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증 7. 구원에 대한 요한의 확증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힐라스모스 hilasmos]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강조 첨가).
(109.2)
 요한은 예수의 사명을 헬라어 힐라스모스(hilasmos)란 단어로 표현했는데, 그것은 문자적으로 “속죄”(참조 NASB)를 의미한다. [새개정표준역](NRSV)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적절히 번역하고 있다: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가 되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 요한은 예수께서 온 세상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심을 선포하였다(요일 2:2). 요한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의 희생적 죽음 안에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셨다고 믿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성전 의식에서 대속적 희생을 완성하셨는데, 이는 그—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어린양”—가 실제로 세상의 죄를 제하셨기 때문이다(참조 요 1:29). 예수께서 실제 유월절 어린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은 당신의 언약 백성을 “넘어가”실 것이다(참조 출 12:13). 우리도 “양 같이” 죽임을 당하도록 끌려간 여호와의 종에 대한 메시야적 예언으로부터 예수의 죽으심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다(참조 사 53:7, 10, 그리고 행 8:30-35의 빌립의 설명을 주의 깊게 보라). (110.1)
 따라서 우리는 요한일서 4:10요한복음 3:16을 분명히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하는 사랑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영원히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재보증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요한의 이해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이다. (110.2)
 세 증인
 요한은 자신의 첫 편지서를 이렇게 언급함으로 마무리지었다: (110.3)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요일 5:6-10).
(111.1)
 요한은 예수의 침례(“물”)로 시작되고 그의 죽으심(“피”)으로 끝난 예수의 성육신과 메시야직이 우리 구원의 역사적 기초를 이룬다고 선포했다. 존 R. W. 스토트(John R. W. Stott)가 이런 도움이 되는 설명을 제시했다: (111.2)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 당신의 출생에서 우리의 본성을, 죽음에서 우리의 죄를 취하지 않으셨다면 그는 하나님께 우리를 화해시키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요한은 그가 오셨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물과 피로써 오셨는데, 이는 죄로부터 정결케 하는 것이 그의 피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였다.8)
(111.3)
 성령께서는 그의 침례에서(마 3:16, 17)와 그의 봉사 전체를 통하여(마 17:5; 12:28) 예수의 신성한 아들 되심을 증거하셨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5:8에서 요한은 성령을 하나님의 첫 증인으로 언급하였다. 하나님의 증거는 인간의 증거보다 탁월한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으시고 어떤 피조물보다도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 증거할 자격이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를 거절하는 이들은 하나님 그분을 거절한다. 이것이 불신과 죄의 궁극적인 모습이다. (111.4)
 또한 요한은 예수의 신성에 대한 신념의 신빙성에 대해 신자의 내적 증거에도 호소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요일 5:10). 이것은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라는 바울의 진술과 일치한다. 요한은 예수를 믿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았으므로 진리를 안다고 주장했다(요일 2:20, 27). 그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 4:13)고 말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신자의 마음에 오는 굳건한 확증이다. (112.1)
 결론적으로 요한은 그리스도인이 두 가지 구분되는 구원의 확증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수께서 그분 자신의 아들이시라는 하나님의 증거와 신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신뢰에 대한 신성한 확증이 그것이다. 요한의 서신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예수에 대한 믿음이 분리될수 없음을 보여준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은 오직 아들에 대한 믿음이 유지될 때에만 유효하다(참조 요 5:22, 23). 요한은 인간 예수가 신성한 그리스도와 동일하다는 것을 부인한 당대의 어떤 교인들의 거짓 주장을 다루었다(요일 4:2, 3).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요일 2:23). (112.2)
 하나님께서 아들 안에서 우리의 영생을 보증하셨기 때문에 요한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요한복음 5:24에서처럼, 그의 요지는 영생은 원래 양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질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예수와의 관계를 통해 신자로 하여금 나누게 하시는 것은 시대에 상관없인 영적, 도덕적 삶 중에서 최고의 것이다.”9) 당신의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다(요일 5:11, 강조 첨가). 요한의 기별은 분명하다: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 5:13). (112.3)
 확증에 대한 세 가지 시금석
 요한은 예수께 대한 믿음을 영원히 지속되는 예수를 향한 헌신으로 간주했다. 믿음이란 영원히 주님과의 계약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매일 그분과 함께 걷고, 그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는 가운데 집중된 마음으로 그를 따르는 것이다: (113.1)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며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3-6).
(113.2)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명령을 특히 강조하였다(참조 요 13:34; 15:12; 요일 2:7-11; 3:11). 이것은 우월과 배타성의 정신을 보인 사람들에게는 결여된 것이었다. 요한은 우리가 어떠해야 함을 주장했다.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강조 첨가). 엘렌 화잇도 예수와의 지속적인 동행의 필요를 지적하고 있다: (113.3)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본이시다. 사랑과 부드러움 그리고 열정으로 가득하신 예수를 본받는 것은 우리가 매일 그분께 가까이 가는 것을 요구할 것이다. 아 하나님께서 당신의 공언한 대리자들에 의해 얼마나 많이 모욕을 당하시는가!10)
(114.1)
 요한은 기독교 신앙이 추상적 교리들의 집합이 아니라 예수를 구속주와 모본 둘 다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도덕적 삶이라고 주장했다. 요한은 신자가 진정으로 예수를 알고 “그 안”에서 산다는 사실을 확실히 지적하는 세 가지 시금석을 제시했다. 존 J. R. 스토트의 말에 의하면, 이것들은

   (1) 순종의 도덕적 시금석;

   (2) 사랑의 사회적 시금석; 그리고

   (3)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교리적 시금석이다. (114.2)
 요한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예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요일 1:6; 참조 2:4)이라고 먼저 언급했다. 그는 예수께서 삶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기준이기도 하시다는 것을 분명히 언급했다. “저(그) 안”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행하신 대로 ∙∙∙ 행”하게 한다(요일 2:6). 스토트는 이렇게 말했다: “그와 같이 행동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 안에 거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11)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5). 요한은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고 덧붙였다. (114.3)
 두 번째 시금석은 다른 사람과 사랑 가운데 걷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 19:18)는 모세의 옛 계명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하셨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강조 첨가). 요한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0, 21). 기독교 신앙은 신자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들 형제 자매를 사랑할 때에 유효하게 된다. (1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