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대제사장(하늘 성소의 예수 그리스도) 제 7 장 행위에 따른 심판
 헌신을 실천하고 실행하는 것이 헌신에 대한 이상보다 더 나은 것이다. 예배의 행위는 예배에 대한 단순한 욕망보다 사람이 더 종교적이라는 것에 대한 더 나은 표시이다.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생애가 순결 하게 된다. 기도에 대한 지식과 소망이 기도를 행하도록 실제적으로 인도하지 못하면 그것은 곧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기만 하고 그것을 연구하지 않는 것은 율법에 대한 영적인 필요에 못 미치는 것이다. 진실로 사람됨을 드러내 주는 것은 행위, 곧 행실이다. (127.2)
 심판이 행위에 의한 것이며 그러므로 사람을 전체적으로 포함한다는 것을 이해할 때, 하나님의 율법을 폐지하려고 추구하는 율법폐기론적 가르침에 대한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임재와 성령의 감화 아래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불순종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는 부정직과 부정함이 없기 때문이다. (127.3)
 “생명의 나무에 참여할 권리”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 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계 22:14, 15).
(127.4)
 이 구절은 하나님 왕국의 자격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심판은 그 합당함을 결정지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정죄 받을 사람들과는 대조되는 생애의 확실한 정결함이 요구된다. (127.5)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에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3, 14).
(128.1)
 복음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신다. 여기에 나와 있는 바로 그 구원은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 왕국에 합당하게 또한 만들어 준다. 왕국을 소유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준비하는 시간은 지금이다. 사람의 이름이 하늘 성전에 제시될 때, 그 경우가 결정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순종으로 끊임없이 새롭게 되는 존재들이며 하나님 아들의 형상에 일치 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생애에 의해서 그들은 하나님 왕국에 거할 권리와 자격을 이루고 있다. (128.2)
 왕국에 들어갈 권리는 한 마디로 계명들에 대한 사람의 순종에 달려 있다. 이것이 사람의 순종의 가치이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살고 있는 생애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심판에서 아주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이다. 왕국에 들어갈 하나님 백성의 권리는 그들의 믿음과 사랑의 행위에 근거해 있지 않다. 그 권리는 그리스도에 의해 얻어진다. 그러나 성령을 통한 순종은 믿음의 행위로 나타나며, 그들이 그 권리의 소유자임을 증거해 준다. (128.3)
 믿음의 행위는 그리스도가 참으로 주님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심판과 왕국을 준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고 순종하려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지배받는 데 있다. 하나님은 신자의 생애에서 이러한 합당함을 요구한다. 합당한 준비는 의술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도 필요하다. 그 직업의 일은 효과적으로 실행하는 데 있다. 그리스도인 생애의 일도 선한 행실의 생애를 살며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순종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아무런 공로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종에 기초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지 않으신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의 생애의 시작은 내세에서 계속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전반적으로 비슷함과 유사함이 있다. 심판은 왕국에 대한 사람의 합당함을 결정지을 것이다. (128.4)
 분명하게 사람의 자격은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결정되어야만 한다. 만일 사람의 생애가 지금 여기서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는 너무 늦을 것이다. 만일 사람이 지금 하나님의 법 가운데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그것 가운데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사람이 그리스도의 주님 되심에 순복하지 않는다면, 그때에 그리스도의 주권적 통치를 거부하게 될 것이다. 재림전 심판은 사람이 여기서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습관적으로 순종하는가 또는 그가 어두움 보다 빛을 더 사랑하는가 하는 것을 드러낼 것이다. 기록의 책들은 사람이 그의 집을 모래 위에 짓는가 반석 위에 짓는가를 보여 줄 것이다. 그리스도 위에 세우지 아니하는 모든 생애는 정죄 받게 될 것이다. 심판에서 그리스도는 사실에 반대되는 선고를 하실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순종의 사람의 일을 하늘 법정 앞에서 빛 가운데로 가져 오신다. 많은 증인들 앞에 하나님의 충성되고, 순종하는 자녀들은 옹호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이 일해 왔고 이를 위하여 그의 은혜가 나타났고 적용되었다. 이 모든 것은 그분이 죄인을 그의 형상으로 변화시켜 그들을 오직 의가 다스리는 새 땅에 합당하게 만드는 것이다. (129.1)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 때문에 신자는 율법의 저주와 정죄에서 해방되나, 그것에 대한 순종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율법을 폐지하지 않는다. (129.2)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7-12).
(129.3)
 그리스도인은 그의 능력이 미치는 데까지 그의 주님과 같이 되어야 한다. 그는 헌신하고 사랑하는 순종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그리스도가 그의 완전한 순종에 의해 율법을 크게 하고 영화스럽게 한 반면에(사 42:21), 그리스도인이 불순종으로 그것을 불명예스럽게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129.4)
 하나님께 대한 충성은 필수적이다. 사랑하는 순종은 하나님을 영화스럽게 한다. 불순종은 그분을 수치스럽게 한다. 심판이 그것을 선포 할 것이다. 모든 하나님의 창조된 존재들은 이 점에 대해 확실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이 세상이 거의 6,000년 동안 견디어 온 또 다른 재난의 위험을 감수하실 수 없다. 사랑으로 일하는 믿음은 하나님과 모든 다른 신과의 사이에 분명한 선택이며, 정직과 부정직 사이의 선택이며, 순결과 불결함 사이의 선택이며, 계명에 순종하는 것과 그것들에 불순종하는 것의 선택이다. 하나님의 뜻과 계명들은 모호 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요구를 증거하기 위하여 더 이상 논쟁을 확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요구들은 복음과 성령의 권능 아래 불가능하지 않다. (130.1)
각 개인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사를 받게 될 것이다. 각 개인은 위대한 심판장을 대면하여 만나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마음이 재판장이 좌정하고 책들이 열리는 엄숙한 장면을 자주 명상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때 다니엘과 같이 모든 개인들은 마지막 때에 자기의 분량에 서야만 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488).
(130.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
(130.3)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도덕성과 영성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율법주의는 대답이 아니며 결코 대답이 될 수 없다. 성경은 그것에 대하여 아주 분명하다. 교회는 의롭게 율법주의적 종교에 대하여 항의해야만 한다. 결단코, 그대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가, 또는 깨뜨리는가?는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 사이에는 얼마나 큰 틈이 있는가!(갈 5:19-25 참고). (130.4)
 과학자들은 천연의 법—별들, 지구, 사람의 신체-의 위대함과 신뢰 할 만한 것에 대하여 선포하기에 결코 피곤치 않는다. 하나님의 도덕적이며 영적인 법들은 얼마나 진실하며 신뢰할 만한가?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130.5)
 전 세계를 통하여 교회는 도덕적 법을 짓밟는 것에 직면해 있다. 사랑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라고 우리는 말해 왔다. 하나님의 법은 불편한 감정을 가져다주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대중에게 하나님의 법에 대해 적게 말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이 모든 순종의 동기를 일으키는 힘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결단코, 하나님의 법에 대해 이루어지고 있는 공개적인 공격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리며 오늘날 그것을 타당하게 여기고 있는 이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것이 여전히 죄임을 볼 필요가 있다. 불순종은 항상 속박, 불명예, 고통, 그리고 죽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자유를 넓히는 가장 아래, 우리는 그것들에 속박되고 있다. 우리는 노예로 팔리고 있다. 피조물들이 그분의 법과 그분의 복음에 창조주와 불일치함에 들어가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분의 율법과 복음, 이 두 가지가 다 모든 피조된 존재에 대한 의로운 사랑의 영원한 품성의 표현이다. 우리를 위하거나 우리에 대한 거룩한 선고의 가능성은 심판에 있어서의 분명한 실제이다. (131.1)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벧전 4:17).
(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