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모든 반역의 역사와 잦은 회개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목적은 그리스도께서 계속 오시기까지 남아 있었다. 유대 역사는 전반적으로 메시야의 오심과 함께 하는 구속사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켰다. 그들은 거룩한 뜻을 거스렸다. 그들은 거룩한 음성을 불순종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1,500년 동안 율법으로, 복음으로, 언약으로, 심판으로 그분의 목적을 실현시키고자 하셨다. (139.3)
 70 연주의 예언은 유대인들과 함께 그들을 통하여 그분의 목적을 이루려는 하나님의 마지막 노력을 선포한다. 칠십 주일은 그 절정이었다. 하나님께서 그 예언의 마지막 주간 동안에 그분의 아들 안에서 이루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이 1 주[-년] 즉 A.D. 27년으로부터 34 년까지 일어날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139.4)
허물이 마침,
최가 끝남,
죄악이 영속(永續)됨,
영원한 의가 드러남,
이상과 예언이 응함,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음.(단 9:24 참고).
(139.5)
 처음 셋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포함하며, 넷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생애 안에서의 의의 선물이며, 다섯째는 이상과 예언에 인을 치는 것, 즉 특별히 70주일 예언을 확고히 하며 그것을 참되고 진실한 것으로 확증하는 것이다. 마지막 것은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이다. 모든 이러한 사건들은 메시야적 희망에 속해 있으며,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가운데 실현되었다. 분명하게도 포로에서 유대인들이 돌아오는 것은 예언의 성취의 시작이었다. 70 주일은 한 나라로서 유대 역사의 절정이었다. 이것은 그들의 보응의 날이었다. (139.6)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나?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 하여 버린바 되리라(마 23:37, 38).
(140.1)
 유대인들의 최고의 비극은 그리스도를 거절한 것과 사람들에 대한 빛의 역할과 구원을 위한 봉사자가 되기를 거부한 데 있었다. 세상의 구주께서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셨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 하시기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 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요 4:22). 유대 백성들은 이 날과 왕과 구세주를 고대하여 왔었다. 그분이 오셨을 때, 지도자들은 고의적으로 그가 그들이 원하던 메시야와 왕이 아니라고 자신들의 눈을 감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못박았다. 그리스도를 떠나서, 거룩한 경륜 안에 아무런 장래를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490 년이 지적하는 중심 진리였기 때문이다. 그분을 떠나서 그들은 하나님의 지식을 교통하며 세상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더 이상 아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 그 정교한 종교적 의식과 주의 깊이 이루어진 예식이 있었던 예루살렘에서의 지상 성소는 아무런 목적을 갖지 못하였다. 이것이 유대인들에 대한 구원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할 때 이것을 확인하였다: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 이제도 이와 같이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2-5), 유대인들이 돌이켜 그리스도를 주(主)와 구주로 인정하게 된다면, 그들은 세상에 제시할 한 증거를 가지게 된다. (140.2)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고후 3:14-16).
(140.3)
 최종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70 연주(年週)의 끝에 나라로서의 이스라엘뿐 아니라 지상 성소도 포함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었다. (141.1)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 또 강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단 9:26, 27).
(141.2)
 우리 주님이 친히 자신의 제자들에게 36년 전에 다가오는 재앙인 예루살렘의 임박한 멸망에 대해 경고하셨다. 그들은 도시에서 피하여야 하였다. 그들은 거룩한 심판의 시간을 알아야만 하였다. (141.3)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 24:15-20).
(141.4)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서 거절한 것과 그분의 제자들에 의해 선포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그들의 거부의 결과로 유대인들은 로마인들이 통치 아래 최종적 심판에 종속되게 되었다. A.D. 66년에 그들은 로마의 통치자들을 향해 반란을 일으켰다. 예루살렘은 A.D. 70 년에 멸망했다.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지상 성소의 봉사는 더 이상 없었다. A.D. 132년에 다시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들은 야만적인 잔인성에 의해 진압되었고 거의 쓸어 버림을 당했다. 모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추방당했고, 수만의 사람들은 제국 전역을 통하여 노예로 팔렸다. 이러한 반란들은 나라로서의 그들의 종말을 이끌었다. (141.5)
만일 백성들이 그분을 받아들였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국가의 운명을 돌이키실 수가 있으셨다. 그러나 시기와 질투는 그들을 완고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나사렛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세상의 빛을 거절했으며, 따라서 그들의 생애는 밤중의 흑암 같은 어두움으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유대 국가에 임하리라 예언된 운명은 ∙∙∙ 그들의 반역적이고 완고한 자만은 로마의 정복자들의 진노를 그들에게 가져왔다. 예루살렘은 멸망되었고, 성전은 황폐화되었고, 그 자리는 들판처럼 황무해졌다. ∙∙∙ . 택한 국가로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상에 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목적을 그분께서는 오늘 지상에 그분의 교회를 통하여 최종적으로 성취하실 것이다.(선지자와 왕, 712, 713).
(141.6)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음”
 400년간의 사건들의 결말로서 거룩한 성소와 관련하여 이 예언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유대인의 지상 성소에 관하여는,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단 9:27). 동시에 그 구절은 70 주일 동안에 그리스도 사역의 마지막 국면으로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을 것”을 선포하고 있다(24절). 여기서 “지극히 거룩한”이라고 사용된 히브리어 표현은 코데쉬 코다쉽(qodesh qodashim)인데, 복수 형태의 의미는 “거룩한 장소들”이다. 구약을 통하여 그 표현은 회막의 성소와 지성소의 여러 국면을 언급하였다(출 29:30, 36; 30:25-38, 40:9-15; 레 8:1-12; 겔 43:12). 틀림없이 그것은 성소의 내부 성전을 언급하는 것이다. 에스겔은 거룩한 성전에 대해 말하면서 그것은 거룩한 것 중의 거룩한 것이라 하였다(43:12; 45:3; 48:12). 그 구절은 구약에 44번 나타나며 성소의 장소에 모든 곳을 언급하며, 사람이나 사람들을 의미하지 않았다. 역대상 23:13은 유일한 예외로 다루어진다. 그러나 이것을 다니엘서의 구절이 그리스도 자신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의 기초로서 다른 43개 구절과는 다른 이 의심스러운 한 구절을 사용하는 것은 빈약한 주석이다. (142.1)
 기름붓다(anoint)라는 단어는 거룩한 기름을 물질적으로 붓는 것을 의미할 수 있으며 또 다른 뜻은 하나님의 봉사에 성소를 헌납하고 바치는 사상으로서의 영적인 기름부음이다. 지상 성소의 기름부음은 성소에서의 제사장 봉사를 시작하려 할 때 행해지는 의식이다. 어떠한 봉사나 희생도 성소의 그 모든 부분과 제사장이 기름 부음을 받을 때 까지는 시작할 수 없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일에 특별한 헌신의 행위로 구별하는 것이다. (142.2)
 성소의 건축을 위해 자세한 사실이 주어진 후에, 봉사가 시작되기 전에, 기름부음이 이렇게 묘사되었다. (143.1)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준공하여 ∙∙∙ 모세가 그 필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출 39:32-43).
(143.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정월 초일일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 또 관유를 취하여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 ∙∙∙ 너는 또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 그 아비에게 기름부음 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출 40:1-15; 참고 레 8:10-12). (143.3)
 다니엘은 70 주일 안에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곳을 기름 부으실 것이라는 것을 선언했다. 예루살렘의 지상 성소는 이제 막 끝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제사장 봉사를 시작하기 전에 기름 부어지고 바쳐질 성소는 다름 아닌 하늘에 있는 성소였다. (1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