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창조와 구속과 소망의 축제) 10. 자유와 평등의 희년 (Niels-Erick Andreasen)
 마지막으로 안식일은 인간에게 특별한 종류의 청아한 평온을 가져다 준다. 이것을 헤셀은 “인간 내부에 존재한 평화”라고 부르고 있으며 우리는 내적인 조화의 이상이라고 불러 왔다. 이같은 평화는 인간의 노역이나 야망 또는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 세상의 투쟁으로부터 인간이 놓여날 때 부분적으로 가능해지며 다른 한편으로는 안식일의 예배와 즐거움을 통한 선험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부분적으로 가능하다. (97.2)
 비록 안식일이 몇몇 사람들이 비난하는 바와 같은 그런 우울한 날이 아니고 즐거운 날이였다는 풍부한 증거들을 구약에서 찾아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는 찬양과 예배일로서의 안식일에 관한 주장을 좀처럼 들을 수가 없었다. 안식일에는 불을 피우지 말고(출 35:3) 처소에 머물라고(출 16:29)한 명령은 초기 안식일 준수와 관련된 원시적 금기가 아니었다. 이 규정들은 특별한 상황에 안식일 원칙들을 적용시킨 후기의 판례 율법들이다. 초기의 안식일 규정에 나타난 관련 정보에 따르면 안식일은 일을 하지 않는 날일 뿐만 아니라 예배의 기회를 제공하는 날이다. 특별히 안식일 예배를 위해 지정되었던 시편의 하나인 시편 92편의 경우를 봐도 이 시는 악기에 맞추어 축제 분위기로 부르게 된 감사의 노래이다. 이사야의 안식일 논박(사 1:13)은 그 나라의 축제 때문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 축제와 죄악이 결코 병행할 수 없다는 원칙에 기인한 것이었다. (97.3)
 이와 같이 안식일은 축제와 예배라는 이중적 특질로 말미암아 엄격한 노동의 금지를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로 변형시킬 수 가 있었다. 이로써 안식일은 인간의 생활에 기쁨이 경험되는 삶의 자리를 만들어 놓을 수가 있었다. 이같은 안식일의 기쁨은 모든 일의 완성에서 오는 만족감에 의해 조장된다. 창조 안식일(창 2:2 이하)은 이러한 점을 묘사하고 있다. 창조주께서 안식일에 휴식을 취하시며 그 날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것은 당신의 일이 모두 완성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원리로 볼 때 안식일은 단지 하나님의 창조 사업에 대한 상징이 아니라 특별히 그 사업의 완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안식일은 “완성된 창조”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안식일에는 미처 못다한 일이나 볼품 사납게 끝나버린 일이나 또는 긴장된 관계 때문에 생기는 인간의 내적 투쟁들이 끝내 모든 일이 하나님 안에서 완성될 것이라는 안식일의 확증에 의하여 해소된다. 이때 다시 한 번 기쁨을 맛보게 되는 계기가 발생한다. 이러한 기쁨은 인간에게 청아한 평온 즉 내적 조화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현세적 경험으로 표현되는데 이를테면 청아한 평온, 내적 조화, 안으로부터의 평화 같은 표현들이 그것이다. (97.4)
 여러 주석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사야 58장 3절 이하에 나타나 있는 아름다운 안식일 성경절들은 안식일을 범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물질적 보상을 약속하는 별개의 내용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결국 이들 성경절의 문맥은 이사야가 실제적인 신앙과 개인적인 성실로 해석하고 있는 참된 금식을 다루고 있다. 안식일을 취급하고 있는 13절은 안식일을 개인적 또는 물질적 이권에 의해 억제되지 않는 축제일로 만들므로써 이 장(章)의 관심사들에 대해 이바지하고 있다. 이사야 58장 13절은 종교가 종교를 위한 종교로 끝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 구절은 신앙인으로 하여금 구속 사업의 일환으로 타인들을 돌보고 섬기게 함으로써 이득과 이익에의 착념으로 부터 벗어나도록 우리의 정신을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조화와 완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완성된 일들이 그랬듯이 우리들의 구속적인 봉사 활동도 참된 안식일의 기쁨을 가져다 준다. 그러므로 높은 곳에 오르는 것(14절)은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성하신 일에 참여하고 그 참여 안에서 기쁨을 맛보는 영적 경험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속 사람의 조화, 곧 “내부에 존재하는 평화”를 가져다 주는 참 안식일의 기쁨이다. (98.1)
 미 주
 1. A. J. Heschel, The Sabbath(New Yor, I952), p29.

 2. H. W. Wolff, Anthropology of the Old Testament(Lcndon, 1974), pp.128-133.

 3. Ibid, p.141.

 4. 그들은 종들이며, 외국인들이며, 어린이들이며, 더 나아가 가축들이다(Ex. 20:8-11; tls 5:12-15). cf N. E. Andreasen, “Festival and Freedom,” Interpretation, 28(1974), pp 281-297.

 5. Cf. B.S.Childs, Memory and Tradition in Israel(London, 1962).

 6. Cf. Deut 5:15; 15:15; 16:12; 24:18, 22.

 7. Ex. 21:1-6; Lev. 25, 26; Deut 15:1-18; II Chron. 36:21.

 8. R. de Vaux, Ancient Israel I: Social Institutions(New York, 1961), p.174.

 9. M. Weber,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London, 1930); RH Tawney, Religion and the Rise of Capitalism(London, 1938).

 10. Cf. John Calvin, Institutes, vol, III, ch 10, p.6.

 11. Inspiration and Revelation in the Oold Testament(Oxford, 1946), p.70.

 12. II Kings 4:23; 11:4-12; 1 Chron. 23:30f.; Isa. 1:13; Hosea 2:11.

 13. 이 문제에 관한 여러 가지로 비판적인 의견들이 많지만 이사야 58장의 통일성을 받아들여야하는 훌륭한 이유들이 있다. cf. J. Muilenburg, “Isaiah 40-66,” The Interpretar’s Bible, V(New York, 1956), p.677. 이 장에서 예배자들은 하나님께 진지하게 헌신하는 체 하지만 사실은 물질적 축복을 얻기 위하여 금식하고 있다고 비난받고 있다. (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