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요한복음 제II부 예수와 옛 세대 (1:19-4:54) 제 2 장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심 (1:19-51)
 우리가 보기에는 제4 복음에서 요한의 겸손은 예수의 성육신(成肉身)과 십자가에 나타난 그분의 무한한 굴욕에 대한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반응의 밝고도 빛나는 모본이다. 그러나 이 복음서 저자에게는 아마도 침례자의 굴욕이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68.3)
 요한복음을 읽는 현대의 독자들은 침례자가 난데없이 나타나서, 예수에게 침례를 베풀고는 홀연히 사라져서, 다시는 눈에 띄지도 않고 소식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침례자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운동은 예수와는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초기에는 침례자의 제자들 중의 소수만이 실제로 그를 떠나 예수를 따랐다(35-51절; 마 11:2, 3). 침례자는 예수의 침례 후에도 한동안 계속해서 봉사하며 군중들을 모았다(요 3:22-30). 사도행전에 보면,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아볼로의 개인적 역사(18:24-26)와 에베소의 열두 사람의 이야기(19:1-7)는 모두 침례자의 운동이 계속 독립성을 유지했음을 시사한다. 오늘날에도 주로 남부 이라크에 살고 있는 만디족(Mandeans)은, 그들의 종교적 유산의 근원을 예수와 모하메드(Mohammed)보다는 침례자 요한의 봉사에서 찾고 있는 소수의 무리이다. (69.1)
 그러므로 광야에서 요한에게 이끌린 사람들 중의 다수는 예수께 충성을 바친 일이 없이 계속 침례자를 추종하고 있었다(참고 Brown, 1:lxvii-lxx). 그러나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이 기록된 후, 제4 복음이 기록되기 전인 어떤 시점에 침례자의 운동은 점차 기독교에 적대적으로 된 것처럼 보인다. 침례자 자신이 정치적인 관련으로 순교했기 때문에 이 운동은 로마와의 전쟁 동안 열심당과 다른 혁명가들과 공통 전선을 펴게 되었다(A.D. 67-70; 이 전쟁에 관한 묘사를 위해서는 엘렌 G. 화잇, 각 시대의 대쟁투, 17-36을 보라). 그 당시의 팔레스타인에 사는 대부분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침례자의 추종자들은 로마에 대항하는 일에 제휴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유대인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해 분개했을 것이다. (69.2)
 우리처럼 이 복음서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침례자의 추종자가 예수의 우월성을 이해하지 못한 일은 믿을 수 없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오해하게 된 역사적 및 신학적 이유가 있다. 첫째로, 오늘날에도 흔히 있지만, 신학을 말할 때 옛것일수록 더 좋은 것이라는 의식이다(예를 들면,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19:3-9에서 이 원칙에 호소하셨다). 사람들은 “옛길”을 더 선호한다. 침례자가 예수보다 앞서 왔으므로 많은 유대인들은 침례자가 예수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해 왔다. (69.3)
 많은 사람들이 침례자를 예수보다 더 위대하게 여긴 또 다른 이유는, 그 당시의 유대인의 전승이 말세에 한 명이 아닌, 명의 메시야—유다 족속에서 나오는 한 메시야와 레위 족속에서 나오는 다른 메시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Russell, 304—323). 유다 지파에서 나오는 메시야는 왕권을 지닌 메시야이고, 레위 지파에서 나오는 메시야는 제사장직을 지닌 메시야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왕들과 제사장들은 모두 기름부음을 받았다(레 8:1-13; 삼상 10:1; 16:1-13; 왕상 1:28-40 등). 그러므로 어떤 집단들 안에서 메시야(히브리어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한 사람 속에서 통합될 수 없고 적어도 두 명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가 일어나게 되었다. 침례자 요한(레위 지파)과 예수(유다 지파)는 함께 출현했지만, 사람들이 이런 전승이 요한과 예수와의 관계 속에서 성취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70.1)
 종교보다 정치가 우위에 있는 현대의 경향과는 반대로 「사해 두루마리」의 저자들은 제사장을 왕보다 더 위대한 존재로, 즉 종교적 영역을 정치적 영역보다 더 큰 것으로 여겼다. 결국, 대제사장 아론은 첫 왕이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수백 년 전에 직무를 수행했다는 것이다. 먼저 있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왕에게 기름붓는 것도 제사장이며, 그 반대의 경우는 없었다. 고대 이스라엘은 신정(神政)—(“하나님이 통치하시는”)—정치였고, 하나님은 왕의 궁전이 아니라 성전에서 뵈올 수 있었다. (70.2)
 제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침례자 요한의 신학에 반대하는 어떤 주장을 할 수 있었는가? 한 가지 사항만 말한다면, 그들은 예수께서 한 사람 안에서 왕(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하나님의 나라”)과 제사장(히브리서)의 역할을 성취하셨다는 사실을 지적한 수 있었을 것이다. 그와 같이 왕—제사장에 대한 구약의 선주자(先走者, forerunner)로는 멜기세덱과, 어쩌면 어느 정도 제사장의 기능과 왕의 기능을 모두 행사한 모세를 들 수 있다(창 14:18-20; 출 24:3-8).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현재의 계시가 옛 계시보다 더 나은 것이 분명하므로 먼저 있은 계시가 반드시 더 좋은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을 것이다(요 1:17; 참고 히 1:1-3). (70.3)
 그러나 제4 복음의 저자는 1:19-51에서 이와 같은 관점에서 문제를 접근해 가지 않는다. 그와는 달리 그는 이 복음서에서 그의 관심은 침례자가 예수보다 먼저 출현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있다. 침례자가 예수보다 먼저 온 것은 그가 예수보다 더 위대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를 그 민족에게 소개하는 것이 그의 직무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먼저 돋보여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먼저 있는 것이라고 반드시 더 좋은 것은 아니다. 침례자는 선주자였지, 실체는 아니었다. 예수의 하늘에서의 역할을 볼 때, 그분는 침례자보다 선재(先在)하셨다. 요한의 기별은 침례자를 예수보다 더 위대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침례자 자신의 증거를 불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71.1)
 하나님의 어린양
 요한복음 1:19-51의 배경과 연관된 또 다른 쟁점은 요한이 예수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지적했을 때(29절), 그가 의미한 것이 정확하게 무엇이었느냐 하는 질문이다. 이 복음서의 유대적 배경에서 볼 때, 가능한 대답들이 많이 있다(참고 Brown, 1:58-63). 침례자는 하나의 묵시 문학, 즉 「요셉의 언약」(The Testament of Joseph)(Charlesworth, 1:824)과 요한계시록 5:6(참고 계 7:17; 17:14)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정복하는 어린양을 지칭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경우, 그는 예수를 말세에 죄와 죄인을 멸망시킴으로써 “죄를 지고 가는” 정복하는 메시야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출애굽의 유월절 양을 지칭하는 것일 수 있다. 이 경우, 침례자는 예수에게서 새 모세, 즉 새 애굽에서 새 이스라엘을 구속하는 자로 보았을 것이다. (71.2)
 셋째 가능성은 창세기 22:10-13에 나타나는 이삭의 자기 희생을 모델로 한 이사야 53장의 굴복하는 양이다. 침례자가 이를 염두에 두었다면 예수의 성품과 대속적인 죽음을 특별히 고려했을 것이다. 넷째 가능성은 모세의 법에 나오는 성소의 어린양이다(출 29:38-42; 레 5:5-7; 민 28:1-8). 이 경우, 구약의 성소가 신자에게 약속한 모든 것들을 수행하시는 예수에게 초점이 맞추어졌을 것이다. (71.3)
 이와 같은 가능성 모두가 요한복음에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용어는 독자들이 이 복합적인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모호하게 남겨졌다. 하지만 위에 언급된 것들 중에서 한 가지가 다른 것들보다 더 선호되어야 한다면, 유월절 어린양이 이 복음서의 저자에게 가장 중요하게 보였을 것이다. 이 복음서에는 예수가 새 모세라는 강력한 의식이 있다. 모세가 물을 피로 만든 것처럼, 그분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고,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공급한 것처럼, 그분은 하늘로부터 떡을 공급하셨다(2:1-11; 6:14, 31; 신 18:15, 18). 요한복음 19:31-37은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의 죽음을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에 관한 규례로 확연하게 연결시키고 있다(참고 출 12:46; 민 9:12; Nichol, 5:908). (72.1)
 광야에서의 40일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직후 제자들을 갈릴리로 부르시기 전에, 40일 동안에 광야로 나가셨다(마 3:13-4:22; 막 1:9-20; 눅 3:21-5:11). 우리가 본 대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의 침례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이어서 그 다음 주 동안에 5명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첫 이적을 행하시는 장면이 나온다(요 2:1). 예수의 광야에서의 40일은 어찌 된 것인가? 이 복음서의 저자는 그 사실에 대해 몰랐는가? 그는 고의적으로 그 사실을 무시했는가? 베드로와 안드레는 요단 강에서 부름을 받았는가(1:28, 35-42), 아니면 갈릴리에서 부름을 받았는가(마 4:18-22; 막 1:14-20; 눅 5:1-11)? (72.2)
 40일에 관한 최선의 설명은 요한복음 1:29-34가 예수의 침례의 실제적인 사건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40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심으로 필요하게 된 그 침례의 의미에 대한 침례자의 설명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해를 따른다면, 마태, 마가, 누가는 예수의 실제 침례와 이어지는 광야에서의 체류와 시험에 대해 기록했으나, 제4 복음에는 그 중의 어느 것도 기록되지 않았다. 제4 복음은 예수께서 광야에서 돌아오신 것에서 시작하여, 그 다음에 있은 예수와 침례자의 만남, 요단 강 근처에서 여러 명의 제자들을 부르심, 그리고 가나의 혼인 잔치를 기술하고 있는데, 이 중의 어느 것도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화잇, 시대의 소망, 1:136, 137을 보라). (72.3)
 요단 강과 갈릴리 해변에서의 이중의 부르심은 제자들이 1-2년간은 파트—타임(part—time) 봉사를 하다가 갈릴리에서는 그들의 직업인 고기잡이를 버리고 예수와 더불어 풀—타임(full—time) 봉사를 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마 4:20—는 언급에 유의하라).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베드로의 외침은 몇 명의 제자들이 요단 강에서의 최초의 부르심에서 돌아선 시기가 있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눅 5:8; 참고 화잇, 시대의 소망, 246-249). (73.1)
 문단의 세부 사항
 요한복음 1:19-28에서 침례자는 두 부류의 질문자들을 대면하는데, 한 부류는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 의해 보냄을 받은 “제사장들과 레위인”(19-23절)이고, 또 한 부류는 아마도 “유대인들”에 의해 보냄을 받은 “바리새인”(24-28절)이었던 것 같다. 제4 복음에서 유대인이란 용어는 종종 전체적인 백성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이를 위해서는 “무리”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6:22, 24 등), 특정한 지도 계층, 즉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2:18, 20 등). 1:19-23에서 이 사절들은 침례자 요한이 메시야인지 여부를 확인하고자 애쓰고 있다. (73.2)
 침례자가 메시야라는 용어를 거절하자(20절그리스도는 히브리어 용어인 메시야에 해당하는 헬라어이다), 그들은 그가 “엘리야” 혹은 “그 선지자”인지를 물었다(두 용어 다 당시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묘사하는 데 사용한 용어이다—말 4:5, 6; 신 18:15-18). 침례자가 엘리야로 표현될 수도 있지만(마 11:11-14), 요한복음 1:20, 21의 요점은 그가 일반적인 뜻의 용어로 메시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칭호에 합당한 분은 오직 한 분뿐이다. 이 복음서에서 침례자는 다른 분을 위해 길을 예비하는 “광야의 소리”로 만족하고 있었다(23절). 산들을 낮추고 낮은 지대들을 북돋움으로 고속 도로를 건설하듯이, 메시야를 위한 길은 자존심을 낮추고 백성들의 영적 헌신을 고양시킴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74.1)
 그런 후에 바리새인들은, 그가 진정으로 메시야가 아니라면, 과격한 종교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침례자의 권위에 대해 질문하였다(25절). 침례자 요한이 살던 당시에 이방인 회심자들이 가끔 침례를 받기는 했으나 믿는 유대인이 침례를 받는 것은 비상한 일이었다(「사해 두루마리」를 써서 남긴 사람들에게는 신자들이 어떤 형태의 침례를 받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Freedman, 1:583, 584를 보라). 침례자 요한이 유대인을 위한 침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매우 과격한 것이었으며, 이것은 그들의 신앙에 어떤 부적합함이 있음을 암시했다. 메시야가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침례자가 메시야가 아니라면 무슨 권세로 여러 가지를 변경시킨단 말인가? 그는 말하기를 물로 주는 침례는 앞으로 오실 분과 비교할 때 매우 작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