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의 결혼 언약 제 2 장 결혼 언약의 삶 1. 결혼 언약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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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의 기초
 결혼은 마치 집과 같아서 그것이 지속되려면 굳건한 기초가 필요하다. 절대적이고 상호적인 언약에 놓여진 결혼의 기초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결혼 언약을 깨려는 어떤 외적이거나 내적인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결혼으로 우리의 생애를 연합하셨다는 결혼 언약과 확신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은 우 리의 결혼이 심지어 “불행할” 경우가 있을 때라도 우리를 함께 살게 하실 수 있는 분으로 믿게 하는 좋은 이유이다. 이 결혼 언약이야말로 심지어 우리의 필요가 성취되지 못하고 우리의 관계가 메마르고 위험에 처할지라도, 우리의 결혼의 성공을 위하여 다시 노력할 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도록 하는 동기가 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결혼에 종종 부족한 것은 바로 이 언약의 기초이다. 스티븐스(Paul Stevens)는 이 점을 예리하게 관찰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결혼에 빠져 있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결혼의 핵심인 바로 언약이다. 이것은 마치 모든 것이 연결되는 건축물과도 같다. 서로간의 기대들을 이해함, 훌륭한 교제술의 발전, 다툼을 해결하는 기술, 적절한 역할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듦, 우리의 결혼을 재미있고 자유롭게 함, 영적 친구가 되거나 봉사를 나누어 담당함 등, 이와 같은 것들은 벽돌, 지붕, 전선, 배관과 열 관리 등에 해당한다. 그것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기초가 된다. 그러나 기초가 없다면 건물 전체가 무너질 것이 당연하다.”1 (51.1)
 결혼에 대한 안정과 영원을 확고히 하는 기초는 서로를 “행복할 때에든지 불행할 때에든지” 부부를 하나로 연합시키는 상호의 언약이다. 이와 같은 성서적 개념은 너무도 빨리 구식이 되고 낯 설은 개념으로 여겨진다. 결혼한 부부들이 결혼을 시한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죽음이 우리를 나눌 때까지” 라고 약속한 것을 “불화나 다른 관심들이 우리를 나눌 때까지”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51.2)
 결혼의 기초에 대한 이런 사회적 경향의 생각들을 퇴치하기 위하여, 우리는 신성하고 영원한 언약으로서 성서의 개념을 찾고 재확인해야 한다. 우리의 영원한 언약을 결혼식날뿐만 아니라 일생을 통하여 주기적으로(특별히 결혼 기념일이나 생일에) 서로에게 선언하는 것은 결혼 언약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52.1)
 결혼 언약은 남녀로 하여금 영원한 관계를 갖게 하되, 마치 감옥 속에 밀쳐 넣고 잠그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스티븐스의 말대로 그것은 차라리 “두 마음 사이의 탄력성 있는 연결이다. 떨어지려고 할 때 잡아당기는 흡인력은 서로가 함께 속한 사실을 상기시 킨다. 혹은 언약은 곡예사의 밑에 있는 그물이다. 곡예는 높은 곳에서 줄을 타는 묘기이고 위험한 일이니, 의심할 것 없이 그들은 때때로 떨어진다. 그러나 안전한 그물이 그들을 받치고 있다.”2 (52.2)
 믿음의 언약
 결혼 언약은 믿음의 언약인데 그것은 어느 그리스도인 배우자도 그들의 결혼이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배우자들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그들 스스로 엄숙하게 서약을 했든지 혹은 안 했든지, 그들이 일생을 사는 동안 서로가 함께 속한 일생의 언약의 짝이라는 사실이다. 이 언약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나누는 배우자들의 공동 믿음과 결혼 생활에 당신의 목적을 이루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서로 같은 믿음을 나누는 것은 심지어 희망이 없어 보이는 숙명의 순간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혼 생활을 도우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게 하는 용기를 준다. (52.3)
 결혼을 심사숙고하는 그리스도인 부부들은 그들이 평생의 결혼 언약에 완전하고 자유롭게 들어가도록 준비했느냐 안했느냐를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적합성보다 언약의 양립성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서로의 그리고 강한 언약의 서약이 존재할 때 결혼 생활에서의 문제 역시 해결 가능성을 갖는다. 언약적 결혼은 노력 없이 완전해질 수 없다. 그대의 배우자에 대한 전적인 헌신이 스트레스, 눈물, 불화, 성화, 짜증, 그리고 다툼 등의 가능성을, 그것들이 나쁜 소식일지라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쁜 소식은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하지 못할 다툼거리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서로에게 온전히 헌신한 부부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령의 능력으로 문제점을 해결할 일치점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하신다는 확신 안에서 쉼을 얻을 수 있다. (53.1)
 오늘날 배우자들에게 언약의 서약을 하지 않고 법적으로만 결혼 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법적 결혼이 이루어졌을 때 어떤 사람들에게는 평생의 언약의 서약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졌다는 느낌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아마도 마지막 선택으로 이혼을 선택해야지 하는 생각을 갖는 자도 있을 것이다. “죽음이 우리를 나눌 때까지” 서로 신실할 것을 약속하는 대신에 그들은 “둘이 서로 사랑하는 한” 함께 살기를 약속한다. (53.2)
 결혼 언약에 들어가는 데 실패한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비록 훌륭한 결혼 생활을 경험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언약을 맺어야 할 시간은 지금이다. 결혼 언약을 세우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그대의 배우자에 대한 헌신에 금이 간 것을 말한다. 마치 실금같이 작은 금도 결혼을 비참하게 망치게 하는 불길한 힘으로 크게 작용할 수도 있다. 그와 같은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시고 보증하신 평생의 신성한 언약으로서 결혼의 성서적인 이해를 갖고 다시 확고히 해야 한다. (53.3)
 위협받는 언약
 오늘날 주된 사회적 분위기는 신성한 언약으로서 결혼에 대한 성서적 개념을 시민법에 의하여 정의를 내리고, 배우자의 기대를 더 이상 충족시킬 수 없을 때에는 끝장을 내는 임시적인 사회의 계약을 따르면서 성경의 견해를 사실상 깎아 내리고자 한다. (54.1)
 세속주의는 결혼을 포함하여 생애의 여러 면의 신성성을 손상케 하는 원인이 된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날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 인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평안을 구하는 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개인의 쾌락과 이익을 추구하는 날로 더 이상 “성일”로 여겨지지 아니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생명은 더 이상 신성한 것이 아닌데 미국만 하더라도 매년 대개 150만 명 이상이 유산되며 그 외에도 부지 중의 죄와 약물과 범죄로 각처에서 죽어가는 자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다. 비슷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결혼을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증거되고 보증된 평생의 거룩한 언약이 더 이상 아니라 단지 국가법에 의한 임시적 사회계약으로 간주한다. (54.2)
 인간주의는 결혼은 거룩한 제도가 아닌 인간의 제도라고 가르친다. 그 기능은 사람들의 사회적, 성적, 감정적, 그리고 재정적 필요를 채우는 것이다. 따라서 필요를 더 이상 채울 수 없을 때, 결혼 계약은 법적으로 끝나게 된다. (54.3)
 이기주의는 사람들에게 자기 성취, 자아 만족, 그리고 자기 발달의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만약 결혼이 자기 실현의 거침돌이 된다면 그것은 해체되어야 한다. 펄스(Fritz Peris)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나의 일을, 너는 너의 일을 한다. 나는 너의 기대를 채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살고 있지 않으며 너도 나의 기대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만약 어떤 횡재를 만난다면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3 (54.4)
 관계주의는 도덕적 쟁점으로 인하여 결혼 관계를 파기하고 다른 새로운 관계를 갖기 쉽도록 조장한다. 인간주의와 관계주의의 유산은 변호사들이 “모든 법적 비용과 수고비를 포함하여 한 장도 안 되는 값임”이라고 광고하여 그저 1백 불 미만의 돈으로도 결혼을 쉽게 파약할 수 있는 소위 “무결점” 이혼법이다. 오! 결혼을 얼마나 값싸게 말한 슬픈 변명인가! 하나님께서 결합시키신 것이 일회 법정요금으로 깨어질 수 있단 말인가! (55.1)
 결혼 언약을 편안한 임시 관계로 축소 변형하며 파기하기 위하여 음모하는 여러 사회적 세력을 저지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친히 증인이 되시고 보증하신 일생의, 신성한 결혼으로서의 성서적 이해를 찾고 다시 확고히 해야 한다. 결혼 언약을 어떻게 영위하는가에 대한 더욱 완전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먼저 서약의 성질, 그리고 결혼 언약의 십계명을 살펴보자.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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