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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에로니무스(Jerome)에 의해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통치 기간으로 저작 연대가 추정되는1「이교도 반박론」(Adversus Nationes)에서 아르노비우스(Arnobius, d.c. 300)는 로마제국에 닥친 여러 재난들, 그 중에서도 특히 전쟁들의 책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는 이교도들의 비난을 반박하였다. 이 저술은 테르툴리아누스의「변증론」, 키프리아누스의「데메트리우스에게」(Ad Dememt- rianum)와 유사한 변증서로서 이들 선구적인 저서들과 그의 제자 락탄티우스(Lactantius)의「신의 원리」(Divinae Institutiones)의 중간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92.1)
 아르노비우스는 이교도들의 위와 같은 비난에 대해 그리스도교의 평화적, 반전쟁적 본성과 그 역사를 내세워 반박하였다. 그는 그들의 비난을 뒤집어 당시의 모든 재난과 전쟁들의 진정한 원인은 호전적이고 부패한 로마의 종교에 있다고 반박하였다. 그는 이러한 논지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전쟁의 참화와 그 도덕적 사악성을 비판하였다. (92.2)
 그에게 있어서 전쟁은 “사람들이 모두 한 근본, 한 부모, 한 머리에서 나온 사실을 망각하고 인간끼리의 혈족적인 의를 파괴하고 그들의 도읍들을 파멸시키고 증오심으로 그 땅을 황폐케 하며 자유인을 노예로 만들고 처녀들과 유부녀들을 유린하고 서로 증오하고 다른 사람의 기쁨과 행운을 시기하며 저주의 말로 타인을 비방하고 잔인한 이빨로 서로를 물어뜯는 것이다.”2 또 전쟁은 “방향이 다른 여러 곳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다가 삽시에 들판을 시체와 피로 뒤덮게 하여 더할 나위 없이 안정되어 있던 제국을 멸망시키고 도시들을 초토화하며 자유롭게 태어난 자들로부터 자유를 빼앗아 그들에게 노예의 운명을 강요하고 끔찍한 살육을 즐기는 것”이다.3 (92.3)
 아르노비우스는 이 밖에도 ii. 39, 76; iii. 28; vi. 2; vii. 9, 36, 51 등에서 전쟁의 사악한 측면들을 수사적 표현으로 언급하였다. 따라서 아르노비우스에게는 전쟁 종사자들의 존재 가치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도대체 전투에서 위대한 경험을 쌓고 도시들을 함락시키는 데에 이골이 난 장군들과 갖가지 기병전과 보병전에서 불퇴의 무용을 쌓은 병사들이 존재한다고 해서 세상에 무슨 소용이 되며 도움이 되는 것인가.”4 (93.1)
 「이교도 반박론」의 내적 증거에 의하면 이교도들이 전쟁의 참화를 그리스도교회의 탓으로 돌릴 때 대체로 그들의 비난은 그들이 품고 있는 두 개의 전제적 관념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는 로마인들이 그리스도교를 신봉하기 시작하면서 옛 신들과 그 종교 의식들을 태만히 치른 결과 옛 신들의 노여움을 입게 되어 전쟁이 빈번케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전쟁들이 신들의 후원 속에, 또는 신들의 쾌락적 의도에서 발생한다는 관념이었다. 따라서 로마 세계에 빈번해진 전쟁들은 필시 그리스도교 신의 의도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93.2)
 아르노비우스는 이교도들의 역사적 비난에는 역사적 사실들로 대응하였다. 즉 그는 ‘현재의 전쟁들과 재난들이 그리스도교에 책임이 있다면 그리스도와 아우구스투스 시대 이전의 전쟁들과 재난들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라고 반문하고 있다.5 뿐만 아니라 만약 고대의 관습들의 폐기와 새로운 종교의 신봉이 전쟁의 진정한 원인이 되었다 해도 그 비난은 오히려 로마인들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로마인들은 선전포고와 관련된 페티알레스(Fetiales)의 의식을 이미 오래 전에 폐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6 (93.3)
 페티알레스는 선전포고의 책임을 맡은 사제적 관료집단이었다. 로마제국이 선전포고를 할 때는 언제나 이 집단의 파테르 파트라투스(Pater Patratus)로 하여금 시비가 빚어진 당사 국가의 국경으로 나아가서 피 묻힌 창을 국경 너머로 던지게 하였다. 만약 33일 안에 과오에 대한 보상이나 보복이 이행되지 않으면 로마 군대가 보복을 위해 일어섰다.7 이러한 관례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제(Marcus Aurelius)의 시대까지만 해도 지켜지고 있었으나 그 후 점점 태만시 되었다.8 기원 242년에 고르디아누스 황제가 대 페르시아전에 출정할 때를 마지막으로 이 의식은 폐기되었다.9 이처럼 로마는 적법한 선전포고의 장치까지 무시하면서 유혈의 전쟁을 서둘러왔던 것이다. (94.1)
 아르노비우스는 역사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에 포교된 이래로 전쟁은 증가하지 않고 오히려 감소됐다고 강조하면서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전통적 태도인 평화적, 반전쟁적 특성과 유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94.2)
“당신들은 전쟁들이 우리의 종교에 대한 당신들의 신들의 혐오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인즉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이후로 전쟁은 증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하여 거친 정욕들이 억제된 결과로 전쟁이 크게 감소하였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악을 앙갚음하느니 차라리 그 악을 감내하는 편이 더 좋고 다른 사람의 피로 자신의 양심과 손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자신이 피를 흘리는 것이 낫다는 교훈과 율법을 받았다. 은혜를 모르는 이 세상도 그리스도의 덕화에 의하여 만행의 난폭성이 크게 완화되었고 같은 인간끼리 피를 흘리는 일을 삼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만약 자신들이 신체의 모양 때문이 아니라 이성의 능력 때문에 사람의 자격을 갖는다는 사실을 지각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건전하고 평화스러운 교훈에 잠시만이라도 귀를 기울였다면, 그리고 교만과 허영심에 들뜬 나머지 자신들의 판단을 신뢰하게 되는 대신에 그리스도의 교훈을 신뢰하였다면 벌써 오래 전에 철병기들은 온유의 용기로 바뀌어졌을 것이고 가장 온유한 평안을 누리게 되었을 것이며 평화의 조약을 파괴하는 일이 없어지고 건전한 화합 속에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살게 되었을 것이다.”10
(95.1)
 그리스도교의 신을 전쟁과 연관시키는 비난에 대해서 아르노비우스는 그리스도를 로마의 통치자들과 비교하면서 그리스도의 평화적 특성과 로마의 호전적 특성을 대비하였다: (95.2)
“그(그리스도)가 언제 주권을 주장한 나머지 폭악한 군대로 온 세계를 점령한 일이 있으며 처음부터 평화롭게 살고있던 민족들을 멸망시키고 그들을 이주시키며 그들의 목에 멍에를 강요하여 복종케 한 일이 있는가.”11
(95.3)
 이러한 전쟁들은 결코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의 목적하는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12 또 만약 전쟁이 종교와 유관하다면 로마의 종교에 전쟁의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아르노비우스에게는 이렇게 주장할만한 이유가 있다. 로마의 신 마르(Mar)가 “전쟁의 난폭성을 완화시키는 신이라면 어찌하여 단 하루도 전쟁이 끊일 줄을 모르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그 신이 전쟁의 창시자로서 온 세계를 분쟁으로 몰아넣고 멀리 떨어진 민족들 사이에도 분열과 싸움의 씨를 뿌리며 방향이 다른 여러 곳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다가 삽시간에 들판을 시체와 혈하로 뒤덮게 하는 . . . . 살육의 전쟁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13 (96.1)
 즉 로마의 신들은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는 일에도 무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쟁의 살육과 재난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로마의 종교는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고 있기보다는 오히려 세계의 재난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14 로마의 신들은 베누스 밀리타리스(Venus Militaris)처럼 병사들의 방탕성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5 위와 같이 아르노비우스의 로마종교에 대한 신학적 비판은 전쟁에 대한 혐오와 평화에 대한 염원에 기초하였다. (96.2)
 그는 또 인간이 제사 행위로 신들의 호의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교전 쌍방 국가들이 동시에 동일한 신에게 승리를 비는 제사를 바친다면 그 가련한 신의 처지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조소하였다.16 (96.3)
 참고
 1. George Mc Craicken, trans., Arnobius of Sicca, The Case against the Pagan (Westerminster, Maryland, 1949), Vol. 1, bk 1. 120. Mc Craken은 Arnobius의 Adversus Nationes의 연대를 기원 300년 전후로 잡는다.

 2. Arnobius, Adversus Nationes, ii. 45. cf. ANF, Vol. VI, 451.

 3. Ibid., iii. 26 (cf. ANF, Vol. VI, 470).

 4. Ibid., ii. 38 (cf. ANF, Vol. VI, 448).

 5. Ibid., i. 3. cf. ANF, Vol. VI, 414.

 6. Ibid., ii. 67. cf. ANF, Vol. VI. 459.

 7. Samter, “Fetiales,” Paulys Real Encyclopadie der Classischen Altertumswisseschaft, VI. 2 (1909), 2259-2265.

 8. Cassius Dio, LXXI. 33. 3.

 9. Scriptores Historiae Augustae, Vita Gordiani, 26. 3; Zosimus I. 18. 1; Eutropius 9. 2.

 10. Aronobius, i. “malum malo rependi non opertere, iniuriam perpeti guam inrogare esse praestantius, suum potius fundere guam alieno polluere manus et conscietiam cruore” (cf. ANF, Vol. vi, 415).

 11. Ibid., ii. 1. “numguid regiam sibi vindicans potestatem terrarum orbem cunctum legionibus infestissimis occupavit et pacatas ab exordio nationes alias delevit ac tulit alias sibi parere cervicibus compulit subiugatis” (cf. ANF, Vol. VI, 433).

 12. Ibid., ii. 45. cf. ANF, Vol. VI, 451.

 13. Ibid., iii. 26. cf. ANF, Vol. VI, 471.

 14. Ibid., VI. 2. cf. ANF, Vol. VI, 507.

 15. Ibid., IV. 7. cf. ANF, Vol. VI, 478.

 16. Ibid., vii. 12. cf. ANF, Vol. VI, 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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