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적 언약신학 제 4 장 다윗 언약
 시편 110편은 모든 악을 물리치는 메시아의 왕적 승리(1, 2, 5-7절) 외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4절)는 메시아의 제사장직도 예언한다. 신약은 시편 110편을 33번 언급한다. 이로 인해 시편 110 편은 그리스도인 언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시편이 되었다.4 예수께서는 시편 110편을 직접적인 메시아 예언의 근거로 활용하셨다. 왜냐하면 그 시는 “야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1절)에서 나타나듯이 두 분의 하늘의 “주”를 묘사하기 때문이다. (65.2)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 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마 22:45)고 물었다. 이것은 요한복음 1:14(“말씀이 육신이 되어”)에서 진술된 것처럼 오직 성육신의 개념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의 부활과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는 하늘의 즉위를 통해 예수께서는 다윗의 자손이시며 동시에 그의 주이시다(마 22:41-45 참조). 부활하신 주 예수는 이제 메시아로서 그의 제사장 직무에 들어갔다(히 1:3; 5:5, 6 참조). 이 메시아적 성취의 의미는 그 결과가 멀리 미친다. (65.3)
 예루살렘의 시온산에 있는 그들의 보좌에서 통치한 다윗 가문의 왕들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대표하도록 기름부음을 받았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야훼께서 주신 위(位)에”(대상 29:23) 앉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메시아 자신이 회복된 낙원에서 모든 인류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면서 공의와 화평으로 언약의 백성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백성들을 다스릴 것이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 메시아의 통치를 의상적인 용어들로 묘사하였다. (66.1)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사 19:6-7).
(66.2)
 그는 백성들이 짐승 가운데 평화롭게 거닐 것이라고 하였다(사 11:1-11). 이는 낙원을 상기시키는 전례 없는 표현이다. 이사야는 이런 생생한 언어로 다윗 가 메시아의 새 왕국을 묘사한다. (66.3)
 가브리엘 천사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다윗 언약의 모든 차원을 성취할 것이다.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2-33).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부활하신 예수를 이제 “주와 그리스도”(행 2:36)로 높이셨다고 확언했다. 베드로는 하늘에서 그리스도가 하늘에 즉위한 것은 그분이 오늘날 은혜의 왕국에서 다스리는 것이므로 현재 시편 110편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시편 110편의 미래의 묵시적 완성은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1절)는 거룩한 신탁에 집중된다. 시편 110편시편 2편의 주제를 반복한다. 두 시편은 우주적인 선악의 쟁투, 곧 야훼의 심판과 승리의 날에 그 정점에 이를 그 쟁투를 다루고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원수 중에서 다스리”(2절)게 되리라고 보증한다. (66.4)
 바울도 그리스도의 통치가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시편 2편과 110편의 예언적 전망에 기초하였다.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고전 15:25-27). 그러므로 사도들의 복음의 소망은 다윗 언약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 언약이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에 대한 사도들의 복음 선포의 기초를 이루었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 예수가 지금 보좌에 앉으신 것을 그의 영원한 세상 통치의 전주곡으로 보았다. (67.1)
 끝으로 요한계시록은 12-20장에서 왕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모든 악이 타도되는 마지막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요한은 16:13-16에 나오는 “아마겟돈”이라는 정치적 전쟁의 종교적 성격을 반복하여 강조하며 분명히 한다.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계 17:14). (67.2)
 그리고 다시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계 19:14-16).5 분명히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의 지상(至上) 왕권을 다윗 언약과 특별히 왕의 시들에 대한 결정적인 성취로 간주한다(계 19:15; 시 2:9). (67.3)
 메시아적 성취
 신약의 복음적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아담, 노아, 아브라함, 이스라엘 그리고 다윗과 맺은 각 언약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구속의 언약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만일 구속의 언약에 참여하는 것은, 특히 다윗 언약이 규정한 것처럼, 하나님의 계명에 완전히 순종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한 백성을 그에게로 구속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안전하게 실현될 수 있는가? (68.1)
 여기서 참 메시아의 “보증”만이 하나님의 언약을 위반한 자들에게 구속을 제공할 수 있음이 분명해진다. 그는 순결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백성의 죄책과 형벌을 그 자신에게로 돌릴 것이다(사 53:9 참조). 그는 어떤 사람도 얻을 수 없는 것 곧 하나님의 뜻의 영원한 목적(사 53:10)을 보장하신다. 이 목적은 베드로가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벧전 1:20; 계 13:8 비교)다고 기록한 것처럼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약속된 것이다. (68.2)
 예수께서는 믿음의 시험에서 충성스러운 다윗의 아들과 아브라 함의 아들임이 입증되었다. 그는 언약의 모든 조건들을 이루셨다. 그의 완전한 순종 안에서 우리는 구원에 대한 보증을 갖게 되었다.(롬 5:19 참조). 그는 첫째 아담이 실패한 믿음과 순종의 시험에서 승리하심으로 “둘째” 아담의 역할을 성취하셨다. 신약은 다음과 같이 확인한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의 “경외하는 복종”을 통해 그리스도는 구속받은 인류의 “근원”이 되셨다. (68.3)
 그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그의 제자로 부르신다. 그리하여 그들 속에 메시아적 기쁨이 있게 하신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0-11). (69.1)
 그는 우리가 구원의 기쁨과 확신 속에 하나님과 승리하는 언약의 동행을 위한 우리의 지명 받은 대표자이시며 모본이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께서 깨닫고 사신대로 믿음의 순종에 이르라는 소명을 받는다. 그리스도는 나누어질 수 없는 한 인격체로서 우리의 구원자이며 동시에 우리의 주이시다. (69.2)
 아담도 낙원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의 명령에 순종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자기 생명을 잃을 것이었다. 아브라함 언약에서 할례 받지 않은 남자는 끊어짐을 받았다. 모세 언약에서 불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없었다. 다윗 가문의 통치에서 악한 왕은 매로 맞았다. 각각의 언약에서 축복은 신실한 자들에게 약속되었다. 오직 이 믿음과 순종의 조건이 성취될 때에만 축복이 온전히 실행될 것이었다(레 26장; 신 28장; 히 4장; 11장 참조). (69.3)
 그리스도인들은 그들도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고 말씀하신 그들의 구주께 순종하라는 소명을 받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그러나 그런 순종은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큰 구원에 대한 심원한 이해와 감사가 있을 때에만 마음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다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하셨다. 이제 우리는 존 브라이트와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된다. (69.4)
그러므로 고대의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늘 균형을 잡고 살아야 한다. 그 균형은 은혜와 의무 곧 우리에게 제공된 무조건적인 그리스도의 은혜, 그것을 믿도록 우리에게 권유된 그분의 무조건적인 선물 그리고 교회의 최고의 주님이신 그분께 순종할 의무 사이에서 잡아야 할 균형이다.6
(70.1)
 참고문헌
 1 Kaiser, Forward an Old Testament Theology, 155.

 2 시편 46편 전제를 다룬 연구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LaRondelle, Deliverance in the Psalms (Berrien Springs, M: First Impressions, 1983), 137-46. Also H. C. Leupold, Exposition of Psalms (Grand Rapids, MI: Baker, 1979); A. Weiser, The Psalms: A Commentary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2).

 3 Robertson, The Christ of the Covenants, 241.

 4 시편 110편에 대한 자세한 주석을 위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LaRondelle, Deliverance in the Psalms, 195-206.

 5 요한계시록 16-19장의 아마겟돈 문제를 더 깊이 다룬 연구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Hans K. LaRondelle, Chariots of Salvation: The Biblical Drama of Ammageddon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1986), 6-8장. 역자 주, 이 책은 1994년 안교신에 의해 번역되어 기독교문서선교회에서 출판되었다.

 6 John Bright, Covenant and Promise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76), 198. (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