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성소 (재림교회 신학의 심장) 제 7 장 그리스도와 1844년1)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단 8:14). (129.1)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좋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 6:19, 20). (129.2)
 나는 본서의 머리말에서, 교리가 발전돼 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인간 존재로서 제한적이고 근시안적인 이해를 지니고 있어서 어떤 한 시점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밝혔다. 내적 정황이나 외적 정황 때문에, 어떤 중요한 시점이나 역사의 교회는 처해 있는 신학적 상황의 전체적인 국면을 개념화하고 파악할 수 없도록 막는 일종의 신학적 장애물로 괴로움을 겪게 된다. (129.3)
 내 판단으로는 1844년의 대실망에서 절정을 이룬 19세기 중반의 밀러주의 운동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그때는 큰 기대와 영적인 열성으로 고양된 시기였다.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것은 몇 해, 몇 달, 아니 몇 일에 달린 문제였다. 여러 해 후에 기록한 어떤 진술에서 밀러의 추종자였던 하이럼 에드슨(Hiram Edson)은 흥분시키는 초읽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신자들 사이에 번진 희열을 회고했다. (129.4)
 “우리는 확신에 차서 예수 그리스도 및 그분과 함께 올 거룩한 천사들을 볼 것으로 기대하였다. 또한 그분의 음성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옛날의 믿음의 명사들, 그리고 죽음으로 우리와 갈라졌던 사랑하는 친구들의 이름을 부를 것이며, 초기 순례 길에서 겪은 우리의 시련과 고통은 끝이 나고 공중으로 끌어 올려져 주님을 영접하여, 구속받은 자들을 위해 준비한 금 도성 본향의 빛나는 황금 저택들에서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 것으로 기대하였다. 우리의 기대는 하늘 높이 치솟아, 시계가 밤 12시를 울릴 때까지 오시는 우리 주님을 고대했다.”2) (130.1)
 1844년 10월 그 중대한 날에, 열렬한 밀러주의자들에게 재림의 날과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 예수의 경고(마 24:36)를 상기시키는 것도 소용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예언을 연구하여 입장을 정하고 믿지 않는 세상에 경종을 울림으로써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응답하였다. 이것은 그들에게 사실상 진리였고, 따라서 특별히 그것과 반대되는 새로운 신학적 평가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흥분된 기대로 가득찬 상태에서는, 하나님이 항상 우리에게 허용하신 자유 때문에 아마 그분마저도 그들의 신학적 장애물을 꿰뚫을 수 없었을 것이다. (130.2)
 그러나 애석하게도 시계가 밤 12시를 울렸으나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하이럼 에드슨은 다시 이렇게 술회했다. “그 날은 지나갔고, 우리의 실망은 확실해졌다. 우리의 최대의 희망과 기대들은 결딴났고, 내가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비통한 분위기가 우리를 휩쓸었다. 세상의 모든 친구를 잃어버린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날이 샐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3) (130.3)
 그것은 참으로 쓰디쓴 실망이었고, 에드슨은 하마터면 불가지론과 배도에 빠질 뻔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둠에 가려있던 하나님, 그가 그의 신뢰의 닻을 내리고 있던 자비로운 하나님은 멀리 떠나 계시지 않았다. 에드슨의 눈물을 뚫고, 다음날 아침 하나님은 최선의 방법으로 나타나셨다. 에드슨의 말이다. “내 시야에 하늘이 열린 것처럼 보였고, 나는 우리의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나와서 2300주야의 끝 곧 제7월 10일에 이 땅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그 날 처음으로 성소의 둘째 칸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뚜렷하고 확실하게 보았다. 또한 그분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지성소에서 수행할 사역이 있음을 보았다.”5) (131.1)
 이 입장은 후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 된 밀러주의자들의 한 무리에 의해 채용되었다. 역사적으로 그것은 우리의 신조 체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6) (131.2)
 “휘장 안에” 라는 구절의 의미
 에드슨의 발견으로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이 제기되었는데, 그중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이렇다. 히브리서 6:19, 20에 예수께서 승천하여 곧바로 지성소로 들어가신 것처럼 암시되어 있는데도, 우리의 선구자들이 그분께서 1844년에 처음으로 하늘 성소의 지성소로 들어가셨다고 말한 것은 옳은가? (131.3)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예’도 될 수 있고 ‘아니오’도 될 수 있다. (131.4)
 그러면 내가 ‘아니오’ 곧 초기 선구자들이 옳지 않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구약에 나타난 “휘장 안에” 라는 표현에 비추어 히브리서의 그 진술을 연구하면, 하늘 성소가 두 칸으로 되어 있다는 개념을 받아들인다는 조건으로 볼 때 정말로 하늘 성소의 지성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이 확실하게 보일 것이라는 말이다. (131.5)
 예전에 출판한 성소에 관한 나의 책에서 휘장의 의미에 대해 밸린저가 발견한 사항에 관한 연구를 소상히 제시하였다. 편의를 위해 여기서 그의 해석을 간단하게 요약해 보도록 하자.7) (132.1)
 밸린저는 구약에 나타난 히브리어 파로케트(paroket)의 용례에 기초하여 그의 논증을 세웠다. 그는 총 25회의 용례 가운데서 그 단어가 항상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을 가리키고 성소의 바깥 휘장은 결코 가리키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8) 더욱이 그는 성소의 바깥 휘장을 파로케트라는 용어로 지적한 적이 결코 없다고 주장하였다. 오히려 바깥 휘장은 시종일관 “성막 문” 또는 그밖에 다른 유사한 용어로 언급되었고, “첫째 휘장”으로는 언급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9) (132.2)
 밸린저는 파로케트의 모든 용례 중에서 “휘장 안에”라는 구절을 포 함하는 다섯 개의 용례에 주의를 돌려, 그 표현이 항상 지성소에 적용되었다고 지적하였다. 다른 한편 오경에서 8회 나타나는 “휘장 밖”“휘장 앞”이라는 표현11)모든 경우에 성막의 성소를 의미한다. (132.3)
 밸린저의 해석에 결함이 없진 않았고, 따라서 그것은 주목의 대상이 되어 왔다.12) 하지만 그 결함이 비교적 사소하게 보여, “사실상 그의 주된 주장들은 손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13) (132.4)
 밸린저는 카타페타스마(katapetasma, 휘장)의 연구를 위해 신약으로 돌아와서 공관복음 전체에서 이와 같은 기본적인 이해를 추적한 후에 결정적인 언급인 “성전의 휘장”이라는 구절에 주목했는데, 그것은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을 분명하게 가리키는 구절이다(참조 마 27:51; 막 15:38; 눅 23:45). 그런 다음 그는 히브리서로 가서, 단순히 성령께서 앞서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분명하게 정의한 것을 스스로 반박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히브리서 6:19, 20“휘장 안에”라는 표현이 하늘 성소의 지성소를 가리킨다고 결론지었다. (132.5)
 우리는 물론 히브리서가 “둘째” 카타페타스마(둘째 휘장)에 관하여 말한다는 사실을 주목할 수 있지만, 이것은 적어도 세 가지 문제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1. 신학적 사례를 성경적 증거의 기초 위에 세우는 재림교회의 타당성 있는 접근 방식에 거슬려, 우리는 논증의 지지를 위해 나머지 모든 구절을 무시한 채 하나의 본문에만 매달려야 한다.

 2. 우리는 히브리서의 저자가 6:20에서 어떤 휘장(첫째 혹은 둘째)을 염두에 두었는지를 명시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려면 곤혹스럽다. 왜 거기서 저자가 그것을 아무런 설명 없이 사용했을까?

 3. 만약 우리가 문제의 핵심을 입증하기 위해 딱 하나의 본문을 취해야 할 입장에 처한다면,(히브리서 9:4에만 기초하여) 분향단이 성경의 수많은 다른 구절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반대되게 지상 성소의 지성소에 있었다는 억지 주장을 펴야 할 것이다. (133.1)
 히브리서 9:4에 나타난 불일치에 대해 주석들이 제시한 해석들이 구구하여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 이런 현상은 히브리서 9:3“둘째 휘장”이라는 표현에 나오는 단 하나의 차이에 근거하여 입장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저지하는 사항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