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8장 일곱 인(印)
 요한계시록 4-5장에서 우리는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에 즉위하시는 것을 경축하는 예배 장면을 보았다. 봉인된 두루마리를 취함으로써 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합법적 통치자로 하늘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으셨다. 이제 만물은 그리스도의 발아래 복종하게 되었다(엡 1:22). 하지만 그분은 아직도 이 세계가 온전히 받아들이는 통치자는 아니다. 그분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는 반역적인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정복당해야 하고, 그리하여 죄의 포로가 된 사람들은 석방이 되어야 한다. (117.1)
 어린양인 그리스도는 그 보좌에 앉으시면서, 두루마리의 인(印)을 떼기 시작한다. 그 인을 떼는 것은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연의 사건들을 촉발시킨다. 이러한 사건들은 그 봉인된 두루마리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행하시는 행동의 결과로 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가리킨다. 그 두루마리의 내용은 모든 인들이 떼어질 때에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117.2)
 우리는 그 인(印)들을 떼는 일이 AD 31년 오순절에 그리스도의 즉위와 함께 시작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여섯째 인을 떼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게 될 것이다(참고 계 6:12-17). 이와 같이 요한계시록 6장은 제1세기부터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이 적의에 찬 세계에 있는 그리스도교회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다. (117.3)
 4명의 말 탄 자들(6:1-8)
 처음 네 개의 인(印)을 떼는 장면의 묘사는 같은 형식의 문학구조를 따르고 있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가 네 개의 인을 하나씩 떼실 때, 요한은 네 생물들이 하나씩 차례로 “오라!” 하는 말을 들었다. 어떤 사본에는 “와서 보라!”로 되어 있으며, 그것은 그 부름이 요한을 향한 것임을 의미했다(계 6:1). 하지만 이것은 말 탄 자들을 부르는 것이었을 개연성이 더 높다. (118.1)
 처음 네 개의 인을 뗄 때에 네 가지 색깔의 말들과 그 탄 자들이 나타났다. 요한계시록에서 말은 항상 전쟁과 정복을 의미한다(계 9:7; 19:11, 14). 요한 이전에, 스가랴는 구약에서 요한계시록 6장에 나타나는 것과 비슷한 네 가지 색깔의 말을 탄 자들을 이상 속에서 보았다(슥 1:8-10). 그 말을 탄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천사와 같은 존재들이었다(1:11). 후에 본 스가랴의 이상에서, 그 말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하늘의 네 바람/영(避, spirit)”으로 일컬어졌다(6:5). 스가랴의 이상은 요한계시록 6장에 나오는 말의 형상이 상징하는 바를 푸는 데 도움을 준다. (118.2)
 성경절 : 요한계시록 6:1-8

 첫째 인(印) (6:1-2)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봉인된 인을 떼실 때, 흰 말[白馬]이 장면에 나타난다. 그 흰 말을 탄 자는 활을 들고 있으며 면류관을 받는다. 여기에 면류관으로 표현된 그리스어의 단어는 스테파노스(stephanos)인데, 이것은 승리의 면류관을 의미하는(참고 딤후 4:8) 화관(garland)으로, 고대 올림픽 경기의 우승자들에게 주는 관이다. 이 말을 탄 자는 정복자이고, 또 완전히 정복하려고 전진한다. 요한 당시 로마의 장군들은 큰 승리를 경축할 때는 백마를 탔다. (119.1)
 여기 이 장면은 상징적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때때로 손에 활을 잡고 말을 타시고 그분의 백성의 원수들을 정복하시는 모습으로 묘사되신다(합 3:8-13; 시 45:4-5). 요한계시록 19:11-16에는 그리스도가 흰 말을 타시고 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 전투로 하늘의 대군을 이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에서 흰색은 순결의 상징이며,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자들과 연관되는 것이 통례이다.1 또한 그 말을 탄 자가 쓰고 있는 면류관(sephanos)은 언제나 그리스도와 그분의 승리한 백성과 연관되어 있다. 끝으로, “정복한다”라는 개념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갈바리의 “이김”을 가리키는 요한계시록 3:215:5의 메아리로 들린다. 이러한 개념은 이 책의 지배적인 주제이다. (119.2)
 그 흰 말을 탄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은(그리스도를 위해 백성을 구원해 들인) 오순절에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있는 하늘 보좌에 오르셨을 때, 악의 세력을 대항하여 싸우심으로써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그 나라를 위하여 정복해야 할 영토와 구원해야 할 백성이 많이 있었다. 복음 전파의 초창기에는 성령의 능력이 임함으로써 강력한 출발을 할 수 있었다. 하루에 수천 명의 영혼들이 회심하였다(행 2:41, 47; 4:4). 그러나 “복음의 정복”은 마지막 때에 궁극적 정복이 실현될 때까지 전 역사를 통해서 계속 될 것이다(참고 마 24:14). (119.3)
 둘째 인(印) (6:3-4)
 그리스도께서 둘째 봉인된 인을 떼실 때, 불과 같은 붉은색의 말이 장면에 나타났다. 붉은 색은 피를 상징하며, 이 말이 해야 하는 사명과 일치한다. 그 말을 탄 자는 큰 칼을 가졌으나 몸소 죽이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지상에서 평화를 거둬갔고, 그 결과 사람들이 서로를 살해했다. (120.1)
 이 불같이 붉은 말은 흰 말의 뒤를 따른다. 첫째 말은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악의 세력에 대항하여 영적 전쟁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악의 세력들은 복음의 전파에 대항하여 대단히 완강한 저항으로 대응한다. 이 악의 세력들은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을 불러 모아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대항한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핍박이 따른다. (120.2)
 복음은 언제나 사람들을 갈라놓는다. 즉, 어떤 이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다른 이들은 복음을 거절한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평화를 가져오나, 복음을 거절하는 것의 결과는 평화의 상실이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그 어머니와, 며느리가 그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집안 식구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4-36).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들이 가끔 자기들끼리 등을 돌린 것같이,2 둘째 인을 떼는 장면에서 복음을 거절한자들은 서로 간에 핍박을 가한다. (120.3)
 셋째 인(仁) (6:5-6)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셋째 인을 뗄 때, 검은 말이 나타나서 붉은 말을 따라 간다. 그 말을 탄 자는 식품의 무게를 재는 저울을 손에 들고 있다. 요한은 또한 네 생물 가운데 하나가 공표하는 것을 듣는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 6:5). (121.1)
 팔레스타인에서는 곡류, 올리브유, 포도주가 3대 주요 작물이다. 구약에서 이 세 가지 작물은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으로 언급되어 있다.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식량을 풍부히 갖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곡류의 무게를 엄격하게 쟀다는 것은 식량이 부족했거나 기근이 잦았음을 뜻한다(참고 레 26:26; 겔 4:16). 요한의 시대에 한 데나리온은 일꾼의 일당(日當)이었다(참고 마 20:2). 정상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일당으로 한 가족의 필요한 것을 모두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흉년이 들면 물가가 평균가의 12배까지도 상승했다. 이 셋째 인을 떼는 장면에서는 한사람의 일당인 한 데나리온으로 겨우 한 사람이 하루에 필요한 양의 곡물인 밀 한 되밖에 살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 한 데나리온의 임금으로 적은 가족을 먹이기 위해서는, 밀 대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조악(粗惡)한 식량인 보리 석 되를 사야 하는 형편이다. (121.2)
 검은 말과 그 말을 탄 자의 시각적 영상은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어떤 결과가 올지를 가리켜 보여 준다. 검은색은 그 말과 그것을 탄 자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말해 준다. 검은색은 흰색의 반대이다. 흰 말이 복음의 선포를 나타낸다면, 검은 말은 그 반대인 복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눅 8:11). 떡도 예수님의 말씀을 나타낸다(요 6:35-38). 복음을 거절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이르러오고, 이것은 아모스가 이스라엘 백성에 관하여 예언한 영적 기근과 비슷한 것이다(암 8:11-13). (121.3)
 그러나 셋째 인을 뗄 때의 기근은 치명적이 아니다. 이 셋째 인을 뗄 때에 말 탄자를 “오라”고 부르던 음성은 또 말하기를, 올리브유와 포도주는 이 기근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해서 공급될 것을 선언하였다. 영적인 면에서 올리브유는 성령을 상징하고,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때에도 성령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역사하시며, 구원을 원하는 자는 누구에게나 구원이 허락된다. (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