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사무엘 상∙하 제 Ⅰ 부 사무엘: 왕도 없고 여호와의 말씀도 희귀함 (삼상 1-7) 제 2 장 법궤: 무가치한 매력, 거룩한 공포 (삼상 4-7)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관계 사이에서 다윗의 역할을 보면 블레셋이 여호와를 경배하도록 개종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간단한 문제였을 수도 있었다. 유다의 왕이 되기 전에 다윗은 가드 왕 아기스에게 붙어살았었다(삼상 27). 그리고 자기 백성을 대항하여 싸워야 하는 전쟁에서 겨우 빠져 나왔었다(삼상 29). 예루살렘으로 궤를 옮겨오려던 다윗의 시도가 실패한 후에 그는 궤를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두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그가 팔레스타인의 성읍 가드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믿는다(다른 의견을 알고자 하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사전에서 “오벧에돔”이라는 항목을 읽으라). 오벧에돔이 그 궤를 지킨 석 달 동안 여호와께서 그 집에 복을 주셨다(삼하 6:11). 그리고 압살롬의 반란을 피하여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떠날 때에, 피난 가는 왕을 충성을 다해 모셨던 사람들은 가드 사람 잇대와 가드에서부터 다윗을 따라온 600명이었다(삼하 15:18-22). 분명히 이 사람들은 여호와를 저들의 하나님으로 영접한 블레셋 사람들이었다. (70.2)
 기독교 유일신론자들에게 더 놀라움을 주는 것은 구약에서 여호와가 다른 “신들”(엘로힘)의 능력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그들을 느슨하게 통제하는 것이다. 첫째 계명에서 여호와께서는 다른 엘로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다. 단지 “내 앞에서” 다른 엘로힘을 두지 말라고 이스라엘에게 명하였다(출 20:3; 신 5:7). 실지로 이스라엘에서는 여호와를 온전히 섬기고, 다른 엘로힘은 다른 민족들에서 맡겨둔다는 뜻이다. (70.3)
 많지는 않지만, 민족 신이라는 통속적인 개념이 성경에 들어 있다. 다소 주목할 만한 것들을 아래에 언급한다. (71.1)
 입다로부터: 사생아 출신의 입다는 모압과의 외교적 통신 속에서 민족신의 개념을 취하였다: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얻게 한 땅을 네가 얻지 않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 땅을 우리가 얻으리라”(삿 11:24). (71.2)
 다윗으로부터: 사울 왕으로부부터 도망하는 다윗은 골짜기 너머 있는 왕과 대화할 때에 비슷한 신학을 나타내었다. 그의 원수들이 자기를 “여호와의 기업의 분깃”에서부터 쫓아내며 “이르기를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고 했다고 주장하면서 다윗은 분명한 말로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 “청컨대 여호와 앞에서 먼 이곳에서 이제 나의 피로 땅에 흐르지 말게 하옵소서”(삼상 26:19, 20). (71.3)
 아람 사람 나아만으로부터: 아마도 민족신 개념이 가장 두드러지게 확인되는 것은 아람 장군 나아만에 의해서이다.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도움으로 문둥병이 나으려면 이스라엘 하나님의 땅으로 몸소 가야 하였다. 치료 후에 그는 자기의 개종을 강하게 간증하였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왕하 5:15).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17절)라는 요구이다. 나아만은 오직 여호와의 고향 흙 위에서만 여호와를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71.4)
 이야기가 아닌 다른 부분에서 나온 어떤 구절들이 민족신 개념과 관계하여 특별한 흥미를 유발시킨다. 신명기 32:8, 9에서 야곱은 여호와께 속하였고, 민족의 경계는 지존자에 의하여 “신들(엘로힘)의 아들들의 수효를 따라” 결정되었다(「개정표준역」). 그러나 표준 히브리어 성경 본문(「새국제역」은 이를 따름)은 이상하게도 “하나님의 아들들” 대신에 “이스라엘의 아들들”로 되어 있어, 민족신 개념에 대한 초기의 서기관들의 불편한 심기를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70인역」은 “하나님의 천사들”로 하였는데, 1952년판 「개정표준역」은 원래 “하나님의 아들들”인 것을 그렇게 번역하였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사해 두루마리—1947년에 처음 발견된 B.C. 2세기부터 A.D. 1세기 사이의 기록으로 추정되는 중요한 필사본들—중에서 신명기 32:8의 히브리어 필사본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에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쓰여져 있어서 「개정표준역」 번역자들의 예감을 확증하였다. (71.5)
 그런 본문의 의미는 모든 “신들”(엘로힘)은 지존자의 지도 아래 있고,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친 백성으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곤과 블레셋은 하나님의 더 넓은 계획의 일부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신 다곤을 경배하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다곤과 블레셋이 여호와의 정당한 통치 아래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뜻이다. (72.1)
 우리의 관점에서는 블레셋의 다곤과, 아람의 림몬과, 모압의 그모스를 사단의 영역이라고 정하기가 더 쉽겠다. 그러나 그러한 하늘의 적대적인 두 당의 대립은 요한계시록 12:7-12에서 십자가를 분기점으로 나타날 때까지는 분명히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었다. (72.2)
 구약의 관점에서 다른 구절인 시편 82편은 다른 “신들”(엘로힘)의 “판단[심판]”을 지적하였다. 거기에 보면 참 하나님이 “신들”의 불공평하고 악한 행위로 인하여 그 “신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한다. 시편은 말하기를 너희들은 “신”이라도 “범인같이 죽으며, 방백의 하나같이 엎더지리로다”(6, 7절)고 말하였다. 마지막 줄은 기독교인들이 잘 알고 있는 진리를 말한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판단하소서. 모든 열방이 주의 기업이 되겠음이니이다”(8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계시를 통하여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방언과 백성 위에 있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통치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비록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땅으로 내려왔을지라도 ...(계 12:12). (72.3)
 비록 구약에서 모든 백성과 모든 신 위에 뛰어난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권에 관한 진리가 늘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을지라도 궤가 블레셋에 머무는 동안의 이야기는 여호와께서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을 자기 백성처럼 취급하신다는 것을 잘 설명하는 것이며, 이것은 바울이 말한 다음과 같은 진리의 내용을 미리 드리운 것이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블레셋 사람들의 편에서는, 궤가 돌아가는 삼엄한 장면 속에서 그 진리의 실현에 대한 갈망을 느낄 수 있다: 여호와께서 인도하시는지 주시하며,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었는지, 그들의 제사가 가납되었는지 생각하며 다섯 블레셋 방백들이 젖 나는 두 암소를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따라가고 있다(삼상 6:12). 추수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쁨으로 궤를 받고, 두 암소를 잡아 여호와 앞에 감사의 예물로 바쳤다(14, 15절). 다섯 블레셋 방백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예물을 받으신 것에 만족하여 집으로 돌아갔다(16절). (73.1)
 왕정의 문턱에서(7:1-17)
 7장의 사건들이 사무엘의 봉사의 절정으로 우리를 이끌고 갈 때에 생각이 있는 독자들은 “예언적 과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을 알아차리게 된다. 사무엘상을 자세히 읽어보면 사무엘의 영향에 관한 일반적인 진술과 특정한 이야기 속에 나오는 더 정확한 사실 사이의 대조를 보게 된다. 예를 들어 3:20에 사무엘은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즉 이스라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선지자로 알려져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7:16, 17에는 해마다 그가 순회하는 지역이 나타나 있다: 벧엘, 길갈, 미스바, 그리고 다시 고향 라마로 귀환. 이 모든 곳들은 이스라엘의 중심지와 밀접히 연결된 곳들이다. 즉 사무엘의 실제적 영향은 그의 일반적 명성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법궤의 귀환과 종교적 부흥 사이의 20년이란 기간도 그의 영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넓게 말한 것은 일반적으로 사실로 남아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항을 면밀히 분석할 때에는 그것이 “과장”으로 보일 수도 있다. (73.2)
 “예언적 과장”의 더 경악스러운 예는 7:13에 나와 있다: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셨다. 사무엘상 13, 14장에 블레셋인들이 대장장이의 일을 막은 기록이 나오는데, 그것은 위의 진술과 대조를 이룬다. 전쟁의 날에 사울과 요나단만이 칼이나 창을 갖고 있었다(삼상 13:22). (74.1)
 다분히 도매금으로 넘기는 진술들은 설교적 목적이 있고, 단체 예배의 악에 관한 선지자들의 극적인 진술들과 비교될 수 있다: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암 5:21)라고 아모스는 외쳤다. 조금 너무 한 말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자기의 의사를 밝혔다. (74.2)
 여호수아서도 정복에 관한 과장된 진술을 통하여 사무엘의 영향력을 묘사하는 진술들과 비슷한 대조를 드러내었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 11:23“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고 말한다. 그러나 13:1에서 여호와는 여호수아에게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수아서의 남은 부분과 사사기의 기록은 후자의 진술의 엄연한 사실성을 증거한다. 그러나 전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그의 선하심에 대한 낭랑한 확증이다. 확실히 이것은 “예언적 과장”(“prophetic overstatement”)이다. 그러나 성경의 페이지들은 자주 그런 과도함을 나타낸다. 신자들은, 비록 어떤 세부 사항들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그림의 밝은 면을 볼 수 있다. “예언적 과장”사무엘상 7장에서 중요하다. 거기서 작자는 가시 돋힌 왕정의 문제가 그와 그의 백성 앞에 불쑥 머리를 디밀기 전에 사사로서의 사무엘의 마지막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74.3)
 사무엘을 이상적 사사로 제시하려는 작자의 진지성을 감안할 때에 블레셋을 대항하여 선 그의 지도력의 실제적 이익에 관한 그의 “예언적 과장”은 이해할 만하다. 뒤이어 나오는 구체적인 내용이 더 사실적 요약이라 할지라도 사무엘상의 작자는 여기서 설교하고 있으며 역설한다: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셨다”(7:13). (75.1)
 사무엘상의 저자는 그가 믿는 바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이상을 위하여 차근차근 기초를 놓아오면서 사무엘의 생애의 절정까지 우리를 인도하였다. 제3장의 마지막에 엘리의 집에 심판이 선언되었다. 제4장은 그것이 어떻게 그리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의 시대에 이미 몰락한 왕정처럼 엘리는 늙었고 더 이상 앞을 보지 못하였다(15절). 궤를 잃어버린 소식을 들은 그는 그의 의자(보좌)에서 굴러 떨어져 “나이 많고 비둔”하여 죽었다(18절). 그의 후손들, 후사들 홉니와 비느하스 역시 죽었고, 그들의 큰 죄악 때문에 외세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고,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존중히 취급하지 않음으로 죽임을 당하였다(4절). (75.2)
 법궤의 빼앗김, 유수, 그리고 귀환을 그리는 이 세 장은 엘리의 지도력의 실패를 말하고 있다. 교묘하게 그 장들은 사무엘이 없을 때, 이스라엘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말하고 있다. 4장 1절부터 7장 3절까지 사무엘은 언급되지 않는다. 그의 돌아옴은 놀라운 영적 쇄신과 일치하고 있다. 이 쇄신 속에는 이미 20년 전에 돌아온 궤에 관하여 아무 언급이 없다. (75.3)
 만일 사무엘의 부재가 에벤에셀의 두 재난과 어떤 연관이 있다면(4:1, 3, 10, 11), 그는 에벤에셀 승리의 산파 역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 돌 위에 기록된 말은 극적인 전환을 표현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7:12). 일찍이 사무엘은 제사장(2:35; 3:1)으로, 선지자(3:20)로 세움을 입었다. 이제 7장에서 그에게 사사의 직함이 주어진다(「새국제역」=“leader” [“지도자”], 6절). 엘리도 역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새국제역」=“led” [“지도했다, 인도했다”], 4:18). 그러나 자기 아들들에게 그의 권세를 물려주려는 시도로 인하여 이상(理想)을 손상시켰다. 제사장직은 세습적이지만 사사는 그 권세를 인간의 혈통을 따라 얻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엘리가 다르게 하려는 시도를 심판하셨다. 그의 아들들은 죽임을 당하였고, 엘리 자신도 의자(보좌)에서 떨어져 죽었다. 사무엘도 같은 시험에 굴복할 것이었다. 그러나 7장에서 그는 하나님의 정하신 대로 봉사하면서 순결한 사사의 모양을 하고 있다. (75.4)