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7장 하늘에서 즉위하신 그리스도
 사자(lion)의 형상은 예수님이 행하신 것(what Jesus did)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으로, 곧 그분이 “이기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두루마리를 취하고 보좌에 앉아 통치할 자격을 충분히 가지고 계신 것은 그의 위인(爲人, who He is) 때문이다. 그런 이유의 첫째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에서 발표된 것과 같이,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고, 또 유다 지파에 속한다. 둘째는 전 우주에서 그분만이 하나님과 동등하시다. 이리하여 그분은 아버지의 오른편에 우주의 보좌에 앉기에 합당하시고, 종말적 통치자로서 세계의 역사를 끝내기에 합당하시다. (107.3)
 요한이 그사자를 보려고 눈을 돌렸을 때, 그가 본 것은 사자가 아니라,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은”(계 5:6) 어린양이다. 사자의 형상은 예수님이 행하신 것(what)을 가리키는 반면에, 어린양의 형상은 그분이 그것을 어떻게 행했는지(how He did it)를 보여 준다. 즉 십자가 위의 희생적인 죽음으로써 인류를 구속하시고 사망을 이길 수 있었음을 보여 준다(5:5-6). 예수님을 고유하신 분으로 만드는 것은 십자가이다. 예수님이 그 두루마리를 취하고 일곱 인을 떼며 하늘 보좌를 다시 취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한 것은 그분의 십자가 위의 승리이다. 이 보좌는 그분이 영원토록 아버지와 공유하던 것이며, 그분이 이 세상에 와서 십자가 위에서 죽기 위해 버 려두고 온 것이다(계 3:21). (108.1)
 어린양 그리스도는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진 것으로 기술되었다(계 5:6). 뿔은 권세를 상징하고, 눈은 명철과 지능을 상징한다. 일곱(7)이란 숫자는 충만함을 뜻한다. 예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충만한 권세를 잡고 계신다. 일곱 눈은 충만한 식별력과 지능을 의미한다. 두루마리가 일곱 인으로 봉인되어 있기 때문에 일곱이라는 수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일곱 뿔은 그분이 봉인된 두루마리를 취하여 열 수 있게 하는 전능(全能)함을 예증한다. 일곱 눈은 그분이 그 두루마리를 읽고, 그 내용을 그의 백성에게 가르칠 수 있게 하는 전지(全知)함을 상징한다. (108.2)
 요한계시록 5장의 구약적 배경
 요한계시록 5장에 묘사된 장면을 이해하는 열쇠는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왕권의 역사에서 볼수 있다. (108.3)
 이스라엘 왕들의 즉위식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에서 그들의 유일한 왕은 하나님이셨다. 백성을 통치하는 지상의 왕이 없으면, 나라의 상태는 혼란에 빠졌다(삿 17:6; 21:25).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었으나,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이스라엘이 왕정을 수립하는 것을 허락하셨다(삿 8:23; 삼상 8:7). 하지만 이스라엘 왕이 즉위할 때 그는 율법이 기록된 두루마리 사본을 확보하여, 그의 치세 동안 내내 자기 보좌 옆에 두도록 요구되었다(신 17:18-20). 이스라엘 왕의 의무는 그 두루마리 속에 기록된 율법을 정규적으로 읽고, 그 율법을 지킬 뿐만 아니라, 자기가 다스리는 백성들에게 그 율법을 가르쳐야 했다. 그 왕이 이 언약의 두루마리에 기록된 율법을 충실히 지킬 때, 하늘의 축복이 그 나라에 내려졌다. (108.4)
 이스라엘의 왕이 그의 백성을 다스릴 때 따라야 했던 두루마리는 신명기, 즉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의 책이었다.3 그 언약의 두루마리가 왕의 보좌 옆에 놓여 있음으로써 그것은 여러 면에 있어서 국민의 생활을 위한 교훈들을 포함하는, 그 나라의 헌법과 같은 역할을 했다. 거기에는 또한 그의 백성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조항들과 조건들이 명시되어 있었다. (109.1)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의 대관식 때, 사무엘은 율법을 기록한 책(두루마리) 한 권을 사울에게 주었다(삼상 10:25). 그러나 사울은 그 언약의 두루마리를 따르지 아니하였고, 그 왕위는 다윗에게 승계되었다.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통치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의 황금시대를 기록했다. 다윗의 치세는 이스라엘에서 이상적인 왕권의 전형(典型, model)이 되었다(참고 시 72).4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들이 영구적으로 예루살렘의 왕위에 오를 것을 다윗에게 언약하셨다(시 132:11-12). 이와같은 다윗의 보좌 개념이 요한계시록 5장에 나오는 장면의 배경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유대 지파의 사자(Lion)”“다윗의 뿌리(Sprout)”로 일컬어진다(계 5:5). 신약의 다른 곳에서 예수님은 다윗의 보좌에 앉아 다스릴 다윗의 자손으로 불린다(눅 1:32-33; 행 13:22-23). 승천한 후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있는 보좌에 앉으셨다(계 3:21; 마 26:64; 히 8:1). (109.2)
 이스라엘의 후기 역사에서 그 언약의 두루마리는 보좌에 오르는 일의 상징이 되었다. 그것을 취함으로써 새롭게 즉위한 왕이 보좌에 앉아서 그의 통치를 시작하였다. 요아스왕이 성전에서 거행한 즉위식에서 왕권의 상징으로 언약 두루마리 하나와 면류관을 부여받았다. 이런 것들을 취함으로써 그는 공식적으로 왕으로 선포되었다(왕하 11:12). 그 어린 왕은 손에 언약의 두루마리를 들고 머리에 면류관을 씀으로써 보좌에 오를 자격을 얻게 되었다. 백성이 새 왕을 즐겁게 박수로 환호하면서 그의 왕권을 인정하고 그에게 충성할 것을 서약함으로써 즉위식은 종결되었다. (109.3)
 그 당시 백성에게 있어서, 언약의 두루마리를 소유하고 그것을 열어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그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심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음을 의미했다. 왕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는 말하자면 왕의 홀(物, scepter)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두루마리를 가지고 있는 왕에게 두루마리 책을 읽고 따라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그가 그의 권력을 행사할 때 자기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진 분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그 나라를 다스리는 권한을 가진분은 그 왕뿐만이 아니었다. 그 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보좌에 앉은 것이기 때문이다(대상 29:23; 28:5). 그리하여 왕은 백성에 대하여 하나님을 대표했고, 언약 두루마리에 명시된 하나님의 율법을 그들에게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와 같은 방법으로 이스라엘의 왕은 그의 나라에서 언약의 중재자(covenant mediator)요 하나님의 율법의 수호자(guardian)가 되어야 했다. (110.1)
 봉인된 언약 두루마리
 구약은 이스라엘의 왕들이 거의 이 언약의 두루마리를 따르지 않은 것을 보여 준다. 그들 왕과 백성들이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그 언약의 두루마리가 봉함(封緘)되었다고 선포했다(사 8:16-17). 이사야 29:9-14은 그 두루마리를 봉함한 결과로 그 두루마리를 읽을 수 없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5 이러한 뜻에서 두루마리를 봉함한 것은 상징적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110.2)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포로된 후에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보좌에 앉아 언약책에 따라 백성을 다스리는 다윗 계통의 왕을 더 이상 가지지 못했다. 유대 문헌에 의하면, 사도 요한 시대의 유대인들은 이사야 8:16에 근거하여. 과거에 이스라엘의 왕들과 백성이 율법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바벨론 포로 시대에는 율법 두루마리(언약책)가 봉함되었다고 널리 믿고 있었다.6 (110.3)
 선지자들이 장차 다윗의 보좌에 앉아서 다스리기에 합당한 다윗 계통의 메시아 왕이 오리라고 말한 것은 다윗의 왕권이 사멸되었기 때문이다(렘 23:5-6; 33:15-22; 겔 34:23-25; 37:24-28).7 백성들은 이스라엘의 보좌에 앉아 정의로 백성을 다스릴 이상적인 왕이 다윗 계통으로부터 나오기를 열망했다. 그분이 그 봉인된 책을 열어서 하나님의 뜻에 관하여 백성에게 가르쳐주기를 바랐다.8 (111.1)
 이러한 개념에서 사도 요한 시대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이상적이고 진정한 왕의 역할을 성취할 메시아가 오리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유다 지파에서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신약은 이러한 희망과 기대가 예수님에게서 성취된 것을 밝혀 주었다(참고 눅 1:32-33; 행 2:29-36). (111.2)
 그리스도의 즉위(5:7-14)
 요한계시록 5장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하늘 성소에서 거행된 그분의 즉위를 기술하고 있다. 이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언어는 구약의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 요한이 목격한바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있는 보좌로부터 취하신 일곱 인으로 봉함된 두루마리는, 이스라엘의 왕들이 즉위할 때 받아든 율법이 기록된 언약 두루마리와 비교된다. 그 두루마리를 취하는 것은 보좌에 앉아 통치하는 권리를 상징했다. 그 두루마리를 펼치는 것은 타락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펼치는 것을 의미했다. (111.3)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불순종 때문에 봉함된 그 언약의 두루마리를 열 수 있는 권능을 십자가의 승리로 얻으셨다. 하늘의 보좌실에서 어린양인 그리스도께서 그 두루마리를 취하러 보좌에 가까이 나아가셨을 때, 그 보좌에 주위에 모인 큰 무리들은 환호와 찬양의 노래를 부르면서 그 사실을 인정했다(계 5:7-14). 이것은 이 장면의 절정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여러 세기 동안 봉함되어 간직되어 온 그 언약의 책은 이제 승리하신 그리스도, 곧 오랫동안 기다려 온 다윗 계통의 왕이요 유다 지파의 사자(獅子)에게 넘겨졌다. (111.4)
 이 언약의 두루마리는 통치하는 권리를 의미하므로, 그 두루마리를 취하는 상징적 행동은 그리스도께서 우주를 통치할 합당한 왕임을 뜻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보좌에 앉으셔서, 아버지와 함께 통치하시는 대권을 가지신다(계 3:21). 아버지께서는 이제 아들을 통해서 우주를 다스리신다. 모든 권세와 통치권이 이제 아들에게 주어졌다(마 28:18).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엡 1:21) 되셨다. (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