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다니엘서 연구 다니엘 2장 하나님과 세상의 미래 II. 점성가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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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이 이른 아침의 찬송 예배를 마치자마자 제일 먼저 사형 집행인인 아리옥을 찾아가 박사들의 안전을 확보한 사실은 이 기사를 읽는 이들의 마음을 뜨겁게 한다. “왕립 한림원”“그리스도인 학생”이었던 그는 재학 기간에 불쾌한 조롱들을 수없이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의 이 기사에는 그가 가혹한 마음을 품고 있다든가 또는 “그 죄인들이 받아 마땅한 벌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구나”라는 식의 자기 중심적 판단을 하고 있었다는 흔적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다니엘은 진실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친화적인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마음이 민첩”한(정신이 놀라운) 사람이라 하였다(단 6:3). (39.1)
 그러나, 이 같은 다니엘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에게 계시를 허락하시지 않았던들 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왕이 원하는 것을 다니엘에게 알려 주심으로써 다니엘의 생명뿐만 아니라 모든 박사들의 생명까지 건져 주셨던 것이다. 필자는 하나님 이 박사들을 사랑하셨다고 생각하고 싶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밤 자정에 기적적으로 사도 바울을 감옥에서 풀려나게 하심으로써 다른 좌수들까지 감옥에서 풀려나게 하셨다(행 16:25, 26). 하나님은 파선당한 배에서 바울을 구조하실 때 선원들까지 모두 구조해 주셨다(행 27:21-25). 하나님은 성도들뿐만 아니라 죄인들까진 사랑하고 계시다. (39.2)
 그러나, 하나님은 박사들에게 사랑을 나타내 주시면서 동시에 그들의 치명적인 과오도 밝혀 주셨다. 느부갓네살 궁전에서 당했던 그들의 난처한 경험은 그들이 공언해 온 전문적 지식의 파산을 선고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서구(西歡)에서 점성술이 크게 부흥하고 있다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3 이들의 파산적인 경험에 대한 이 보고가 우리에게는 실로중요한 뜻을 갖게 한다. 오늘날 구미(歌美)의 여러 나라에서는 천궁도(天宮圖)와 그 밖의 점성술이 대중 잡지와 수많은 일간 신문들에 실려 나오고 있다. 1970년 대 말에 나온 추산에 따르면, 미국에만 1만여 명의 전문적 점성가들과 17만 5천 명의 부업 점성가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 수자는 미국 최대의 개신교단인 남침례교회의 전체 안수 목사 4만 명을 크게 능가하는 것이다. (39.3)
 만약에, 미국에 느부갓네살 같은 전제 군주가 있어 그의 박사들 점성가들을 호출했다면, 그의 궁전은 초만원 사태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40.1)
 하나님은 점성가들과 그 외의 여러 박사들을 사랑하셨으므로 그들의 과오를 나타내 주셨다. 하나님이 행하신 행위의 모든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사람들을 간단히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고도의 훈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외견상으로는 선한 동기를 가지고 있던 그들은 신들의 뜻을 밝혀 내는 책임을 지고 있었다. 박사들은(단 2:2) 신들을 위무(慰施)하기 위해 훈련을 받는 자들이며, 술객(magiciam)들과(단 2:2) 마귀들을 쫓아내어 백성들을 보호하는 자들이었다. 점성가들(단 2:27)은 징조를 해석하여 미래를 예언하였다.4 이 밖에도 바벨론 제국의 지배 인종 집단을 구성하고 있던 갈대아인들(단 2:2)이 여러 가지 봉사에 종사하였다5(바벨론은 때때로 갈대아 인의 땅으로 일컬어졌다(렘 25:13). (40.2)
 전체 박사 집단은 자신들을 학자와 과학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백성들의 생활 속에 발생되는 모든 사건들은 비록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자연의 힘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자연의 원리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과거의 실패를 설명할 수 있고 현재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으며 미래의 성공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들은 바람직한 목표들이 아닐 수 없다. (40.3)
 자연을 이해하기 위하여, 박사들은 수많은 관찰 경험을 쌓았다. 그들은 양이나 염소의 간(肝)이나 새들의 날으는 상태, 그릇에 떨어뜨린 기름의 형태, 석양의 구름 모양, 새벽 하늘의 빛깔 같은 것을 연구하였다. 그들은 꿈을 신(神)들로부터의 직접적인 교신(交信)으로 생각하였다. 백성들은 그들의 특별한 연구 대상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수많은 관찰 기록을 점토판 위에 고생스럽게 기록하여, 계속적인 전문 연구에 필요한 자료로 사용하였다. (40.4)
 우리는 그들 박사들을 과학적인 의도를 가진 자들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들의 천문학적인 관찰과 계산들은 우리들의 경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양의 간엽(肝葉)과 군사 작전의 성공 사이에, 또는 날짐승들의 날개 치는 동작과 계획 중인 사업의 결과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의 과학은 그 놀라운 정교성에도 불구하고 미신에 불과한 경우가 흔했다. (40.5)
 현대 점성술이라고 해서 더 나을 것이 없다. 이것도 역시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현상이 우리의 운명을 지배한다는 가설 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교묘하고 심오하다고 해도, 이것 또한 미신인 것이다. 신랑의 출생시에 나타난 몇몇 성좌의 배치와 그 신랑의 결혼 생활의 행복 여부는 사실상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현대의 천궁도라고 해서 고대의 기름 방울이 퍼지는 모양보다 더 나은 지침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몇 가지 면에서 현대 점성술이 고대 점성술보다도 더 비과학적이다. 현대 점성가들은 12궁도에 있는 성좌의 배치에 근거하여 예언하고 있지만, 이 12궁도는 주후 2세기의 천문학자 클라우디우스 프톨레 마우스(Claudius Ptolemaus) 그 때의 별자리들을 관찰한 것으로서, 오늘날의 별자리들과는 위치가 사뭇 다르다. 다시 말해서, 2세기 이후의 “주야 평분시의 세차(歲差)로 말미암아 현재 누가 천칭궁에서 태어났다 하면 실지로 그 사람이 태어난 별자리는 처녀궁이라야 맞다는 것이다(주야 평분시 歲差:해와 달의 인력으로 말미암아 남극과 북극이 약간 뒤틀려졌고, 그 결과 태양은 매년 성좌와 관련하여 서쪽으로 더 느리게 움직인다). 다시 말해서, 현대 점성가들은 마치 우리가 1,700년 전에 태어났을 때 나타났을 것으로 가상되는 별자리에 따라 우리의 운수를 헤아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6 현대 점성술은 사용되고 있는 세부적인 과학 용어들에 관계 없이 건전한 천문학적 기초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40.6)
 뿐만 아니라, 점성술의 예언들도, 관찰할 수 있는 증거에 의하여 뒷받침을 받고 있지 않다. (40.7)
 점성술에 의하면, 백양궁(白羊宮)과 천갈궁(天獻宮)은 무인(武人)의 궁이라 한다. 그러나, 미국에 있는 154,000명의 해병대 입대자 명부를 철저히 조사한 결과 백양궁과 천갈궁을 타고난 사람들이 이른바 평화 애호의 천칭궁을 타고난 사람보다 군인 생활에 더 적격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점성술에 의하면, 천칭궁을 타고난 사람들은 음악가나 화가가 될 것이라 하는데, 2,000명의 예술가들을 조사해 본 결과, 그 주장은 맞지 않았다.7 (41.1)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떤 형태의 미신을 일단 믿고 나면, 그것을 떨쳐 버리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 검은 고양이나 깨어진 거울이나 혹성의 위치가 미신을 믿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부모들이 처음부터 아이들을 미신으로부터 방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단지 점성술은 미신이라고 열심히 이야기만 한다면 오히려 그들의 호기심만 자극할 위험도 있는 것이다. 그보다는 다니엘 2장에 나오는 하나님과 박사들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41.2)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라는 시편의 기사를 아이들에게 암기시키도록 하자(시 31:14, 15).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은 미신적인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고 가르치자. 다윗처럼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하고 노래하게 하자(시 27:1).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진대, 우리의 생명은 자연의 힘에 포로로 붙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 안전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저희 (그의 자녀들)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요 10:28). 다니엘 시대의 박사들은 정직한 사람들이었을지 모르며 분명히 잘 훈련받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 류의 과학을 신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사야는 다음과같이 그들을 비웃고 있다. (41.3)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와
월삭을 예고하는 자들로 일어나
네게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케 하여 보라 그들은 초개 같아서 불에 타리니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치 못할 것이라(사 47:13, 14).
(41.4)
 분명히, 바벨론의 점성가들은 느부갓네살 왕의 진노에서 자신들을 구원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다니엘을 시켜 그들을 구원해 주셨다. 그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이 바른 길로 돌이키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또한 우리를 사랑하셨으므로 그렇게 하셨다. 그분은 우리가, 점성가들의 허망한 예언이 아니라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령한 예언 위에 우리의 신뢰를 두기를 원하신다.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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