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제단으로의 부르심 제2부 모형과 메시야 제8장 지상 성소의 한계
  • 1
 계획이나 모형은 “진짜”가 아니다. 그것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우주 왕복선의 초기 모형은 우주 왕복선과 비슷해 보이지만 지구를 도는 궤도에 올라갈 수는 없다. 미군은 오그레이디 대위를 구하기 위해 그 상황에 맞는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그 계획 자체만으로는 그를 구할 수 없었다. (46.1)
 고대 성소 제사의식들이 아주 분명하고 정확하게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나타내지만 그것들은 불완전한 인간 제사장들에 의해 수행되어진 지상에 매인 활동이라는 사실 때문에 중대한 한계들이 있었다. (46.2)
 다음은 한계점들의 일부다. (46.3)
1. 이스라엘의 제사장들도 죄가 있었고 그들 자신을 위한 희생제사가 필요했던(레 4:3~12; 16:6, 11~14, 33) 반면에 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한 희생 제사가 필요 없는 죄 없으신 대제사장이시다(히 4:15; 7:26~28).
(46.4)
2. 고대의 희생 제사는 여러 번 반복해서 드려졌다. 어떤 것들은 매일 드려지기도 했다(민 28:1~8). 모든 희생 제사들이 예수님의 단 번의 희생(히 9:28)을 나타냈기 때문에 그 의미가 다른 제사들과 겹쳐지며 반복되고 중복되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분은 단 한 번만 죽을 필요가 있었다.
(46.5)
3. 동물과 곡식과 다른 것들로 행해지는 제사의식들은 구속의 모든 것들을 자세히 설명할 수 없었다. 어떤 면에서 제사의식은 단지 감질나게 하는 암시만을 제공했다.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제사의식에 관련된 부분과 마찬가지로 성경의 나머지 부분들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신약이 우리를 위해 연결을 하지 않았다면(고전 15:20), 보리의 첫 결실 제물(레 23:11)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나타낸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47.1)
4. 고대의 제사의식 제도는 이스라엘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희생의 유익은 세계적인 것이다(요 1:29; 3:16).
(47.2)
5. 고대 이스라엘의 희생 제도는 모든 경우의 죄에 대해 심지어 죄인이 회개했을 때라도 용서를 해주지 않았다. 예를 들어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을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몄을 때에 하나님의 율법은 그를 죽음으로 정죄했다(신 22:22; 민 35:31). 다윗 자신이 스스로 깨달았던 것과 같이(시 51:16) 그를 이 정죄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희생 제물은 없었다. 므낫세가 그의 아들을 제물로 바쳤을 때(왕하 21:6; 대하 33:6)에 하나님의 율법은 그를 죽음과 함께 “끊어지는”(레 20:20~23) 하나님의 형벌로 정죄했다. 어떤 희생 제물도 그의 상황을 구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더 나은 희생은 그들이 무엇을 했었든지 간에 그것을 진실과 겸손으로 받아들이는 모두에게 유효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과 므낫세와 같은 구약의 사람들을 용서하실 때(삼하 12:13; 대하 33:13)에 그리스도의 희생을 받아 들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물의 희생 제사 없이 장차 있을 그리스도의 희생을 바탕으로 곧바로 용서하셨음에 틀림없다.
(47.3)
6.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자신들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을 성소로 가져온 사람들의 죄나 형벌에 대한 책임을 담당했다(레 10:17). 제사장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의 형벌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형벌까지도 담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다르게 인간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써 실제로 돌아가셨다(참고 사 53; 요 1:29). 이런 제사장과 희생 제물 역할의 융합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속주로 돌아가신 것을 증명한다. 그분께서는 제사장과 같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고, 희생 제물처럼 그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
(48.1)
7.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조차도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일 년의 대부분을 성소에서 제사 드릴 때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 앞에서 휘장으로 보호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가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향연으로 가려져 보호를 받았다(레 16:12~13).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든지 그의 아버지로부터 가려질 필요가 없다. 마가복음 16:19은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한다(참고 히 1:3).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사도 요한은 하늘 성소(계 4~5)에서 두 방을 분리시키는 휘장에 대해 말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히브리서 6:19이 가리키는 것과 같이 만일 하늘 성소에 휘장과 맞는 짝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열려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경우든지 지상 성소에 있는 휘장의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48.2)
 대부분의 모형들처럼 지상 성소의 희생 제사의식들은 한계가 있었다. 우리가 이러한 한계점들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형 그 자체에 공을 들이거나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에 우리의 이해를 제한시켜 문제에 봉착할 수도 있다. 우주 왕복선의 모형 안으로 들어가 발사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또한 모형이 날 수 없기 때문에 우주 왕복선도 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해서도 안 된다. (49.1)
 이스라엘의 성소는 원래 목적인 고대나 현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신지 가르쳐 줄 때에 가치가 있다. 성소는 학습 모형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살고 그분의 은혜에 반응해야 하는지를 성소를 통해 배울 수 있다. (49.2)
 성소는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하늘 성소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개인적인 경험으로 우리를 이끈다. 성소는 공부하는 것 자체로 끝나서는 안 된다. 성소에 대한 우리의 연구가 구원에 관한 더 정교한 이론만을 만드는 것에 그친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성소에 관한 지식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오그레이디가 가만히 앉아서 제시된 구출 계획표를 연구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 (49.3)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