)하심 (출애굽기 3-18장) 제 3장 하나님께서 바로를 치심 (출애굽기 5:1-7:7)
 3. 출애굽기 6:6-8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놀라운 약속들을 주고 있는데 각 장의 시작을 「새국제역」에서는 I will이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다. I will로 시작되는 7가지의 특별한 약속들을 나열해 보고, 이 절들의 시작과 끝을 맺는 구절들을 잠시 생각해 보라. 이 구절들에서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왜 두 번이나 반복되었는지 생각해 보라. 이들 약속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은 어땠는가(9절)? 또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85.4)
 4. 출애굽기 6:14-27의 가계(家系)와 창세기 46:8-27의 가계를 비교해 보라. 왜 출애굽기의 가계는 몇몇의 이름을 빠뜨렸는가? 또 어떤 이름을 더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가계에 대한 서론과 결론에 특별히 주목하라. 이들 구절들이 가계의 이름들을 나열한 목적을 이해하는데 어떻게 도움을 주고 있는가? (85.5)
 5. 출애굽기 6:30-7:2에서 하나님께서는 보다 특별한 방법으로 당신께서 바로와 교통하실 방법을 설명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절차의 방법을 사용하고 계신가? 이 사실은 우리에게 예언의 성격에 대하여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하나님께 인간들과 교통하시는 방법에 관하여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86.1)
 6. 출애굽기 7:3, 4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출애굽기 4:21에 처음 등장하였다. 성서 색인을 사용하여 출애굽기에서 마음의 강퍅을 언급하는 모든 표현들을 찾아보라. 이러한 말을 언급하는 방법에 분명한 차이들이 있다. 이러한 차이들은 무엇인가? 또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바로를 대면하실 때 실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바로에게 자유로운 선택이 있었는가? 당신의 답변을 설명해 보라. 왜 성경은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여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인가? (86.2)
 ■ 말씀을 탐구함
 “이제(now)”
 의미심장하게도 1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되며 그분의 첫 말씀은 이제 또는 지금이다. 히브리어는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서두에 놓는데 이 단어는 히브리어뿐만 아니라 영어 번역에서도 문장의 서두로 시작된다. 이 단어의 뜻은 “바로 이 순간” 또는 “지금 이 시점”을 의미한다. (86.3)
 이 구절은 5장의 문제들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 책임을 가리는 여느 때와는 달리, 이제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하여 결정적인 역사를 행하시려고 하신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하셨지만 적어도 바로에 관한 그분의 계획은 정확한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히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6장의 서두에서 그분께서는 때가 되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87.1)
 뒤따르는 문맥 전체는 “이제”라는 단어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전에는 우리가 미래의 언약들을 가졌지만, 이제는 바로 지금 그 언약의 역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모세가 하나님의 시간표를 앞질러 행했을지 모르지만, 바로 이 순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제 바로에게 나아가라”라고 말씀하셨으며, 모세는 그 명령에 순종하였다(7:6). 하나님의 기별자들은 종종 바로 지금이라는 그분만의 거룩한 시간표를 앞질러 그분의 뜻을 이루려고 하지만, 모세는 바로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행하게 될 것이다. (87.2)
 이 구절들을 하나님께서 모세의 소명을 재 천명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공통된 몇 가지 점들이 내포되어있다는 점에서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문맥은 상이하다. 전에 우리는 모세의 사역과 부름에 관한 일반적인 언급들을 보았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의 시기와 즉각적인 실행을 요구하는 특별한 언급들을 보게 될 것이다. 특별한 상황에 적용되어질 자세한 추가적인 내용 또한 주어질 것이다. (87.3)
 하나님께서 역사하심
 모세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믿음의 조상들에게 전능의(el Shaddai 6:3 참조)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과 같이 여러 면에서 동일하게 나타나셨다. 창세기 17:1; 28:3; 35:11; 48:3 등은 하나님에 대한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비록 몇몇 학자들은 이 단어의 뜻을 “산”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단어가 하나님의 능력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이 경우, 이 단어의 뜻은 산의 정상과 같이 “견고”하고 “굳건”하며, 또는 “높은”것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출애굽기는 여기서 분명히 하나님에 관한 이 단어의 특징을 믿음의 조상 시대의 것으로 보고 있다. (87.4)
 이 하나님은 믿음의 부조들과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하셨던 하나님 또,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던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그분의 언약을 기억하고 계셨으며, 종살이하는 그들의 고통을 듣고 계셨다. (88.1)
 하지만, 여기에는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야훼라는 호칭으로 믿음의 부조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시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에게는 주(야훼) 하나님이 아닌 전능의 하나님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88.2)
 분명히 창세기에 나타난 부조들의 기사에는 야훼라는 하나님의 성호가 내포되어있다. 하지만 출애굽기는 우리로 하여금 창세기가 쓰여진 이후에 이 하나님의 성호가 출애굽 기사에 등장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원한다. 이 성호는 출애굽기 3:14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우리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본 장은 이 성호를 빈번히 사용하고 있다. 특별히 “나는 여호와로다”라는 구절을 강조하고 있다(6:2, 6, 8, 29). 본 장에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하실 모든 일로 “애굽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라는 7:5에서 최고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88.3)
 이러한 모든 사실들은 구약의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님의 성호가 진실로 애굽에서의 구원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무엇인가를 감추고 계신 분이 아니셨다. 그들은 출애굽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야훼로서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이러한 연유로 본 장에서 하나님의 성호가 강조되고, 6:6-8“내가 하리라(I will)”라는 일곱 번에 걸친 놀라운 약속을 이루게 되며 애굽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결론 부를 이루게 된다(7:5).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경이와 애굽을 심판하시는 권세로 야훼가 되신다. 이스라엘과 애굽 모두는 하나님과 출애굽의 경험을 통하여 그분 성호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성호를 부를 때 출애굽이 상징하는 인물들과 구원의 모든 기억들을 되살리게 된다. (88.4)
 노예 해방 선언으로 자유인이 된 노예들에게는 아브라함 링컨의 이름이 단순히 미합중국 대통령의 이름만으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속박가운데 종살이하던 노예들을 자유인이 되도록 한 그에 대한 사랑과 존경과 흠모를 일으키게 한다. 주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인의 선물을 받게 된 이스라엘 백성 또한 야훼라는 그분의 성호가 동일한 역할을 했다. 하나님께서 이제 이행하시기로 약속하신 것들을 생각해 보자(6:6-8): (89.1)
*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며
*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 내가 그 땅을 너희에게로 주리라
(89.2)
 하나님께서는 “나는 여호와로다”라는 단호한 약속으로 끝을 맺으며 언약의 이행을 서약하신다. (89.3)
 나는 오늘날도 동일하신 하나님이 종살이와 같은 우리의 삶 속에 그분께 부르짖는 자들을 위하여 이스라엘에게 행하셨던 똑같은 역사를 기꺼이 행하시는 살아 계신 선하신 분이심을 믿고 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마음이 너무나 피폐하였고 역사가 혹독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놀라운 기별에 귀 기울이거나 응답할 수가 없었다(6:9).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출애굽의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운 선물에 반응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한 언약들을 들을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능력의 실체가 필요하며,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강한 믿음으로 어떤 난관에도 전진할 줄 아는 모세와 같은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8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