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일보다 제8일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예언문학서, 성경, 철학, 천연계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논증들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일요일 준수의 정당성이 안식일을 준수하는 몇몇 중요한 기독교 집단들로부터 계속적으로 도전받고 있었음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98) 하지만 그 두 날들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제8일에 대한 상징적 의미는 효과적인 변증적 고안물로 제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몇 가지 이유에서 일요일을 정당화시켜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요일은 종말적 제8일로 제시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과 종말적 유대인 그리스도인 단체들에게서 그 날은 단지 일곱 번째 세속적 천년기를 의미했던 안식일보다 우월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징으로 옹호되어질 수 있었다. 영지적인 제8일로서, 일요일은 영적인 존재자들이 천상계를 초월한 영원한 세계에서 누리는 안식일을 의미할 수 있었는데, 그 세계는 이 유한한 세상의 일곱 날의 의미를 초월한 것이었다. 구약성서의 몇몇 내용들(8일 만에 받는 할례, 홍수로부터 구원받은 여덟 영혼들, 모든 산을 뒤덮은 15큐빗(7+8)의 물,
시편 6장과
12장의 타이틀에 나타나는
“제8일을 위하여,” 즉
‘스미닛’ 이라는 표현들, 열다섯 개의 점진적인 성가들,
전도서 11:2나 다른 곳에서 나타나는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라”는 표현, 등등) 속에서 교부들이 찾아 낸 8이라는 성서적인 숫자처럼, 일요일의 명성은 구약성서를 기록한 그
“선지자들”에게까지 추적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한
“선지자적”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제8일은 안식일에 의해서 예표된 율법에 의한 통치가 성취되고, 아마 일요일에 의해서 구현된 것으로 여겨지는 은혜의 왕국이 시작되었음을
“합법적으로” 나타낼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은 히에로니무스의 다음의 말에서 매우 잘 묘사되었다.
“숫자 7이 성취되어졌으므로, 이제 우리는 제8일을 통하여 복음에 이르게 된다.”99) (3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