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8장 일곱 인(印)
 일곱 인(印)에 대한 이상은 그 내용과 순서에 있어서 공관복음의 묵시(Synoptic Apocalypse)와 평행을 이룬다. (126.3)
마태복음 24장 요한계시록과 공관복음의 평행점 요한계시록 6장
4-14 절 그리스도 교회시대의 일반적 현실 2-8 절
15-28절 하나님의 백성의 큰 환란 9-11 절
29-31절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특별한 징조들 12-17절
(126.4)
 이 비교 도표를 보면, 마태복음 24:4-14요한계시록 6:1-8의 처음 네 개의 인(印)이 그리스도교 시대의 일반적인 실제 상황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수 있다. 계시록의 말탄자들과 레위기 26장의 언약의 저주는, 예수님이 예언하신 전반적인 징조들(마 24:4-14)과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상징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의 실제성을 상기시킴으로써 그들이 깨어서 바른 길로 가도록 한다. (127.1)
 4명의 말 탄 자들에 대한 역사적 적용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4명의 말 탄 자들은 역사적으로 적용할 수도 있다. 일곱 교회의 경우와 같이, 일곱 인(印과 그리스도교 역사의 서로 다른 시대들 사이에는 상호관계가 있다(계 2-3). 에베소 교회와 마찬가지로 첫 번째 인은 전반적으로 충성스러움이 특징을 이루던 사도 시대와 일치한다(2:1-7). 그 시기 동안에 복음은 온 세상에 급속히 전파되었다(참고 골 1:23). 둘째 인은 1세기 말에서 4세기 초까지 로마제국에서 일어난 박해의 시대와 현저하게 일치한다(참고 계 2:8-11). 셋째 인은 4세기에서 5세기에 걸친 그리스도교 역사와 잘 부합되는데, 이 당시의 특성은 영적 상태가 서서히 쇠퇴하는 것이었다(참고 2:12-17). 이 시기 동안에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있었다. 넷째 인은 중세 그리스도교의 특징을 이루었던 영적 죽음에 적용되며, 이때 사람들은 성경을 가질 수가 없었고, 인간의 전승이 성경을 가르치는 것보다 우위에 있었다(참고 계 2:18-29). (127.2)
 그러나 4명의 말 탄 자들을 역사적으로 적용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네 말 탄자들의 실제적 상태들을 하나의 특정한 시기에만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첫 번째 말 탄자는 나가서 정복하기를 더 정복할 것이 없을 때까지 계속한다. 이 승마 자는 더 정복할 것이 없을 때까지 그 일을 계속할 것이다. 이 복음의 “정복”사업은 사도시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며.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마 24:14; 계 14:6-12). 이와 같은 현상은 다른 말 탄 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핍박이나 영적 기근 또는 영적 죽음도 어느 한 시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복음 전파의 현상들은 오순절로부터 시작하여 권세와 영광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계속되는 일들이다(계 19:11-16). (127.3)
 마지막 세 개의 인(印)을 떼는 장면을 기록한 것은 처음 네 개의 인의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마지막 세 개의 인을 떼는 경우에는 말도 없고 말을 탄 자들도 없다. 처음 네 인을 뗄 때의 말 탄 자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과 관계된 것이지만, 나머지 세 인은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는 자들에게 내릴 심판에 관한 것이다. (128.1)
 다섯째 인(印)(6:9-11)
 고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에 불충실했을 때, 그 타락한 백성을 되돌려 회개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원수들을 통해서 그들을 징계하셨다. 그러나 그 원수 민족들은 쾌재(快哉)를 부르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힘으로써 그들을 아예 멸망시키려고 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분노가 그 원수 민족들을 향해 내리셨다(참고 신 32:41-43). 이와 같은 양상이 일곱 인(印)에서도 나타난다. 다섯째 인은 하나님의 백성이 박해를 당함으로 순교당하는 모습과 자신을 옹호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128.2)
 성경절 : 요한계시록 6:9-11

 (128.3)
 다섯째 인의 장면은 복음을 위해 순교당한 자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 거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경에서 “영혼(soul, 헬라어 psuchē)”이란 단어는 전인(全人, the whole person)을 가리킨다(창 2:7; 행 2:41[‘사람’]; 27:37[‘인(人)’]). 이러한 의미로 순교자들(“죽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다고 묘사했으며, 이것은 지상 성소에서 희생제물의 피를 제단 아래에 쏟아 붓던 것을 암시한다(출 29:12; 레 4:7; 8:15). 구약에서 생명은 피(blood)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레 17:11). 여기서 순교자들의 죽음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 희생의 피를쏟는 것으로 묘사되었다(딤후 4:6). (128.4)
 요한은 순교자들이 자기들을 박해한 자들에 대하여 자신들을 옹호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들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의 피를 갚아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려 하나이까?”(계 6:10). 요한계시록에서 “땅에 거하는 자들”이란 표현은 지속적으로 복음을 반대하고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참고 계 8:13; 11:10; 13:8; 17:2). 그 순교자들의 탄원은 부당하게 죽임을 당한 아벨의 피가 어떻게 하나님께 호소했는지를 상기시켜 준다(창 4:10). 이 순교자들의 탄원은 그들의 생명을 앗아간 자들에게 원수를 갚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죽임을 당한 것이 부당했으므로 자신들을 옹호해달라는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정의를 세우시고, 그들의 흘린 피가 헛되지 않게 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요청하고 있다. (129.1)
 “오 주예[‘대주재여’], 언제까지?”라는 호소는 온 역사를 통해서 압박과 해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탄원이다(시 79:5; 단 12:6-7; 합 1:2). 이리하여 다섯째 인을 떼는 장면에서 나타나는 순교자들의 탄원은 아벨의 때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자기 종들의 피를”(계 19:2) 그들의 원수에게 갚으실 때까지, 온 역사를 통하여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탄원을 대표한다. (129.2)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가 응답을 받지 못하고, 불의가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흔히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의 기도를 들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순교자들의 탄원을 두 가지 방법으로 응답하신다. 첫째, 그들에게 흰옷이 주어진다. 요한계시록에서 흰옷은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하며, 이 흰옷은 그리스도께 받아들여진 사람들의 수치를 가리는 것이다(계 3:18). 흰옷은 또한 승리한 자들에게 주실 미래의 상급을 의미한다(3:5). 이 순교당한 의인들에게는 구속과 영생에 대한 확증을 받았는데, 이것은 그들이 당한 순교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하신 일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129.3)
 둘째, 순교자들은 아직 잠시 동안 그들의 형제들이 그들과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이 끝나기까지 기다리라는 말씀을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종들의 피를 갚으시고 그 대적에게 복수하실” 것을 약속하셨다(신 32:43; 시 79:10). 요한계시록 8장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은 그리스도교회의 전 역사를 통해서 “땅에 사는 자들에게” 이미 부어졌다(계 8:13).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살후 1:8-10). 이 예언의 성취는 여섯째 인을 떼는 장면의 주제이다. (130.1)
 대부분의 성경 역본들은 이 본문을 번역하면서 “수(數, number)”라는 단어를 삽입했는데, 이것은 그 순교자들이 순교당한 성도들의 수(數)가 다 찰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고 추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어 원어 본문에는 “수”라는 말이 없다. 요한계시록은 반드시 도달해야 할 순교당한 성도들의 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성품의 온전함을 가리킨다. 아직도 순교를 당해야 할 사람들은, 제단 아래 있는 이미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처럼 온전하게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성경 본문은 그 순교자들이 그들 자신의 공로로 완전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받음으로써 완전하게 되었음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130.2)
 다섯째 인을 떼는 장면은 그리스도교회 전시대 동안의 하나님의 억압당한 백성의 경험을 나타내는 한편, 그것은 또한 중세 이후의 역사의 특정한 기간에 적용될 수도 있다. 이 기간에는 5천만 명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충실했기 때문에 순교를 당하였다. 다니엘의 예언들은 “성도들과 싸워 그들에게 이긴”(단 7:21, 25) “작은뿔”로 묘사 된 원수세력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은 그와 같은 상황이 얼마나 오래 계속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예언적으로 1,200일 즉 1,260년 동안(단 12:6-7)이다. 여섯째 인을 떼는 것은 우리를 바로 그 시점으로 데려간다. (130.3)
 여섯째 인(印)(6:12-17)
 여섯째 인을 뗄 때의 장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려면, 다섯째 인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의인들에게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 살면서 불공정한 고난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탄원의 기도에 응답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실 때가 왔다. 이리하여 여섯째 인은 하나님의 백성을 해한 악인들에 대한 심판을 묘사한다. (131.1)
 성경절 : 요한계시록 6:12-17

 (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