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하나님을 시험한 광야의 세대들에게는 뜻밖에도 홍해와 가나안 땅 사이에 시험과 엎드러짐의 40년 광야가 펼쳐지고 그 광야 끝에 또 하나의 홍해인 요단강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시험하는 세대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종은
“다시 예언하여야 했던”(
계 10:11) 것이다. 순례를
“다시” 해야 한다고 예언해야 했다. 제2의 애굽 생활과 제2의 홍해 횡단을 예언해야 했다. 대제사장이
“다시” 봉사해야 한다고 예언해야 했다. 대제사장의 둘째 성소 봉사를 예언해야 했다.
“다시” 봉사하는 두 번째 성소가 가장 거룩한 성소가 되고,
“다 이루는” 성소가 되는 경험을 예언해야 했다.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이 진정한 오심이 되고, 완전한 오심이 되는 경험을 예언해야 했다.
“한번 더”의 경험으로 구원의
“다 이룸”에 이른다는 예언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번 더”가
“끝이 오는”(
마 24:14) 경지이며,
“끝까지 견디는”(
마 24:15) 경지이며, 진실로 우리의 구원을
“끝내고 다 이루는”(
요 19:30) 차원임을 예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시 한번”이 제칠일의 차원에서 안식일의 차원으로 올라가는 삶이 된다는 것을 예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번 더”의 차원이 죄인이 회개하여 의인이 되는 거듭남의 차원이며, 죽음에서 삶으로 옮아가는 부활의 차원인 것을 예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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