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생각의 선상에서 야고보는 두 축복 중의 하나를 제안한다(
12절; 다른 것은
25절을 보라). 그 축복은 고난을 만났을 때 긍정적인 반응을 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12절이 야고보의 구성과 논쟁에서 중추적인 절임을 주목하는 것은 매우 가치있는 일이다. 그것은 고통당하는 자가 어떻게 고난에 대응하는가에 관한 논쟁에 대한 부분이다. 그 응답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고통당하는 자는 인내로 반응할 수도 있고(
12절), 하나님에 대해 불평하고, 고통당하는 자를 시험하시는 그분에 대해 비난하는 것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
13절). 우리는 처음에 두 단어—시련과 시험—가 같은 헬라어
peirasmos에 대한 번역임을 보았다.
“시련”(trails)은 외적 고난에 관한 언급인 반면
“시험”(temptation)은 내적 고난에 관한 언급이다. 그것은 야고보가 매일 당하는 외적인 압제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2절에서 매우 분명해 보이다. 그러나
13절과
14절에서
peirasmos는 죄를 범하게 하는 내적 시험에 관한 경험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서 우리의 질문은 이것이다:
12절에서 그 의미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학자들은 여기의
peirasmos는
2절과 같은 방법으로 해석하고,
1:12은 그것의 앞에 나오는 모든 절에 대한 논쟁을 포함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단순히
2절로 거슬러 올라가 평행을 이루는 것이라고 논증한다. 다른 성경학자들은
12절의
peirasmos를 다르게 해석한다.
1-11절을 결론짓는 절이라기보다는
12절은
13-15절을 위한 서론적인 구절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시험”(temptation)으로 번역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12절에서 야고보는 그 단어의 모호함을 깨닫고, 그것은 이중적 의미로 사용한 듯이 보인다. 그러고 나서 이 구절은 변환 구절로써의 역할을 한다. 그것은
2-11절의 논쟁에 관한 요약인 동시에
13-18절에 있는 토론의 서론인 것이다. 이것은 외적 고난과 내적 시험이 모두 다 우리가 우리의 매일의 생활에서 만나는 영원한 투쟁의 부분들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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